드럭스토어 카우보이 (1989/미국)
장르 범죄, 드라마
감독 거스 밴 샌트 Jr.
출연 맷 딜런, 켈리 린치, 제임스 리마,
제임스 르 그로스, 헤더 그람,
비 리처즈, 그레이스 자브리스키,
맥스 펄릭, 윌리엄 S. 버로우즈
감상평
나의 평가 ★★★☆☆
영화는 주인공 밥의 정면 클로즈업으로 막을 연다. 잔잔하면서 몽환적인 선율의 음악이 깔리고 밥의 독백이 흘러나온다. 난 이 영화의 오프닝을 보면서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가 연상됐다. 톤과 정서에 있어 두 영화가 흡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오프닝에 한정했을 때 그렇단 얘기다. 가만히 들어 보면 밥의 독백은 과거형이다. 카메라가 클로즈업에서 빠져나오면 그는 누워 있다. 응급차에 실려가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다.
1971년 오리건주 포틀런드, 밥은 그의 일당과 함께 약국(drugstore)을 턴다. 참고로 오리건주 포틀런드는 감독 거스 밴 샌트의 영화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에도 등장하듯 그는 이 영화 전체를 포틀런드에서 찍었으며 'beautiful Portland'라는 표현으로 포틀런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엘리펀트' 역시 마찬가지이며 '리버 피닉스의 아이다호'는 전체는 아니지만 포틀런드를 주 무대로 하여 촬영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간은 드럭스토어 즉 약국이다. 미국의 약국은 한국의 약국과는 개념이 다르다. 한국처럼 약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극중에도 나오지만 만화 잡지, 선글라스, 책, 껌 등과 같이 잡다하게 판다. 밥의 타깃은 명확하다. 밥은 마약을 강탈하기 위해 그의 일당과 함께 전략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밥과 그의 일당이 차례로 약국으로 들어올 때 관객은 이들이 한패거리임을 안다. 오프닝에서 밥의 회상 장면으로 그의 일당은 이미 소개된 바 있다. 밥의 아내이자 동료 다이앤과 오른팔 릭 그리고 릭의 여자 친구 네이딘. 이렇게 사인조 일당은 주위를 슬슬 살피며 서로 눈으로 사인을 주고받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네이딘이 의도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진다. 이 대목이 압권이다. 릭은 약사를 네이딘 쪽으로 유인하고 그 틈을 이용해 밥은 카운터 쪽으로 가서 약을 턴다. 그 사이 다이앤이 가세해 시간을 번다. 그렇게 해서 약사뿐만 아니라 손님들까지 포함하여 모두의 시선을 네이딘 쪽으로 향하게 하고 묶어 놓는 데 성공한다. 흡사 범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박력 넘치는 서스펜스로 시작부터 강렬하게 흥미와 몰입을 유발한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네이딘은 발작을 멈추고 멀쩡하게 일어나 릭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그와 함께 약국 문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간다. 잠깐이나마 죄였던 긴장이 탁 풀어지는 순간이다.
이쯤에서 영화 제목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drugstore cowboy : 1. 드럭스토어 주변이나 거리를 서성대는 젊은이 2. 카우보이 차림을 한 사람 3. 허풍쟁이 –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1, 2, 3번 모두 해당된다. 1번은 네 사람 다, 3번은 밥, 2번은 네이딘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2번은 왜 네이딘일까? 영화에서 중요한 복선이 되는 장면이 있는데 네이딘이 침대에 모자를 올려놓는 장면이다. 이때 모자가 카우보이모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후에 거스 밴 샌트는 '카우걸 블루스'라는 작품을 내놓는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묘하지 않은가. 그러나 난 직독 직해를 하기로 했다. 약국을 터는 카우보이. 근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cowboys'가 아니라 'cowboy' 즉 복수가 아니라 단수라는 것이다. 답은 자명하다. 영화 제목은 명백히 주인공 밥을 지칭한다. 약국을 터는 그의 모습이 흡사 카우보이를 연상케 하나보다. 카우보이모자도 쓰지 않고 착 달라붙는 청바지도 입지 않고 카우보이 부츠도 신지 않고 권총도 들고 있지 않는데 말이다. 황야는 아스팔트 콘크리트로 뒤덮인 지 오래고 모래 먼지 대신 매연이 날리고 휘파람 소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로 바뀌고 우리의 주인공은 상대의 가슴에 총을 쏘는 데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자신의 팔에 주사를 쏘는 데에만 오로지 골몰한다. 이렇게 20세기 약국 서부극의 주인공은 탄생한다. '카우보이'가 들어가는 제목의 영화는 많다. '스페이스 카우보이',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등등. 카우보이는 미국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니까. 물론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는 미국 영화가 아니지만.
초장부터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후에 경찰들이 이들의 주거지를 급습할 때 젠트리 형사의 말로써 사실로 밝혀진다. 쉽게 말해 상습범인 것이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장면인데 극 초반에 약국을 터는 데 성공하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뒷좌석에서 밥이 자신의 팔에 뽕을 때리고 환각 상태에 빠지는 장면이 있다. 하얀 배경에 마약이 담긴 스푼이 동동 떠다니고 밥이 황홀경에 빠지는 장면이다. 시각 효과로 희한하게 처리가 됐는데 이런 유의 장면은 또 있다. 밥은 젠트리에게 복수에 성공하고 악마의 미소를 띤다. 이때 기포 같은 게 올라오고 권총이 떠다니고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들리는데 이것은 밥이 젠트리에게 복수에 성공하고 승리에 도취되어 마약을 하고 환각에 빠졌다는 것을 시청각적 기법을 통해 은유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 보면 초록색 색감도 그렇고 촌스럽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화면이지만 당시로선 꽤나 독창적인 연출이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아이디어가 창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성공적인 범행을 마치고 도착하여 집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한 놈이 있다. 이름은 데이비드. 한눈에도 찌질하고 멍청해 보이는 땅꼬마다. 이웃인 그가 이들에게 가는데 한쪽에서 테이블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겁대가리 없이 칼로 손가락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찍는 무식한 놀이를 하는 놈이 있다. 어디서 본 듯 했는데 역시나 내 기억이 맞았다. 거스 밴 샌트의 장편 데뷔작 '말라 노체'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던 인물이다. 근데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에서는 애석하게도 크레디트에 아예 이름조차 못 올리고 비중도 엑스트라 수준으로 그쳤다. 충무로식으로 표현하면 우정 출연이라고 해야 될까.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도 '말라 노체'와 같이 거스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한때 미국 독립 영화의 기수였던 그다. 누가 뭐래도 그는 뼛속까지 인디 필름메이커다. 나중에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 같은 영화를 찍으며 메이저에 투항하기도 하지만 '게리'를 기점으로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 '파라노이드 파크'를 연이어 만들며 초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병이 도졌는지 '밀크'로 또 한 번 외도를 한다. 작품의 편차가 꽤 큰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서사적인 영화와 비서사적인 영화. 전자가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 '밀크'라면 후자는 '게리',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다. 쉽게 말하면 전자는 오스카가 선호하는 영화이고 후자는 칸 영화제가 선호하는 영화다. 후자는 이미지와 음악으로 빈약한 서사를 메우고 정서를 파고드는 영화다. 거스 밴 샌트의 본질은 후자에 있다. 단언컨대 나는 '엘리펀트'의 손을 들어주고 '굿 윌 헌팅'은 쓰레기통에 처박을 것이다. 적어도 이 대목에서는 정성일 영화 평론가와 뜻을 같이 하는구나. 그렇다면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는 어디에 해당될까? 전자라고 봐야지. 그러나 여기서도 이미지와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그의 장기는 여전하다. 오프닝에서 밥의 일당을 소개하는 장면은 흡사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되었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등장하는 에필로그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그가 그려내는 이미지는 잔잔하고 정적이며 글루미하고 몽환적인 공허한 느낌을 많이 자아낸다. 음악도 그러하다. 우울한 정조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축 처지고 가라앉게 만든달까. 감독의 성향이나 기질이 투영됐다고 봐야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서사를 만드는 감독에 가깝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영화는 대사가 많아질수록 빈곤해지고 대사가 줄어들수록 풍요로워진다.
그렇다면 영화 속 아이러니로 들어가 보자. 데이비드가 약을 구하러 밥과 그의 일당의 집에 들어올 때 밥은 본심을 드러낸다. 밥은 마약을 하는 것보다 마약을 터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마약보다는 도둑질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는 장르적으로 마약 도둑질이라는 범죄와 과거를 청산하고 갱생하는 드라마가 결합된 구조로 이뤄진다. 전자는 전반부에서 후자는 후반부에서 다뤄진다. 마약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너무나 많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꼽으라고 해도 '바스켓볼 다이어리', '트래픽', '레퀴엠', '하프 넬슨' 등등이 있다. 마약이 합법화되지 않은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런 영화들을 볼 때마다 낯설고 이질적인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도둑질에 몸이 달아 있는 밥과 달리 그의 아내 다이앤은 섹스에 몸이 달아 있다. 다이앤은 밥을 침대로 끌어들이고 싶지만 밥의 마음은 약국을 향해 있다. 그러나 잠자코 가만있을 세상이 아니지. 젠트리 형사는 밥의 천적이라 할 만하다. 진절머리 나게 밥을 쫓아다니며 범행 현장을 덮쳐 밥을 감방에 처넣을 궁리만 한다. 조여 오는 수사망과 네이딘의 실수 그리고 빅 프로젝트였던 병원 약국 털기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밥은 점점 회의를 느끼게 되고 급기야 네이딘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완전히 손을 털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영화는 뜬금없고 엉뚱하게도 미신을 개입시킨다. 침대에 모자를 올려놓아서 네이딘이 죽었다는 것이다. 과연 정말 그럴까? 밥은 리더이고 다이앤은 밥의 아내이자 오래된 동료이며 릭은 밥의 오른팔이자 밥과 소년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친구였다. 그렇지만 네이딘은 나이도 제일 어리고 여점원으로 일하다 이들의 유혹으로 뒤늦게 합류하여 바보 취급 당하기 일쑤인 왕따였다. 밥과 다이앤에게 치일 때마다 남자 친구 릭이 달래줘야만 했고 뭔가 늘 외롭고 침울하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발작 연기까지 하며 약국 털기에 공을 세웠건만 이상하게도 밥과 다이앤은 그녀를 쫓아내려고만 애썼다. 다소 어리버리하고 일처리 하는 데 있어 모자란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마음은 여리고 착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미모가 뛰어났다. 밥의 표현대로 미소가 매력적인 여자였다. 영화에서 그녀의 죽음은 비장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그저 어처구니없고 건조하게 처리되었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느낌은 있었지만 울컥하지는 않았다. 슬픔보다는 충격이 컸다. 특히나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눈뜬 채로 죽은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팀원들로부터 받은 소외감과 외로움이 그녀를 질식시킨 것은 아닐까?
그렇게 밥은 네이딘을 땅에 묻고 릭과 다이앤과는 헤어지며 갱생의 길을 택하려 고향으로 돌아간다. 메타돈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기계 공장에서 일도 한다. 재활에 힘쓰는 것이다. 밥은 오래전부터 알아오던 톰 신부와 우연히 재회한다. 놀랍게도 톰 신부도 마약쟁이다. 그도 메타돈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 말 그대로 미친 나라다. 이놈의 나라는 신부도 마약을 하고 간호원도 마약을 하고 심지어 아들을 마약쟁이라고 비난하는 엄마도 마약을 한다. 드럭 네이션(Drug Nation)이 따로 없다. 젠트리의 감시망은 여전하다. 밥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스토커처럼 따라붙어 그의 주변을 맴돌며 예의 주시한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쯤 되면 밥이 사고를 칠 법한데 프로그램에도 성실히 참여하고 일도 열심히 계속하는 게 젠트리는 이상하기만 하다. 그런 밥에게 최후의 유혹(last temptation)이 다가온다. 바로 그의 전 부인 다이앤의 갑작스러운 방문이다. 다이앤은 약물로 밥을 어둠의 세계로 다시 끌어내리려 하지만 밥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었다. 밥은 다이앤을 섹스로 유혹하는데 다이앤은 더 이상 그의 아내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이앤은 릭의 애인이 되어 있었다. 릭이 부하였는데 리더가 된 것이다. 이제 알겠다. 다이앤은 리더를 좋아한다. 어쩌면 밥을 사랑한 것도 그가 리더였기 때문이다. 릭이 리더가 되자 릭의 애인이 된 것처럼. 영화 초반에 다이앤은 밥에게 섹스를 원했고 밥은 마약을 원했다. 종반에 이르면 거꾸로 다이앤은 약물을 원하고 밥은 다이앤에게 섹스를 원한다. 이 또한 기가 막힌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다이앤은 너무나 건전하게 변해 버린 밥의 모습에 실망과 함께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밥도 이미 자신에게서 마음이 떠나 버린 다이앤의 모습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별을 하고 밥은 다이앤이 건넨 마약이 한 움큼 담긴 봉투를 옆방의 톰 신부에게 건넨다. 톰 신부는 밥에게 신의 축복을 내리고 천국에 가길 바란다는 덕담도 덧붙인다. 그게 끝이 아니다. 마약의 거장(?)답게 보자마자 순식간에 자질구레한 약들은 개무시하고 최상급 마약 한 병만 딱 골라내어 그것을 성경책 위에 올려놓아 면죄부를 주는 센스(?)마저 잊지 않는다. 평상시 마약 인심(?)은 두둑했던 톰 신부의 선행(?)이 덕(?)을 쌓은 결과인가 보다. 밥이 톰 신부에게 마약을 주는 모습을 보면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엘리저베스 슈가 알코올 중독자 니컬러스 케이지한테 술이 담긴 술병을 선물하는 게 떠올랐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목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한다. 역시 선물은 모름지기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게 선물이 아닐까 하는. 밥은 아마도 마음이 흐뭇했을 것이다. 선물(?)을 받은 톰 신부보다도. 톰 신부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었고 밥은 톰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주면서 갱생에도 성공했으니 이것이 바로 상생 아닌가.
밥은 후련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서고 난데없는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데이비드 일당이다. 그것도 비겁하게 복면을 쓴 채로 말이다. 숨어 있던 복병의 등장이다. 젠트리 형사보다 데이비드가 더 무서운 놈이었다. 사실 젠트리는 밥에게 독설을 퍼붓고 괴롭히기는 했지만 이면에는 밥을 걱정하고 위하는 나름 애정 어린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반면 데이비드는 앞에서는 밥한테 설설 기면서 뒤에서는 칼로 찌르는 전형적인 비겁한 찌질상이다. 마약 좀 얻겠다고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사람을 두들겨 패고 총까지 난사하니. 그러고는 냅다 도망가고. 그렇게 밥은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미신에 대해 얘기한다. 독백으로. 옆방 아주머니의 신고로 응급차에 실려가면서도 그는 젠트리에게 모자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다이앤과의 이별을 유보하며. 오프닝과 엔딩은 보기 좋게 조응한다. 오프닝에서 그는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끝까지 승리가 불가능한 게임을. 엔딩에 이르면 그는 난 아직 살아있고 살아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난 그럴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는 갱생을 설파하는 계몽적인 영화일까? 영화는 프로파간다의 도구가 아니다. 거스라면 더욱이 그럴 리 없다. 밥은 스스로 갱생을 선택했을 뿐이다. 주변 누구에게도 갱생을 강요하지 않았다. 네이딘은 자살을 다이앤은 현상 유지를 택했다. 밥은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들이 틀리다고 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은 쉬운 길을 선택한 것 뿐이고 나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 뿐이라고. 네이딘의 입장에서는 살아 있는 당신들이 또라이들이고 다이앤의 입장에서는 개과천선한 밥이 또라이일 수 있다.
맷 딜런과 헤더 그람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다. 특히 맷 딜런의 외모는 가히 절정이다. 이름은 맷 데이먼과 비슷하고 외모와 목소리, 분위기는 벤 애플렉과 유사하다.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와 '굿 윌 헌팅'. 둘 다 같은 감독이다. 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갱생에 성공한 밥이 가장 큰 약국인 병원으로 후송된다. 오프닝에서는 은근슬쩍 등장하여 알 수 없지만 엔딩에 이르면 이 장면이 얼마나 보는 사람을 쓴웃음 짓게 만드는 허무하고도 지독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지 알게 된다. 갱생 전에는 작전까지 짜가며 몰래 숨어서 기를 쓰고 들어갔다가 피만 보고 나왔는데 갱생에 성공하니 누워서 편안하게 들어가게 되더라는 것. 다만 이번에는 거꾸로 피를 보고 들어간다. 참으로 인생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약에 취해 있을 때는 그렇게 높았던 병원 담장이 약을 끊고 나니 허물어져 있었다. 이젠 약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약국은 밥을 필요로 하나 보다. 원치 않게 가장 큰 약국으로 가게 된 밥.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흘리며.. 고향으로.. My Own Private Drugstore
★★★
비교적 서사가 뚜렷한 이 영화에서도 거스의 탁월한 영상미는 감출 수가 없다. 이미지와 사운드만으로도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남다른 재능을 가진 그가 서사를 장착하여 이야기적인 재미를 꾀한다. 결과는? 나쁘지 않다. 침대 위 모자, 헤더 그람의 순진무구하고 청초한 얼굴, 약에 취한 맷 딜런의 몽환적인 표정으로 영원히 기억될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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