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천하장사 마돈나

찰나21 2011. 7. 26. 14:00

 

 
 
 천하장사 마돈나 (2006/한국)


장르 코미디, 드라마, 스포츠
감독 이해영, 이해준
출연 류덕환, 김윤석, 문세윤, 이언, 박영서, 윤원석, 김용훈

 

줄거리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동구는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새벽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 남몰래 화장을 하고 여자 옷 입기를 좋아하는 동구에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본인 선생이다. 수술을 해서 예쁜 여자의 모습으로 일본어 선생 앞에 당당히 나타나는 것이 동구의 소망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권투선수 출신의 아버지, 그런 남편이 싫어 가출한 엄마, 학교에서 동구를 괴롭히는 몹쓸 쌍둥이 녀석들. 그가 처한 주변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지만 동구는 긍정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동구가 열심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마저도 아버지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합의금으로 전부 날아간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동구가 아니다. 씨름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친구에게서 얻어낸 것이다. 이제부터 동구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사적으로 씨름에 매달리는데... 과연 동구는 인생의 뒤집기를 성공할 수 있을까?

 

감상평

나의 평가 ★★★★★

 

다시 봐도 여전히 유쾌하고 재밌으며 마음을 울리는 영화. 내가 보기에, <천하장사 마돈나>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다. 비슷한 이름의 두 감독이 공동연출을 했다는 점 때문에 형제감독으로 처음엔 인식하고 있었다. 근데 아닌 것 같더라. 어쨌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중요한건, 이 두 사람이 각본도 공동으로 집필했다는 사실이다. 근데 결과물이 만만치 않다. 실로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탄탄한 이야기구조를 바탕으로 잘 다듬어져있진 않지만 간단명료하게 허를 찌르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대사들과 세심하게 매만져진 캐릭터가 <천하장사 마돈나>를 격조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여러 편의 훌륭한 각본들을 써온 나름 알아주는 꽤 재주 있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들이다. 중요한 건, 이 작품이 두 사람의 장편영화 첫 데뷔작이란 사실이다. 데뷔작이란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명민하면서도 절제된 연출이 돋보인다. 거기다 배우들의 생명력 넘치는 연기는 활자로 기록되어 죽어있던 인물들과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스크린 위에서 살아 숨 쉬게 한다. 촬영도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촬영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지만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감(感)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지식이 얕거나 요즘 한창 유행하는 개그코너이기도한 '감수성'이 없는 사람 그리고 영화적 안테나를 세우지 않는 사람에겐 소위 말하는 '영화적 감(感)'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 그건 나만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며 어떠한 표현으로도 수식이 불가한 초월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로서 그리고 그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감흥으로 내 머리와 심장에 깊은 인장을 남긴다. 그것은 일종의 플래쉬(flash)와 같다. 바로 눈앞에 섬광처럼 순간 번뜩이며 지나가지만 여운은 오래도록 남는다. 이것이 바로 소설에선 발견할 수 없는 영화만의 특별한 힘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를 지나 오프닝에서 동구가 수술비용을 마련하기위해 막노동할 때 보여지는 카메라 앵글, 동구의 아버지가 막내아들에게 소주병을 던질 때 카메라 각도와 약간의 패닝(panning) 그리고 종반부 포클레인 시퀀스에서 동구 아버지가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린 채 자신에게 무언의 시위를 하는 동구의 머리 위로 포클레인을 작동시킬 때 보여지는 카메라의 시선, 그것과 동일한 시퀀스에서 동구의 아버지가 동구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팰 때 등장하는 부감 쇼트(shot) 등등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촬영이다. 또 하나 더하자면, 동구가 아버지를 뒤집기로 내팽개칠 때의 익스트림 롱 쇼트도 인상적이다. 이때는 슬로우 모션이라는 편집기법과 함께 음악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더 기억에 남는다.

 

타이틀 롤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 동구를 연기한 류덕환은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매우 비범한 연기를 펼친다. '묻지마 패밀리'- '내 나이키'편에서 그의 연기를 처음보고 범상치 않은 녀석임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작은 키에 평범하고 선한 마스크를 지녔지만 조금만 뒤집어보면 악마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양면성의 매력을 갖춘 배우다. 내가 보기에, 류덕환은 연기에 대해선 천재성을 가진 타고난 배우다. 더 무서운 건, 굉장한 노력파라는 사실이다. 분명 희소성의 가치가 있는 배우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류덕환이 관객에게 보여준 성실하면서도 근성 있는 연기는 모든 배우가 본받을만하다. 김윤석은 정말 괴물 같은 배우다. 그의 악마적인 카리스마와 화면 장악력은 대한민국의 어떤 배우도 넘보지 못할 만큼 압도적이다. 그것이 김윤석이 가진 장점이자 매력이고 힘이다. 그러나 단순히 압도적 카리스마와 화면 장악력만이 김윤석 연기의 전부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그의 연기는 때론 유머러스하면서도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힘이 있다. 할리우드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에 이런 배우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울 정도다. 만약 류덕환이 아닌 다른 배우가 동구를 연기했다면, 김윤석의 강렬한 연기에 묻혔을지 모른다. 백윤식은 어이없게도 엔딩 크레디트 상으론 특별출연이지만 그만의 독특한 코미디 연기로 묘한 웃음을 자아내며 미친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독특한 말투와 억양으로 대사를 맛깔나게 뱉는다. 확실히 그는 나이에 걸맞는 연륜 있는 연기를 보여주며 백윤식이 왜 충무로에서 없어선 안 될 중년배우인지를 증명해 보인다. 동구의 씨름 동료인 세 명의 씨름선수들은 다들 하나같이 재밌는 캐릭터들이다. 개그맨 출신의 문세윤은 코미디언들이 기본적으로 연기력은 타고났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실제로 작금의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성공한 이들을 보면, 코미디언 출신들이 꽤 많다. 로빈 윌리엄스, 짐 캐리, 톰 행크스, 빌 머리, 아덤 샌들러 etc. 이들은 모두 코미디 배우들이 정극연기도 얼마든지 충분히 잘 소화해낼 수 있음을 증명해보인 위대한 배우들이다. 오히려 드라마 전문배우가 하는 정극연기보다 이들 코미디 배우들이 하는 정극연기가 뭔가 모르게 페이소스가 더 느껴지고 감정이 더 풍부하며 이야기와 캐릭터를 더 깊게 만드는 힘이 있음을 많은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거기다 코미디 배우들이 정극연기를 하면, 관객들이 처음엔 낯설어하지만 반대로 신선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적응하고 익숙해진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단 이들 대부분이 코미디 영화가 아닌 스탠드업 코미디를 뿌리로 삼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물론 문세윤이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는 정극연기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가장 재밌는 캐릭터는, 씨름선수로선 최악의 결함을 타고난 극도로 민감한 간지럼증의 소유자 '덩치 쓰리'다. 그에게 시합에서의 승리란 애시당초 꿈도 꿀 수 없는 일에 불과하며, 그러한 아킬레스건에도 불구하고 씨름을 계속한다는 그 자체가 기적일 정도다.

 

영화에서 캐릭터의 이름은 의외로 중요하다. 그냥 아무 이름이나 갖다 붙이면 되는 줄 알지만 그렇진 않다. 한 인물의 이름이 캐릭터의 전부를 설명하진 않아도 대략적인 인물의 성격이나 분위기, 정서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동구'라는 이름은 뭔가 모르게 친근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든다. 왠지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씩씩하고 꿋꿋하게 헤쳐 나갈 인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부르기도 전에 벌써 숨부터 차오르는 '박차고나온놈이천하장사되겠네'는 가장 극단을 달리는 캐릭터 이름이며 한국영화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은 이름만 들어도 배꼽을 잡을만큼 웃음보가 터진다. 작가의 센스가 빛나는 대목이다.

 

내 생각에, 한국영화사상 이토록 절제된 코미디가 없었던 것 같다. 한국영화에서 흔히 저질러지는 감정과잉의 신파(거의 대부분 극 후반부에 등장)가 우리 영화의 고질병이라고 개인적으로 늘 생각해왔다. 그런데 <천하장사 마돈나>는 이런 고질적인 함정을 제대로 비켜간다. 간단한 예로, 이 영화에선 음악이 최대한 배제되어있다. 등장하더라도 가끔, 그것도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짧고 효과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천하장사 마돈나>가 또 하나 특이한 지점은, 거의 매 장면이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가슴이 먹먹하게 각 장면의 끝을 묘하게 장식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모든 장면이 하나같이 다 인상적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그냥 보기엔, 잔잔한 드라마라서 느린 호흡의 영화로 생각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의외로 빠른 호흡을 가진 영화다. 각각의 시퀀스는 그리 길지 않으며 불필요한 장면은 과감히 생략하는 군더더기 없는 편집과 효과적인 장면전환으로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상, 관객들이 지루해할 수 있는 부분을 제대로 피해간다. 장면전환 하니까 인상 깊은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동구가 일본어 선생에게 멘스를 시작했다고 알리며 서로 기뻐하다가 꿈인지 생시인지 알기 위해 일본어 선생이 동구의 볼을 꼬집자 바로 동구의 잠자리로 이어지며 꿈이었다고 밝혀지는 이 시퀀스에서 보여진 장면전환은 매우 탁월하고 적절한 감독의 선택이었다. 동화적이며 순정만화 같은 느낌을 제대로 살리면서 판타지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경계를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장면전환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천하장사 마돈나>는 지루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지루하게 느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트랜스포머'유의 영화나 평생 보라고 조용히 충고하고 싶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천하장사 마돈나>는 단순히 퀴어영화로 치부될 작품이 아니다. 표면적으론, 퀴어영화로 보일 수 있으나 그보다 더 많은 요소를 담고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나약하고 여린 영혼을 가진 한 소년의 성장영화이고 성장에 대한 매개체로서 씨름을 택한 스포츠영화이며 또한 다분히 사회성을 띤 정치적인 영화다. 동구 못지않게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로 동구의 아버지다. 여기서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오늘날의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녹아있다.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다수와 소수, 여성성과 남성성, 사회와 개인- 이런 식의 대립구조가 은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반드시 권력관계를 동반하게 되어있다. 즉 힘 있는 집단이 힘없는 집단을 밟고 위세를 부리며 거대한 손으로 쥐락펴락한다. 동구의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된다. 여기서 말한 직장은 당연히 3d업종(dangerous, dirty, difficult)을 의미한다. 그는 전형적인 블루칼라(bluecollar)로서 직장에서 해고되자 앙심을 품고 사장을 두들겨 팬다. 이쯤에서 그의 전력을 알아보자. 과거 복서였던 그는 이름 꽤나 알리던 선수였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거기다 고등학생 때, 이미 동구의 엄마와 눈이 맞아 무책임하게 아기를 덜컥 갖게 하는 바람에 결혼까지 하지만 경제적 무능과 성격파탄은 아내를 떠나게 만든다. 포장마차에서 그와 가장 가까운 직장 동생과 술을 마시다 외국인노동자에게 시비를 걸던 그가 그들 중 한명에게 도로 욕을 얻어먹는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웃기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안그래도 잘려서 기분이 엿 같은데 외국인노동자가 그의 시야에 들어오니 심리적 박탈감 때문에 홧김에 욕을 한 거다. 외국인노동자한텐 미안하지만, 동구 아버지에게 감정이입이 더 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짠했던 부분은, 동구 아버지가 자신을 해고한 사장에게 찾아가 양주를 내밀며 복직시켜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안타까움을 느낀 이유는, 자신을 내팽개친 사장을 죽여도 모자랄 판에 도리어 비겁하게 구걸하는 그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동생을 밟고 일어서더라도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며 살아보겠다는 그의 발버둥치는 모습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동구 아버지처럼 그렇게 비겁해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포장마차에서 동생은 자신의 처참한 현실과는 상반되게 아직도 영광스런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만 살아가는 그에게 "인생은 원래 비겁하게 살아야하는 거야"라고 체념한 듯 읊조린다. 동생의 말처럼, 세상은 선택의 여지조차 주지 않은 채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 자존심이고 신념이고 나발이고 다 버리게 만들고 그를 발가벗긴다. '더 레슬러'에서 주인공 '랜디'는 링으로 돌아가며, 애인 '캐시디'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가슴 찢기는 건 바로 저 세상인걸. 세상은 나 같은 거 관심없어. 들려? 저게 바로 내 세상이야." 그나마 랜디는 다시 돌아갈 곳이라도 있지만 그에겐 없다. 그는 이미 복서로서는 노인이고 퇴물이다. 적어도 링의 세계에선 그도 만인이 영웅으로 떠받들며 대접받던 사람 이였지만 링을 벗어나 사회라는 또 다른 거대한 링에서 그는 길 잃은 양이며 자본주의의 희생양이자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부랑자에 불과하단 사실이다. 그는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인간이 돼버렸다. 힘없고 무능한 가장으로서,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늘 불안정한 삶을 위태롭게 살아가는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비애가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동생도 그의 비겁했던 선택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된다. 부르주아에 해당하는 사장과 그의 아내가 크리스천이란 사실은 꽤 흥미롭다. 사장은 담배를 입에 문채로 성경을 읽는다. 전형적인 된장녀로 보이는 그의 아내는 강아지를 무지 사랑하며 욕설을 즐긴다. 더 웃긴 건, 병실에 입원해있는 사장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부자인 그에게 겸손하고 낮아지라며 조물주가 가난을 주었고 남을 위해 봉사하라며 그에게 병을 주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다. 실상은 그 반대인데 말이다. 참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천하장사 마돈나>는 한국 크리스천 부르주아의 허위의식을 통렬히 비판하고 풍자한다.

 

사람들은 대개 보면,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동구가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일 수 있다. 한마디로 동구 같은 사람을 보면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동구를 이해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다만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다. difference와 wrong은 분명 차이가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르다'를 '틀리다'로 오해하는 경우가 꽤 있다. 동구는 누구보다도 착하고 순수하며 예의바른 아이다. 동구가 자신을 성적으로 심하게 모욕하는 친구에게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라고 절규할 때, 관객인 나에게도 절절함과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가슴을 아프게 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정서가 내 맘에 꼭 든다. 요란스럽지 않아 좋다. 정적이고 잔잔하며 담백한 영화.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 일본영화 느낌도 난다. 그러나 <천하장사 마돈나>는 분명 한국적인 감성을 품고 있다. 감정을 쥐어짜지 않아도 별다른 트릭이나 눈요깃거리가 없어도 화면에서 단 일초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세공력은 가히 최고라 할만하다. 재미와 더불어 생각할 거리마저 남기는 이 영화는, 오동구라는 캐릭터처럼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비범함을 숨기고 있는 한국영화사상 보기 드문 무시무시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작고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을 매우 세심하고 정밀하게 포착해 묘사한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도 않고 별거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속을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꽉 차있는 숨어있는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다.

 

동구 아버지는 언제나 한방을 노리며 살아왔다. 근데 과연 우리네 인생이 한방이던가? 한방에 훅 간다는 유행어가 한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다분히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다. 인생은 커다란 한방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들로 채워져 있는 게 대부분이다. 우리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의미부여를 해야 한다. 자잘한 행복들이 지속적으로 모이다보면 큰 행복이 되는 것이다. 커다란 한방은 한 개인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반대로, 한 사람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흉기가 될 수 있기에 위험성을 느끼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의 유일한 흠이라면, 초난강의 연기를 들 수 있다.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연기가 어색하고 성의 없어 보인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한마디로 유쾌한 영화다. 다분히 심각할 수 있는 소재를 씨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매우 유연하고 유쾌한 이야기로 그려낸다. 그러나 아무리 천생 밝아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남모르는 그늘이 있듯 이 영화도 시종일관 유쾌함으로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그 속엔 남모를 아픔과 눈물, 상처, 갈등, 고난이 서려있다. 특이한 사실은, 이 영화에선 유독 화장실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일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되기도 하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감독의 재치와 장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동구 아버지가 처음 등장하는 시퀀스는 마치 할리우드 SF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또 하나는, 동구가 샅바를 물에 빨고 있는데 히치콕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음악이 깔리면서 세 명의 거구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나타나는 장면은 흡사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오마주(homage)라기 보단 일종의 패러디(parody)라고 할 수 있다. '반전의 미학'도 있다. 예컨대, 동구가 씨름을 하기로 결정하고 훈련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세 명의 덩치들이 하고 있는 게임은 그들의 우락부락한 외양과는 전혀 상반되는 귀엽고 소심한 모습이어서 순간 파열음을 일으키며 예상치 못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인물은 굉장히 진지한데 상황자체가 진지함으로부터 괴리될 때, 거기서 상충하며 발생하는 묘한 정서가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동구 아버지는 자식들과 전혀 소통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재밌는 장면이 하나 있다. 동구 아버지가 영화상에 처음 등장하는 시퀀스에서 연출되는 (만화처럼 다소 과장된 듯하지만)정체불명의 괴기스러운 생명체가 출몰하는듯한 영상효과와 그에 따른 음향효과 곧이어 나타나는 거대한 포클레인의 요란스런 등장과 동구의 공포에 질린 표정은 동구에게 아버지가 어떠한 이미지로 각인이 되어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사회에선 높은 벽 앞에서 꼬랑지내리는 약자지만 집에선 자식에게 권위적인 아버지로 군림하는 강자다.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건, 오도된 신념을 대물림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하다. 허나 단순함 속에 어떤 복잡한 철학도 달성 못하는 명료하고 직선적인 힘이 있다. 보는 사람의 가슴을 뜨끈히 데우는 훈훈함이 있다. 무겁게 메시지를 던지거나 훈계하려들지 않아도 관객들을 충분히 설득시키고 상황과 인물에 저절로 감정이입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편견없이 그들을 바라보게 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속내가 있는 법이니까. 악덕사장과 무개념 사모는 빼고.

 

동구는 뒤집기에 성공한다. 그러나 동구의 뒤집기는 기대와 다르게, 씨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아버지와의 대결에서 나온다. 거구에다 아직도 무시무시한 주먹을 갖고 있는 아버지를 상대로 동구는 기적 같은 뒤집기를 해 보인다. 그것도 거의 상대를 내팽개치듯이. 아버지는 순간 분명 놀랬을 거다. 그전까진 여리고 나약하다며 과소평가 했던 자신의 아들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전엔 미처 몰랐던 동구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동구는 이미 승자다. 우승여부와는 상관없이 그가 장학금에 도전한 순간, 이미 그는 승자였다. 어차피 그의 목표는 씨름대회 우승이 아니라 수술을 통해 여자로 거듭나는 거니까. 설사 우승을 못하더라도 동구는 분명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무조건 돈을 모아 수술 받을 게 뻔하다. 결론적으로 씨름을 통해 그가 얻은 건, 장학금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얻은 값진 교훈과 용기다. 어쨌거나 그는 정말로 우승했다. 근데 아이러니한 건, 그는 뒤집기로 이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그가 택한 방법은, 모든 걸 놓아버리는 것이다. 자유를 갈구하는 새처럼 하늘을 날듯 그저 공기에 몸을 맡기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그는 엉뚱하게도 자신이 컴플렉스로 여기던 점에 박힌 털로 막강 상대를 무기력하게 쓰러뜨린다. 이것은 절대 절망이 절대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며 열등감이 오히려 상대를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무기로 승화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위대한 순간이기도하다. 만약 그가 승리에 집착하느라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죽기 살기로 덤볐다면, 주장 말대로 상대가 오히려 그의 힘을 역이용해 균형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다. 마음을 비우고 있으면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행운이 찾아오기도 하고, 기대를 잔뜩 하고 뭔가에 집착하다보면 되는 일도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어떤 스릴러보다도 강력하고 놀라운 반전이지만 전율보다는 온몸에 해피바이러스가 퍼지는 듯한 훈훈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반전이다. 동구는 씨름판에선 뒤집기를 못했지만 인생에선 뒤집기에 성공한다. 영화는 씨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생을 비유적으로 설파한다. 동구가 어쩌면 어린 나이에 이미 모든 걸 초월해버린 것처럼,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자신도 마치 인생을 초탈한 대가라도 된 듯 무심코 흩뿌린 점들만 모아 단지 그것을 선으로 연결했을 뿐인데 마스터피스를 내놓은 격이다.

 

영화 말미에 'Like A Virgin'이 흐르는 가운데, 동구가 착시현상으로(영화적으론 판타지라 할 수 있다) 마돈나로 상정되는 금발의 파마머리를 한 여자를 따라가다 씨름대회 현수막을 발견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여기서 마돈나는 동구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도전하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일종의 멘토 역할 혹은 인생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결국 동구는 마돈나 덕분에 마돈나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돈의 노예들이다. 돈이 있어야 수술도 할 수 있고 자식들 밥 먹이며 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윤식이 연기한 씨름코치는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에겐 삶에 대한 집착도 돈과 명예에 대한 집착도 없다. 마치 한량처럼 하루하루 그저 흘려보내며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갈 뿐이다. 감정의 고저 없이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애써 발버둥치지 않고 흐르는 강물에 그저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의 말대로, 인생사 다 저절로 굴러가게 돼있다. 근데 그렇게 마음을 비우며 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것도, 실천하는 것도 모두 어렵긴 마찬가지니.  

 

★★★★☆

형용모순의 제목처럼 반어적인 매력이 있다. 여자(마돈나)가 되기 위해 씨름(천하장사)을 선택한다는 설정 자체가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씨름에 비유하자면, 마치 소년장사가 천하를 들어올리는 소리없는 괴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단순함의 미학이다. 잘 놀면서 공부도 잘하는 얄미운 학생처럼 매우 영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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