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품행 제로

찰나21 2011. 1. 15. 05:00

 

 
 
 품행 제로 (2002/한국)


장르 코미디
감독 조근식
출연 류승범, 임은경, 공효진

 

줄거리

문덕고에서 '싸움짱'을 고수하고 있는 중필. 그의 곁에는 충성어린 부하 '수동'과 오공주파를 이끌고 있는 여자친구 '나영'이 있다. 어느 날, 중필의 반에 '영만'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전학을 온다. 중필은 버스에서 영만과 같이 붙어있는 '민희'라는 이름의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영만을 친구로 포섭한다. 영만을 이용해 민희에게 점점 다가가는 중필. 한편, 싸움짱을 고수하고 있는 중필에게 라이벌 '상만'이 동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싸움짱 이라는 타이틀엔 이제 별관심이 없는 듯 민희와의 알콩달콩한 데이트로 정신이 없는 중필에게 나영은 찬물을 끼얹는다. 나영이 이끄는 오공주파는 중필을 대신해 상만이 이끌고 있는 '단군파'에게 도전을 하지만 흠씬 두들겨 맞고 돌아온다. 이제 더 이상 중필은 참을 수가 없다. 드디어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 중필은 상만에게 싸움짱 타이틀을 내건 결투를 신청하는데...

 

감상평

나의 평가 ★★★☆☆

 

비록 유치하지만 재미만큼은 충분한 영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품행이 단정치 못한 아니 제로에 가까운 주인공 '중필'은 한마디로 양아치다. 그런데 '품행 제로'는 중필만이 아니다. 중필의 친구 '수동' 그리고 '나영'의 패거리도 마찬가지다. 그런 양아치가(중필이) 모범생 '영만'을 친구로 포섭하더니 또 다른 모범생 '민희'에게 접근해 여자 친구로 만든다. 불량학생 중필은 모범생 민희에게 조금씩 동화되어가는 듯 했으나 결국 자신의 양아치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학교 짱을 놓고 라이벌 '상만'과 마지막 결투를 벌인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사람은 결코 변화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모범생은 모범생일수밖에 없고 양아치는 어쩔 수 없이 양아치일수밖에 없다. 자신의 타고난 성향이나 기질은 바꿀 수 없다. 살면서 약간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특성대로 살아간다. 영화에서 민희(모범생)와 중필(불량학생)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만(특히나 중필이 민희에게 영향을 크게 받는다) 둘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나중에야 그 차이를 절감하게 된다. 때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상대방을 동경하기도 하고 자기와 다른 행동은 모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작금의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론 과거로 돌아가 향수에 젖게도 만든다. <품행 제로>는 80년대의 아련한 추억과 기억을 환기시키는 영화다. 일명 '복고풍 영화'다. 이 영화가 제작된 시점에선(2002년도 영화다), 그런 의도가 먹혔겠지만 지금은 2011년이다. 그런 복고적인 정서를 느끼기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 같다. 지금 와서 보면, 괴리감을 많이 느낀다. 80년대 하면, 일단 경제적으로 가장 풍성한 시기였고 정신적으로도 의욕이 충만한 시대였다. 반대로, 철학적으로는 빈곤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80년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낭만'이다. 휴대폰도 없고 지금처럼 인터넷 문화도 없는 '아날로그 시대'였다. 아마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꽤나 많을 것이다. <품행 제로>를 보면, 80년대만의 문화가 오롯이 스크린에 새겨져있다. 롤러스케이트장, 나이트클럽(흔히 '닭장'이라고 불렸다)에서 디스코 추는 모습, 기타 교습소, 민희와 중필이 상가에서 고르던 빽판, '나이키' 운동화와 나이키 짝퉁 '나이스', 거기다가 김승진의 '스잔'과 더불어 전원일기까지. 80년대를 기억하고 경험한 이들에겐 큰 공감과 희열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나 80년대의 기억이 희미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겐 낯설게만 느껴질 것이다. 특히 지금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풍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예컨대,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바로 걸음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장면이나 학교에서 화생방 훈련을 하는 장면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충격적(?)이기도 하고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 이채로웠던 건, 영화에 나온 학생들이 의외로 자유로워 보인다는 사실이다. 80년대가 배경인데,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사복 복장에다 두발도 자유롭게 기르고 다니는 모습들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나마 공감이 간 부분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몽둥이찜질하거나 떠드는 학생들을 발로 밟는 장면이다. 요즘같이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돼있는 시대에서는 철지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 애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참 궁금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할지 그 반대일지 그건 모를 일이다. <품행 제로>에선 80년대의 그늘을 확인할 수가 없다. 그저 이 영화는 그 시절의 밝은 부분만 관객에게 보여준다. 80년대는 알다시피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었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비리는 끊이질 않았고 대학생들의 데모와 시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3S 정책(스포츠, 섹스, 스크린)으로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서 눈을 떼고 스포츠나 문화 쪽으로 관심과 시선을 돌리게끔 유도했다. 그리하여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출범되었으며 충무로는 에로영화만 양산시키는 섹스공장(?)이 돼버렸다.

 

80년대의 정서라는 걸 감안해도, 너무할 정도로 <품행 제로>는 유치찬란하며 키치적이다. 재미는 있으나 단지 그 뿐이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 중필과 민희가 벤치에서 키스를(생각해보니 뽀뽀 수준에 가까웠다) 하는 그 장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영화사상 최악의 대사가 등장한다. 중필이 민희의 안경을 뺏으면서 하는 말, "이렇게 험한 일은 남자가 하는 거야." 그러더니 민희의 안경을 닦아준다. 이건 거의 재앙에 가까운 장면이다. 감독의 의식수준이 의심스럽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참으로 한심하다. 거의 유아적인 발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 청춘들의 반항이나 고뇌 따위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청춘들은 그저 연애나 싸움 밖엔 없었나보다. 어떻게 보면,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들은 고민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기껏해야 이성에 대한 고민과 학교에서 짱이 되기 위한 고민밖엔 없으니. 지금도 그런가? 이 영화는 '단순함'이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인물도 감독도 그저 쉽게 간다. 솔직히 보는 사람도 맘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긴하다. 골치 아프게 머리 굴릴 필요도 없으니.

 

다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비호감 캐릭터들이 즐비하게 나온다는 사실이다. 힘없는 아이들 삥이나 뜯고 운동화 뺏어서 신고 싸움질이나 하고 남자친구 건드리지 말라며 머리채 휘어잡고 협박하며 온갖 양아치 짓거리는 다하고 다니는 인물들. 한마디로 패륜아들이며 인간쓰레기들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런 버러지새끼들은 여전히 학교에 존재하여 힘없는 약자에게 만행을 저지른다. 이런 바퀴벌레새끼들은 박멸돼야 한다.

 

사실 <품행 제로>는 류승범의 연기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는 영화다. 이건 연기라기 보단 현란한 개인기에 가깝다. '중필'이란 역할에 이토록 적역인 배우는 류승범 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연기에 보는 내내 감탄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듯하다. 물론 노력도 있었겠지만. 특히 기타를 튕기며 '스잔'을 부르는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배꼽잡고 웃은 장면이다. 임은경의 연기도 자연스럽고 괜찮았다. 내가 보기엔, 가능성이 보이는데 왜 활동을 더 이상 안하는지 모르겠다. 공효진의 연기도 괜찮다. 특히 연기가 가장 돋보였던 부분이 중필에게 '스잔이 좋냐 경아가 좋냐"라고 묻는 장면이다. '스잔'이라고 무뚝뚝하게 내뱉는 중필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에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때론 배우는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관객에게 묘한 울림을 주기도 한다. 나영과 민희가 라이벌인 것처럼 당시 김승진과 박혜성도 라이벌이었다. 두 라이벌의 노래 제목을 빗대어 중필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이 대사는 <품행 제로>에서 가장 빛나는 대사다.

 

마지막 중필과 상만의 결투 장면에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싸움이 현실적이어서 좋긴 했지만 갑자기 비장한 음악을 깔면서 감정을 고조시키는 감독의 연출이 도리어 거북하기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유혈 사태까지 벌어져 너무 살벌하고 잔인하게 느껴져서 더 거북했다. 결말에 해당하는 에필로그는 훈훈하지만 또 한편으론 싱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음악은 가히 최고다. 경쾌한 음악부터 가슴을 쿵쿵 때리는 힙합 음악까지.

 

오프닝 크레디트를 보고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책임진 사람이 바로 '천하장사 마돈나'의 연출자 이해영, 이해준이다. 생각해보니, 두 영화가 공통분모가 약간 있는 것 같다. 두 영화 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고 경쾌하며 유쾌한 정서를 가지고 깔끔하게 연출되었다는 점이 비슷한 것 같다. 특히나 <품행 제로>의 경우는 만화 같은 영상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왜 한국에는 청춘영화가 이리도 부재할까? 하긴 지금의 청춘들은 낭만은커녕 등록금 때문에 힘들고 취업 때문에 힘들다. 한마디로 삶이 고달프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의 청춘영화 시장은 척박하고 빈곤하다. 청춘영화라는 장르가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 할리우드처럼 청춘영화가 하나의 장르로서 일정하게 계속 제작이 되고 타깃이 되는 관객들이 고정적으로 봐준다면 정말 행복하겠다. 청춘영화는 청춘영화 나름의 고유한 에너지와 싱그러움이 있고 더 크게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충무로 제작자들이여! 지금부터 좀 각성하고 청춘영화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제작하는 열의를 보여라.    

 

 

★★☆

중필은 양아치이자 찌질한 놈이다. 싸움짱을 먹기 위해 친구의 형을 두들겨 패다니. 이 얼마나 야비하고 극악무도한 인간인가. 싸움짱 먹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 영화의 수준은 딱 이 정도다. 내 생각에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아직 정신적으로 사춘기에 머물러있는 듯하다. 재미는 있지만 유치함의 극치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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