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뎁의 돈 쥬앙 (1994/미국) 장르 코미디, 드라마, 로맨스 감독 제러미 리븐 출연 말런 브랜도, 자니 뎁, 페이 더너웨이, 제럴딘 파일허스, 밥 디쉬, 레이철 티커튼 |
줄거리
한 젊은 청년이 건물 꼭대기 광고판 위, 좁은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가면을 쓰고 바람에 펄럭이는 망토를 걸친 그는 검을 들어 올리며 자신이 '돈 후안'이라고 외친다. 자신의 진실한 사랑이었던 한 여자로부터 실연당한 그는 삶의 이유를 상실한 채, 이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라면 전문가인 심리학 박사 '잭 미클러'는 그를 설득해 자살을 막는다. 뉴욕 퀸즈의 어느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망상증환자로 분류되어 잭에게 맡겨진다. 그리고 그들에겐 단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이 주어질 뿐이다. 열흘이란 기간 동안, 그는 잭에게 자신이 망상증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때부터, 돈 후안의 21년간 겪어온 환상적인 모험과 낭만의 오디세이가 펼쳐지는데...
감상평
나의 평가 ★☆☆☆☆
한마디로 황당무계한 영화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황당함은 시종일관 엔딩까지 계속된다. 때론 너무 황당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커다란 보름달을 배경으로 자신의 아내를 탐한 '돈 후안'을 죽이기 위해 '돈 알폰소'가 검을 들고 쫓아가는 장면이다. 단언컨대, 영화사상 최악의 장면으로 꼽힐만하다. 도대체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면을 연출했을까. 재미는커녕 장난이 도를 넘어섰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칭찬할 구석이 거의 없는 영화다. 음악, 연출, 촬영, 각본-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함량미달이다. 한마디로 완성도가 기본에도 못 미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말런 브랜도와 자니 뎁은 그들의 명성에 다소 못 미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들의 연기가 나빴다는 얘기가 아니다. 임팩트가 크지 않았단 의미다. 엄밀히 말해, 그건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일단 감독의 탓으로 돌려야겠다.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최소한이나마 기본적으로도 받쳐주지 않으면 제아무리 뛰어난 배우가 나와서 열심히 해도 연기와 매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된다. 일단 영화자체가 전체적으로 싱겁고 밋밋하다보니 배우들의 연기도 좀체 살지 않는다.
사실 <조니 뎁의 돈 쥬앙>은 내러티브가 접착력이 약하고 힘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긴하나 스토리는 나름 훌륭하고 좋다. 다만 이렇게 좋은 스토리를 플롯화 시키는데 있어 지나치게 무리수를 둔 측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좀 더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파고들었다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조니 뎁의 돈 쥬앙>은 17세기 과거와 20세기 현재를 넘나들며 시대극과 현대극을 오고가는데 여기에 영화적 판타지를 가미해 코미디 터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박스럽기 짝이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가벼운 지금의 결과물보단 오히려 현실에 좀 더 발을 디딘 채 리얼리티에 충실했다면 주인공 청년에게 진정으로 깊이 감정이입이 가능했을 거라는 나름의 생각도 해본다.
자니 뎁이 연기한 주인공 청년은 자신이 '돈 후안'이라고 생각하는 망상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언뜻 '케이-펙스'란 영화가 연상된다. '케이-펙스'에서는 자신이 우주 혹은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확신하는 망상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뻥이다. 자니 뎁이 타이틀 롤을 맡은 '돈 후안 드마르코'는 망상증환자가 아니다. 그는 일부러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이것이 이 영화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당황할 건 없다. '식스 센스'나 '아이덴티티'와 같이 강력한 반전을 무기로 하는 스릴러가 아니기에 알고 봐도 문제될 건 전혀 없으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반전이 아니라 그가 왜 '돈 후안'이라고 자칭하며 망상증환자처럼 굴어야했느냐다. 내가 보기엔 바로 이게, 이 영화의 핵심이자 감상 포인트다.
우선 관객들은 주인공 청년이 '돈 후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초반에 인지할 수 있다. 왜냐면 20세기라는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현실세계에 실재함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복면을 쓰고 검을 차고 17세기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가 벌인 자살소동은 한마디로 쇼에 불과했다. 그는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만약 잭 미클러 박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벌인 소동은 말 그대로 헛소동에 불과했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옥상에서 그에게 차분히 설득하던 잭을 보며 그는 단박에 '이 사람이다!' 싶었을 것이다. 내 치부를 다 털어놓아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줄 것 같은 신뢰가 느껴지는 사람. 보기만 해도 정이 느껴지고 마음이 편해지며 미소 지어지는 사람. 아마도 그에게 잭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주인공 청년은 잭에게 자신의 성장과정을 낱낱이 고백한다. 처음엔 그를 단순히 망상증환자로 치부했던 잭이 점점 그의 세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더니 그에게 동화되어간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엔, 그의 말을 믿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만나는 과정에서 잭은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선다. 다시 그를 객관화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과 예리한 지적에도 극도로 흥분하는 모습은 그가 진실을 감추는 듯한 인상과 함께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감지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청년은 여전히 자신이 '돈 후안'이라고 믿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 종반부에 이르면, 그의 고백을 통해 진실은 밝혀진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 '돈 후안'은 열등감의 산물이다. '돈 후안'은 실제로 신화 속의 인물이다. 그는 '돈 후안'에 관한 책을 읽고 '돈 후안'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사실 변변한 연애나 사랑조차도 못해본 숫총각이다. 여자에게 인기 없는 자신이 싫어서 그러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 카사노바로 불리는 '돈 후안'이란 캐릭터를 자신에게 빌려온 것이다. 또한 아버지가 어머니의 간통으로 인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단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숭고하게 죽은 것으로 대체해버렸다. 현실에서 씻을 수 없는 죄인인 어머니를 잊기 위해 어머니를 자식을 위해 희생한 훌륭한 사람이자 동시에 억울한 피해자로 미화했다. 대신 그 자신을 악역으로 만들었다. 현실에서의 어머니가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도나 훌리아'로 상정된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도나 훌리아도 죄책감에 못 이겨 수녀가 된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도나 훌리아의 남편은 현실에서와 달리 자신의 아내와 간통을 벌인 남자(돈 후안)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가 잭에게 털어놓았던 얘기와 달리, 그는 멕시코에서 태어나지도 성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라틴계 혈통의 본토 미국인이고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황량한 사막의 도시 피닉스에서 자랐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한 외로운 청년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그는 미모의 잡지표지모델에 반해 그녀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한다. 그가 반한 잡지표지모델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도나 아나'라는 이름의 여자로 상정된다. 물론 '도나 아나'란 이름은 그가 붙인 이름이고(아마도 '돈 후안'에 관한 책에 등장하는 여자인물이름인 듯싶다) 본명은 따로 있다. 결국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았지만 여자는 미친놈 취급하며 그의 사랑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러나 현실과 달리, 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도나 아나는 그를 끔찍이 사랑하고 수많은 여자와의 문란했던 그의 과거를 알게 되자, 오히려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를 떠난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투영시킨 완벽에 가까운 이상형의 여자 '도나 아나'라는 가상인물을 설정해놓고 그녀를 통해 현실세계에서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충족하려했던 것이다. 동시에 현실에서 그가 단칼에 거부당하며 겪었던 모욕과 상처를 여자가 질투심에 떠난 것으로 미화함으로서 애써 자신을 위로하려는 그의 나약함을 발견할 수 있다. 엔딩에서 그는 그의 판타지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도나 아나를 만난다. 그가 창조해낸 이야기에서처럼, 그녀는 정말로 복면을 쓴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니 뎁의 돈 쥬앙>의 엔딩 장면은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판타지에서 존재하던 인물이 현실세계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분명 실재하는 상황이지만 영화적인 설정이다. 논리적으로는 분명 말이 안 되지만 어차피 이건 허구를 그린 영화니까.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경계선에 있는 듯한 이러한 부분이 관객인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걸 한번 단순하고 쉽게 생각해보자.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수퍼맨이 초인이긴 하지만,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망토만 두른 채 하늘을 나는 게 논리적으론 말이 안 되지만 영화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듯이 말이다. 어쨌거나 영화에선 실재하는 상황이다.
주인공 청년은 유약하고 용기 없는 자신이 싫어 '돈 후안'이란 인물을 자신에게 대입시켜 용기와 배짱을 얻게 되고 직면하기 어려운 불우했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거창한 성공신화를 가공해낸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현상은 반대급부로 이뤄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의가 화두인 사회는 분명 정의가 결핍되어 있는 사회다. '나가수'열풍은 곧 아이돌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염증을 의미하는 동시에 음악의 본질과 진정성을 찾으려는 일종의 반작용이다. 역시 중용의 미덕이 사람에게도 사회에도 제일 중요하고 또한 어려운 것 같다.
개봉 당시, 이 영화가 매스컴의 찬사를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과연 이 영화가 찬사를 받을 만한 작품인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평가를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땐 영화를 이렇게 재미없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텐데 감독이 참 대~단하다. 영화에서 돈 후안은 인생에 있어서 사랑이 유일한 답이라며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예찬한다. 과연 그럴까? '물랑 루즈'에서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며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대던 '크리스천'과 다를 게 없다. 근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겐 무척이나 한가하게 들려서 말이다. 당시엔 이 영화가 어느 정도 먹혔는지 몰라도 지금은 턱도 없다. 감독의 진부하고 상투적이며 안이하고 게으른 연출은 당시에도 칭찬받을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일정도로 후지다. 인물들이 대사로 내뱉는 사랑에 관한 상찬은 아름답기는커녕 감동적이지도 않고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민망하기 짝이 없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그를 포함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만의 진리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절대적인 진리야!"라고 외치는 순간, 이미 그건 도그마가 된다. 물론 큰 틀에서 보면, 결국 모든 것이 사랑으로 귀결될 순 있으나 '어웨이 위 고'에서 나온 대사처럼 모든 미덕을 다 총동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포함해 정의, 관용, 우정, 희망, 신뢰, 배려, 희생, 헌신 등등. 결코 사랑이 이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무조건 사랑이 전부라는 그저 막연하고 대책 없는 공허한 메아리는 별로 와 닿지도 않고 도리어 거북하기만하다.
잭은 돈 후안을 통해 잃어버렸던 열정과 사랑 그리고 낭만을 되찾는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서적 영향과 정서적 공유는 실로 크다. 부정적인 정서는 자신에게만 그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쳐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만 내고 관계를 상하게 만든다. 반면 긍정적인 정서는 주변 사람들까지도 기분 좋게 만들고 서로간의 마음에 활기와 에너지를 불어넣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모두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관계를 더 좋게 발전시킨다.
이건 내 생각인데, <조니 뎁의 돈 쥬앙>은 말런 브랜도와 자니 뎁의 영화인생에선 오점으로 남을만한 영화다. 내가 알기로, 자니 뎁이 이 영화에 출연한 유일한 이유가 말런 브랜도와 같이 연기해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에드워드 노튼도 '스코어'에 출연할 때, 똑같이 말했었는데. 말런 브랜도는 확실히 후배 연기자들에겐 존경의 대상이다. 물론 개인사적으로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아마도 말런 브랜도는 코폴라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이 영화에 출연했을 것이다.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을 만든 코폴라가 이런 형편없는 영화를 제작하다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자니 뎁은 실제로 인디언 혈통을 일부 지니고 있지만 히스패닉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외모가 스패니쉬에 가까워 '돈 후안'이란 역할에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영화에서 말런 브랜도의 모습은 과거의 거칠고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늙고 뚱뚱한 모습으로 나와 실망감을 안겨준다. 이 영화에서 그의 모습은 마치 앤서니 홉킨스와 브라이언 콕스를 섞어놓은 듯하다. 어쨌든 결론은, 명배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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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자니 뎁의 매력은 그가 출연한 다른 영화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지지만 그래도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약간 살아있다. 연출, 음악, 각본, 촬영- 모든 부분에서 기본도 안될 만큼 완성도가 쳐진다. 마치 사랑이라는 환상의 마약에 빠진 어느 망상가의 궤변처럼 들릴 뿐이다. 현실감각을 너무 상실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