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2005/한국) 장르 드라마, 로맨스, 코미디 감독 민규동 출연 주현, 오미희, 천호진, 김태현, 엄정화, 황정민, 김수로, 전혜진, 임창정, 서영희, 윤진서, 정경호, 이병준, 김유정 |
줄거리
여기 일곱 쌍의 커플들이 있다. 가난 때문에 혼인신고만 하고 오직 사랑으로 사는 신혼부부커플, 새로 개관될 멀티플렉스 극장 사업을 앞두고 극장 안 커피숍 주인과 티격태격하며 알콩달콩한 로맨스를 그리는 중년커플, 가정부로 들어와 초등학생 아들과 단둘이 사는 무기력한 이혼남의 삶에 끼어든 남자커플, 신경정신과 여의사로 교양 있는 척하지만 무식한 형사에게 호감을 갖고 들이대는 막나가는 커플, 왕년에 아픈 기억이 있는 전 농구선수를 스토커처럼 취재하지만 서로 간에 별다른 애정전선은 보이지 않는 어정쩡한 커플, 기획사로부터 버림받아 졸지에 폐인으로 전락한 전직 아이돌 스타가수와 그를 좋아한 나머지 수녀까지 포기하고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청년커플, 병원에 아파서 누워있는 '그녀'를 위해 김밥을 사서 던져놓고 나가는 어른 뺨치는 조숙한 사랑(?)을 하는 꼬마커플.
이들에게 다시는 없을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시작된다.
감상평
나의 평가 ★★★★☆
내가 전해주고 싶었던 '아름다웠다'는 것은 내 세계관의 바탕이기도 한 '인생은 끔찍하다'라는 끔찍한 현실 속에서 버텨나가면서 느껴지는 살아있음의 소중함이다. 나의 일주일이, 세상을 먼저 마감한 사람들이 너무나 바라던 일주일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비로소 그 때 아름다움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관한 민규동 감독의 인터뷰 중에서-
마치 소포클레스가 남긴 명언을 민규동 식으로 약간 변주한 느낌이 폴폴 난다. 시간적으로는 하루에서 일주일로 팽창했으며 감독 자신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첨언하여 탄생한 위에 저 문장은 삶을 바라보는 내 세계관과도 맞닿아있다.
내 생각에 이 영화가 작품으로서 지닌 최고의 강점은 각본이다. 내가 무엇보다도 각본을 최고로 꼽는 것은 단지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은 바로 다중구조를 들 수 있는데, 내 생각에 제작자나 감독 입장에선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종의 모험을 했다고 봐야한다. 필시 이런 영화들은 대개 런타임이 길고, 앙상블(ensemble) 효과를 내는데 주력한다. 미국의 어떤 영화 시상식에서는 최고의 앙상블 연기를 보여준 작품의 배우들에게 앙상블 연기상을 수여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선 왜 이런 시상부문이 존재하지 않을까?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한국에 앙상블 연기상이 있었다면, 그해 앙상블 연기상을 받고도 남을 작품이 바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지 않을까싶다. 물론 2005년도에 개봉된 작품들을 다 보지 못했으므로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 자체만 평가했을 때 그렇단 얘기다. 결국 상대평가보단 절대평가를 할 수 밖에. 그만큼 이 영화는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가 돋보인다. 다양한 커플들의 이야기들을 균등하게 배분하느라 애쓴 감독의 노고가 헛되지 않을 정도로 배우들 각자가 홀로 튀는 연기보다는 작품 전체를 생각하는 현명함을 발휘했다고 보여진다. 결론적으로 어느 한부분만 도드라지지 않고 각각의 플롯과 그에 따른 배우들의 연기가 유려하게 섞이고 배열되면서 균형 잡힌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종국적으로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각각의 배우들을 진두지휘하며 그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조율해나간 감독의 공이 절대적이다. 감독(이 영화에서 각본도 겸했기에)이 이야기 구조과정에서 조합과 배열을 탁월하게 잘한 덕분에 이야기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무게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다중구조를 지닌 영화들은 이제껏 꽤 많이 나왔다. 거의 대부분 할리우드에서 생산되었는데, '펄프 픽션', '매그놀리아', '러브 액츄얼리' 그리고 로버트 올트먼의 일부 작품들... 다중구조를 가진 영화들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일종의 모자이크로 비유할 수도 있겠다. 섞일 것 같지 않은 서로 다른 각각의 조각들이 하나로 뭉쳐졌을 때, 각자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다른 빛깔들을 내며 묘한 화음을 내는 모자이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보면서도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서로 마주칠 일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경계선을 허물고 서로 만나고 교차하며 스쳐지나가는 순간 그리고 그것에만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서로 간에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것이 플롯에도 영향을 미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플롯이 흘러가고 그로인해 입체적인 내러티브가 형성된다는 점이 다중구조가 가진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본다. 이 영화는 각각의 플롯을 이어주는 이음새가 거의 표시가 안날 정도의 놀라운 박음질 솜씨를 자랑하며 시종일관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이야기 연결을 보여준다. 연결점을 적절하게 잡았고 무엇보다 각각의 연결점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연하게 각각의 커플들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 흐름이 보는 이를 감탄케 한다. 다중구조가 연출자에겐 다소 부담이 되는 구성이긴 하지만 이처럼 짜임새 있는 각본과 역량 있는 감독의 훌륭한 연출이 뒷받침만 된다면 보통의 일반적인 평면식 구성의 영화들보다 결과물은 더 좋을 수 있다. 반대로 배우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액자식 구성이 반가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연기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특정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긴 어려워도 작품 하나를 책임지는 짐을 서로 나눠가질 수가 있다. 그러니까 다중구조라는 전제하에 주요등장인물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배우 한 사람이 감당해야할 몫은 적어지는 셈이다. 대신 이 때는 배우들 간에 서로에 대한 양보와 배려,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해진다. 생각해보니 작가(연출자라는 뜻도 포함된 영화작가라는 의미에서 사용) 입장에서도 한두 명의 걸출한 배우에게 극 전체를 끌고 가는 핵심 키를 쥐어주는 방식보다 그럭저럭 연기 잘하는 괜찮은 배우들을 떼거리로 등장시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내는 방식이 오히려 리스크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는 점에서 다중구조의 가치와 효용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내 개인적으로 영화상에서 가장 짜증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엄정화와 임창정이 각각 연기한 인물들이다. 가장 짜증나는 커플로는 역시 엄정화와 황정민 커플을 꼽는다. 두 사람은 극중에서 가장 희극적인 캐릭터성을 보유한 희극적인 커플이지만 비호감 캐릭터들인데다 그들의 오버스러운 연기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엄정화가 연기한 허유정이란 인물은 소위 말하는 된장녀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초반엔, 토론 프로그램까지 나와 지성미와 우아함을 동시에 뽐내는 듯 하다가 황정민이 연기한 단순무식 형사 나두철을 만나더니 이내 과격한 성격과 무개념의 백치근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이 여자는 결말부에 가면 자신의 아이가 유괴된 줄 알고 오해하는 바람에 괜히 잘못도 없는 나 형사에게 화풀이를 하고 우아함은 쉽게 집어던진 채 조선시대의 여인네처럼 통곡을 하더니 진실이 밝혀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해맑은 웃음을 보이는 일종의 정신병적 생쇼를 한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됐는지 개탄할 일이다. 환자보다 증상이 심한 정신과 의사가 오히려 정상에 가까운 환자에게 약을 처방해주고 상담을 해주는 일종의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의 조짐이 보인다. 이미 현실에서는 존재하는 일이다. 히스테리의 최고봉 허유정이 막가파 형사 나두철에게 저돌적으로 대시하는 바람에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는 부분에서 우리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게 된다. 된장녀에겐 단순무식한 남자가 제격이라는 사실을. 아님 솔로가 제격일수도. 임창정이 맡은 캐릭터는 너무 찌질해서 싫다. 뭔 사내가 그렇게 소심하고 비굴하며 약해빠졌는지. 하여간 임창정이 연기하기엔 딱 안성맞춤 캐릭터다. 반면에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로는 서영희를 꼽겠다. 사실 영화상에서 서영희가 맡은 역할은 그리 돋보이는 캐릭터는 아니다. 종반부에 큰 활약을 한 걸 제외하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인상적으로 느끼는 건,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는 종반부에 드라마가 최고치로 피치를 올리기 때문에 그로인한 각인효과가 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결국엔 서영희의 연기가 훌륭했기 때문이다. 굳이 누구처럼 드러내놓고 표출하는 연기가 아님에도 그녀는 절제되고 깊은 감정연기를 소화해냈다.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이미 이 때 서영희는 가능성이 한껏 잠재된 무서운 배우였다.
인상적인 커플로는 천호진 김태현 커플과 윤진서 정경호 커플을 꼽는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동성커플인 천호진 김태현 커플은 내게는 그 어떤 커플보다 애잔함을 크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천호진이 연기한 인물 조재경과 김태현이 맡은 역할 가정부 민태현. 사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다. 다만 서로에 대한 일종의 친구 같은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여기서 두 사람의 성적취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 다 게이인지 아님 둘 다 아닌지 그것도 아니면 둘 중 어느 한 사람만 그런 건지 따위의 질문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재경이 과거 학창시절에 동성애적 경험을 하긴 했으나, 사랑 때문에 그가 태현에게 가지 말라며 붙잡고 애원한 게 아니다. 마치 애무하듯이 태현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건드리며 밀치는 재경의 행동은 그의 게이성향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긴 하나, 그게 본질은 아니다. 진실은 그가 처절할 정도로 외로움에 직면해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냥 겉으로 느끼기엔 으리으리한 집에서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듯 보이지만 실은 마누라는 이미 남편과 살기 싫어 떠났고 아이는 엄마의 품으로 가버렸으며 마지막 남은 태현마저 떠나려하니 그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그의 주변엔 돈과 출세를 목적으로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외엔 없다. 유일하게 그의 옆에 남아있는 사람은 가족(아들 지석)과 돈을 받고 일하는 피고용자 태현 뿐이다. 지석에게 재경은 남을 도와주는데 인색한 아빠이고, 태현에게는 돈은 많지만 친구하나 없는 왕따로 여겨질 따름이다. 세상에 대한 재경의 지독한 냉소는 영화 초반에, 그가 TV 화면으로 나오는 자선모금과 관련된 영상을 보고 "가식적인 놈들"이라고 비아냥대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결국 재경의 닫힌 마음은 타인에 대한 분노와 경멸로서 표출돼 상대방을 아프게 찔러 타인은 물론 그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마저 그의 곁을 떠나게 만들고 상처는 그렇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그의 내면을 곪아터지게 만드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그를 보면, 외로움에 벌거벗겨진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재경과의 장면에서 우리는 뜻밖에 낯익은 배우 한명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은 충무로에서 당대 최고의 배우로 꼽히는 김윤석이 등장한다. '타짜'와 달리 여기서는 씬 스틸러(scene stealer)까진 아니었지만, 단 한 장면에 출연하면서 이렇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대한민국에서 정말 흔치 않다. 그가 연기한 인물 동만이 재경에게 찾아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그의 유일한 출연분량이다. 영정사진으로 등장한 분량과 음성출연은 빼고. 영화상에서 중요한 장면에 속하는데, 여기서 재경은 과거에 자신이 동만에게 받은 상처를 거론하며 동만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종의 복수를 한다. 영화를 찬찬히 살펴보니, 과거에 재경이 동만에게 받았다던 상처가 경제적인 부탁을 거절당한 것에 비롯된 감정을 의미하는 것 같진 않다. 아마도 사적인 부분에서 발생된 문제였던 걸로 보인다. 사적으로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서로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확보하자는 취지로 동만이 한 이야기를 재경이 절교선언으로 오해해서 받아들였던 게 화근이 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커플 윤진서와 정경호는 가장 젊고 싱그러운 커플(김유정 이병준 꼬마커플은 너무 어려서 제외하고)이라 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극중에서 유일하게 맺어지지 않는 불운의 커플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피상적으로 보면 그들은 불운의 커플이지만, 본질로 들어가면 행복한 커플일 수 있다. 수녀가 되는 여자는 남자를 구원했고 동시에 자신도 구원받았다. 꼭 커플로서 맺어지고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 들어와야만 사랑이 완성된다고 여기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다. 어차피 여자는 수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수녀가 되었다. 그러나 여자가 불행해보이지 않는 건,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남자와 열렬히 사랑을 나눴기 때문이다. 남자를 그토록 속앓이하며 짝사랑했지만 처음에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고 멀리했다. 그러나 여자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남자에게 아낌없이 퍼주고 선인장을 가슴에 품고 나서야 남자는 뒤늦게 여자의 마음을 알고 사랑을 준다. 여자는 그렇게 남자의 아픈 부분과 허물, 치부와 모난 부분까지도 전부 끌어안겠다며 선인장 가시를 가슴에 박아둔다. 처음엔 키우기 쉽다고 집안에 마구 들여놓다가 이내 특유의 건조함과 삭막함에 질리고, 물 조절을 못하면 금세 시들어지는 까탈스러움과 다가가면 갈수록 가시로 아프게 찌를 것만 같은 불안함은 모두가 선인장을 기피하고 결국엔 버리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반대로 여자는 성녀의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애초에 여자가 사랑한 건 선인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속세의 연애담으로 풀이하자면, 어둠의 마성을 지닌 나쁜 남자 혹은 상처 많은 삐뚤어진 아웃사이더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는 여자로 봐야 할듯. 아무튼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즈음, 여자는 더 이상 여한이 없는 듯 모든 걸 내려놓고 속세와 이별을 선언한다. 남자는 여자를 애써 붙잡으려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고 돌아서서 평온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성당을 빠져나온다. 남자의 미소와 표정, 돌아선 발자국과 흥얼거리는 자신의 노래는 진정 사랑을 깨닫고 구원받은 자만이 내보일 수 있는 모습이다. 남자는 여자로 인해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내면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 상대를 자기 멋대로 바꾸려하고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추며 놓지 않으려 집착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짓인지를 깨달은 남자는 진정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한다. 집착에서 벗어난 남자는 여자를 놓아주고 자신을 구원해준 여자에 대한 답례로 여자가 평소 좋아했던 (자신의) 노래를 선물로 안긴다. 비록 여자가 듣진 못하더라도... 그래도 마음으로는 듣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이들이 영화에서 가장 깊고 순수한 사랑을 한 커플이라 생각된다. 영화 종반부에, 윤진서가 정경호와 키스를 하자 정경호가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흡사 '엑스맨'에서 로그가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고 남자친구를 골로 가게 만드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두 인물 다 의도치 않게 상대 남자를 곤경에 빠뜨린다는 측면에선 같지만, 결과에 대한 원인은 서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종교적 도그마에 의해서, 후자는 돌연변이(mutant)적 특성 때문에. 양자 모두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는 측면에선 또 서로 비슷하다. 어떻게 보면, 본질적으로 전자와 후자는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돌연변이야말로 신(God)에게서 버림받고 보통의 인간들로부터는 배척당하고 멸시받는 일종의 소수(minority)계층이고 왕따 집단이다. 영화 속 윤진서는 또 어떠한가. 그녀 역시 창조주에게 버림받은 혹은 그에게서 등을 돌린 나약한 인물이며 주변인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역시 재경과 같은 부류의 외톨이다.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고민으로 딜레마를 겪는다는 점도 유사하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처음엔 자신들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거부하다가 종국엔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운명 수용의 과정을 거친다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서는 두 명의 정경호가 등장한다. 한 명은 비중 있는 역을 맡은 발작환자이고, 나머지 하나는 악질 캐릭터로 특별출연했다. 더 재밌는 건, 동일한 이름을 가진 두 배우가 서로 너무나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서 참 놀라운 건, 각 인물들의 캐릭터에서부터 직업설정 그리고 그것들에 부합되는 대사와 기막히도록 정확하게 서로 맞물리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인물들 간의 화학작용까지 굳이 나무랄 데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출연진들 모두 연기는 왜 그렇게 다들 잘하는지. 해피엔딩이라는 결말만 놓고 보면, 유사 장르의 타 작품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관객에게 설교를 하거나 일방적으로 (관객들을) 교화시키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 약간 교훈적인 결말로 느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관객들로 하여금 지극히 자연스런 감동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진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드라마가 훌륭하고 관객에게 전하고자하는 영화의 메시지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물질문명의 가속화는 언제나 구시대의 유물을 청산하라고 요구한다. 곽 회장이 운영하는 단관극장은 멀티플렉스 시대를 맞이하여 위기를 맞는다. 이것은 곧 20세기의 낡은 유물이 21세기의 보물에게 도전을 받는 형국이다. 20세기를 통과하며 삶의 거의 대부분을 보내며 살아온 곽만철은 거대하게 밀려오는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말에 가면,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무슨 연유에선지 곽 회장이 멀티플렉스 계획을 취소하고 단관극장을 그대로 유지해나가겠다는 입장으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아마 그가 남몰래 사랑하는 여인 오선희가 그의 마음을 돌려놓은 '주인공'일 터. 이것은 결국 아날로그의 디지털에 대한 작지만 큰 승리이자 아날로그의 유효성과 미덕을 증명하는 사례에 다름 아니다. 그래선지 오선희에 대한 곽 회장의 사랑은 대단히 아날로그적이다. 곽만철이 오선희에게 극장 프러포즈를 하는 장면은 한국영화사상 가장 감동적이고 로맨틱한 프러포즈 장면으로 꼽힐만하다. 이 영화만 놓고 본다면, 노년의 사랑이 파릇파릇한 청년의 사랑보다 더 낭만적이고 순수해 보인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개봉 전부터 '새드 무비'와 비교를 많이 당하곤 했다. 두 작품 다 개봉시기가 엇비슷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 구성방식과 장르 그리고 떼거지로 배우들이 나온다는 점이 흡사했기 때문이다. 각각의 다양한 커플들의 이야기를 다중구조 형식으로 빚어낸 로맨틱 드라마라는 공통분모가 두 영화 사이에 존재한다. 두 작품이 모두 공개되기 전에는, 대부분 '새드 무비'의 우위를 점치는 분위기였다. 작품에 대한 기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새드 무비'가 캐스팅이 더 화려하고 왠지 세련된 로맨스 영화처럼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새드 무비'와의 대결에서 압승을 거뒀다. '새드 무비'가 대체적으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실망 섞인 반응을 얻었다면, 반면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기대 이상의 수작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제작단계서부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로 홍보되곤 했었다. 그러나 정작 민규동 감독은 이러한 마케팅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냐면 애초에 그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롤 모델로 삼았던 작품은 '매그놀리아'였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도, '러브 액츄얼리'보다는 '매그놀리아'쪽이 근사치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 일단 세 작품 모두 다중구조라는 형식은 비슷하다. 다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통한 삶에 대한 희로애락과 그 속에서 발가벗겨져 울부짖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불완전한 결점 투성이의 인간들이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힘든 삶을 함께 껴안으려는 일종의 비극 속에서 희극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안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매그놀리아'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그에 반해, '러브 액츄얼리'는 이들 작품보다 훨씬 경쾌하고 트렌디하며 단선적인 느낌이 든다. 더 이상 영화가 예술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에 산업으로 넘어온 시점에서,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 해프닝은 마케팅의 비애라 불려도 됨직하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대책 없는 긍정주의를 표방한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맘에 든다. 그저 삶 자체에 경의를 표하고 끔찍한 삶을 그래도 버팅기며 살아가는 세상 모든 이들의 등을 토닥이며 격려를 보내는 작가의 선한 영혼이 그대로 내게 전달된다.
이 영화는 여러 번 보면 흥미가 배가되는 다중구조의 매력이 있다. 시퀀스가 다른 시퀀스로 넘어갈 때, 둘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점이 절묘하다. 사실은 앞 시퀀스와 그 다음 시퀀스가 각각의 서로 분리된 독자적인 시퀀스가 아니라 서로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관객에게 반복적으로 주지시킨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모두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있다. 마치 섬이 겉으로 보기엔 독립적으로 각각 홀로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아도 실상 수면 아래로 들어가면 하나의 군도로서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이 영화에도 어김없이 메타포가 등장하는데, 태현이 재경의 집에 가정부로 취업하려고 초인종을 누른 순간 재경은 점멸하는 형광등을 어찌할 도리 없이 바라만보고 있었다. 마치 태현의 등장을 알리듯 그 순간에 형광등 불빛은 껌벅거리고 있었고, 이것은 그가 재경의 삶에 등대나 빛의 역할을 하게 될 일종의 구원자임을 알리는 시그널 장치로 봐야한다. 임창정이 자신에게 빚 독촉을 했던 사람인 줄도 모르고 김수로를 구하러 지하철선로에 뛰어드는 장면은 삶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김수로(관료주의적 화이트칼라)가 임창정(힘없는 소시민)을 구하든가 아님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김수로를 임창정이 방관해야 맞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어쩌면 이것은 죽은 동만(김윤석)이 김수로를 구해준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나는 괜찮으니 죄책감 갖지 말라면서. 그래서 대신 임창정을 일종의 분신으로 내세워 그를 구해준 것이다.
영화의 런타임은 대개 두 시간 내외를 오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난 지금, 영화 자체의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영화 내부의 이야기로서 다뤄지는 시간을 말하려한다. 단 하루를 이야기로 담아내는 영화들.. 이를테면, '트레이닝 데이'와 '엘리펀트'가 있다. 김기덕의 '실제상황'과 조얼 슈마커의 '폰 부스'는 리얼타임으로 진행되는 흔치않은 작품들이다. 김기덕의 또 다른 작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사계절 아니 오계절을 시간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각각의 계절을 챕터식 구성으로 만든 놀라운 영화다. 그에 반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일주일을 시간적 테마로 설정하고, 그 안에서 실수투성이의 인간들이 교차하며 엮어내는 삶의 다채로운 빛깔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일주일은 각각의 요일마다 저마다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 한주가 시작되는 일요일, 기운찬 기분으로 시작하려는데 뭔가 어긋나고 삐걱대는 소리가 난다. 억지로 노력하면 할수록 파열음은 거칠어지고, 마의 고비에 해당하는 수요일이 되면 처음의 미세했던 균열이 어느 순간 크게 벌어져있음을 인지하게 되지만 이미 벌어진 틈새는 좁혀지지 않고 끝 간 데 없다. 금요일이 되면 절정에 올라 급기야 폭발에 이른다. 동시에 이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감정의 정화작용을 같이 동반한다. 관객에게도 이러한 감정적 해소는 비슷하게 전달된다. 일주일의 마지막 토요일에 이르면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정리되며 화해가 이루어진다. 마치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일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응축되어 담겨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영화 속 그들의 일주일이 특별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들이 저마다 특별한 경험으로 인식하는 일주일이 삶 전체로 봤을 땐, 그저 한 조각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 그보다 더 특별한 일주일이 없을거라 장담하긴 이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름답고 특별했던 일주일은 이미 그전에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인식의 범위 안에서는 벗어난 기억이기에 존재하지 않은 시간이 되버린 건 아닌지... 특별함은 평범함의 반대말이 아니다. 무(無)에서 창조된 특별함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有)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즉 평범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주해내느냐에 특별함의 창조 유무가 결정되는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여담시간! 이 영화의 제작사가 두사부필름 이라서 윤제균 감독과의 인연으로 하지원이 특별출연했다. '색즉시공'에서 같이 작업한 관계가 카메오 출연으로 이어진 건데, 두 사람의 인연은 이후로도 '1번가의 기적'을 거쳐 '7광구'까지 계속된다. 임창정이야 두말할 나위 없이 윤제균의 페르소나이고. '가족의 탄생'으로 유명한 김태용 감독의 카메오 출연도 인상적인데, 다름 아닌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민규동 감독과 공동연출을 했던 친분으로 잠깐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두 장면이 있는데, 그것을 끝으로 글을 마치련다. 하나는 황정민이 곽씨네 하우스(중의적 표현으로 사용)에서 극중이 아닌 실제 자신이 배우로서 출연했던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는 장면이다. 극중에서 엄정화와의 데이트 코스로 택한 장소인데, 여기서 민규동 감독의 놀라운 센스와 깊은 안목에 탄복하게 된다. 하고 많은 작품들 중에 왜 '달콤한 인생'을 골랐을까? 황정민이 출연한 영화를 고른다 해도 바로 전작 '너는 내 운명'이 있고 다른 작품들도 많을텐데... 특히 '너는 내 운명'은 장르적으로 볼 때, 데이트를 하는 남녀가 관람하기에 안성맞춤인 영화인데도(물론 황정민과 엄정화가 영화상에서 코미디 커플이라 숭고한 로맨스 영화와는 약간 언밸런스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굳이 감독이 '달콤한 인생'을 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달콤한 인생'이란 영화제목을 한번 보라. 뭔가 감이 오지 않나? 아직 모르겠다면 '달콤한 인생'의 영어제목을 상기시켜봐라. 그래도 깨닫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감독은 황정민을 대신 내세워 관객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이게 바로 감독이 관객들을 향해 날리는 결정타이다. '달콤한 인생'에서 황정민이 이병헌의 배를 송곳으로 찌르면서 내뱉었던 이 대사에는 감독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되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규동 감독은 자신이 말하고자했던 작품의 주제를 영화 속의 영화라는 연출적 장치를 빌려 일종의 메타포화 하고자 했다. 참으로 고단수의 연출을 보여주는 여우같은 감독의 일면이 아닐까싶다. 작품으로 봤을 땐 민규동 감독이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을 패러디한 게 되지만, 본질로 들어가면 이건 결국 황정민이 황정민 자신을 패러디한 격이 된다. 일종의 셀프 캐릭터 디스(Self Character Dis)? 나머지 하나는, 김수로가 대학선수시절에 여자친구 하지원한테 멋있게 보인답시고 자기 팀을 배신하면서까지 상대팀에게 승리를 헌납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저지르는 장면이다. 농구와 여자친구, 미래와 현재, 의리와 사랑, 팀플레이와 개인플레이 - 이들 사이에서 후자들만 택한 바보의 최후는 현재의 별 볼일 없는 그의 꼬락서니가 말해준다. 보면서,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가 연상됐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이연을 위해 1루가 아닌 관중석을 향해 공을 던지는 동치성. 둘 다 얼빠진 놈인 건 분명하다. 그치만 멋있잖아!
★★★★
한번으로 족하다. 이 끔찍한 생이여! 삶은 언제나 명암이 존재한다. 마냥 좋은 것도 마냥 나쁜 것도 없다. 진정으로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하려면 그것의 근원을 봐야한다. 그것이 고통의 비극에서 건져올린건지 아님 겉으로만 눈부신건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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