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실미도

찰나21 2011. 1. 8. 05:55

 

 
 
 실미도 (2003/한국)


장르 액션, 드라마
감독 강우석
출연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임원희, 강성진, 강신일, 이정헌


줄거리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인간대접을 받을 수 없었던 '강인찬'은 어두운 과거와 함께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수감된다. 그런 그의 앞에 한 군인이 접근하여 "나라를 위해 칼을 잡을 수 있겠나"라는 엉뚱한 제안을 던지곤 그저 살인미수일 뿐인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인천 외딴 부둣가. 그곳엔 인찬 말고도 시꺼면 사내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그렇게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에 기관원에 의해 강제 차출된 31명이 모인다.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이 임무다"는 한마디를 시작으로 냉철한 '조 중사'의 인솔 하에 31명 훈련병들에 대한 혹독한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드디어 기나긴 지옥훈련을 마치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는 그들 앞에 예상치 못한 작전 취소 명령이 떨어지는데...

 

감상평

나의 평가 ★★★☆☆

 

참 슬픈 내용의 영화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영화에서 보여지는 역사적 현실은 슬프지만 영화 자체는 슬프지 않다. 감독의 연출은 어떠한 절제도 없으며 그저 감정 과잉으로 치닫는다. 인물들은 모두 격앙되어 있으며 감정을 표출하는 데만 익숙하다. 때론 그런 부분이 관객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 설경구의 연기는 그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특유의 광기어린 연기는 여전하다. 지겨울 정도다. 물론 한참 지난 영화이긴 하지만. 지금도 그닥 다르진 않다고 본다. 정재영의 연기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차분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안성기가 가장 눈에 띌 정도다. 음악은 어떤가? 말 그대로 과잉이다. 특히 극적인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비장미 넘치는 음악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려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버스 장면이다. 이 장면에선 여지없이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인물들의 감정이나 행동도 지나칠 정도로 비장미가 넘쳐 감정과잉이 되어버렸다. 이 장면이 누군가에겐 감동적인 장면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감동은커녕 짜증이 올라왔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보는 나는 불편했던 것이다. 연출자와 인물들은 그 순간에 비장미를 느끼고 있지만 정작 관객은 그것이 오버스러움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정말 훌륭한 연출은 인물은 울고 있지 않은데 관객이 슬퍼서 울도록 만드는 것이다.

 

<실미도>는 역사적 비극을 다룬 일종의 '에픽 무비'다. 나는 언젠가부터 바로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나에게는 정서적 괴리감만 느끼게 해주는 영화일 뿐이다. 그저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저 낡아빠진 이야기로 생각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평가들도 결국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면 감독의 연출력 부족으로 진단이 나온다. 이상하게도 강우석의 영화라서 그런지 화면이 너무 촌스럽고 평면적이다. 확실히 강우석 영화는 투박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한 투박함은 독립영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작가적 치기와 패기, 독창성에서 나오는 투박함이 아니다. 한마디로 서툰 연출에서 야기되는 투박함이다. 그의 영화는 극도로 단순하고 깊이가 없다. 한마디로 강우석은 단순 무식한 연출 스타일을 가진 감독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도 나름의 미덕은 있다. 바로 유머다. 역사적 비극을 다룬 이 영화에서도 그만의 유머가 있다. 물론 그의 유머는 전혀 고급스럽지 않다. <실미도>에서 보여주는 유머는 대부분 임원희 라는 배우에게서 나온다. 이 영화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그는 자신이 얼마나 코미디에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보인다. <실미도>는 일명 '강우석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들이 총출동한 영화다. 확실히 강우석은 인맥이 넓은 감독이다. 뭐 인맥 넓은 게 자랑은 아니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굴곡진 대한민국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건이다. 물론 100% 실화는 아니다. 허구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부분도 있으니까. 역시 <실미도>처럼 서사적인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는 개인적으로 내 정서나 성향에 별로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영화 자체는 나름 재미도 있고 몰입도도 높으며 맘 편하게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그렇지만 영화적인 완성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에도 여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역사적 비극을 다룬 영화이긴 하지만 <실미도>는 철저히 상업적인 오락영화다. 오락영화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오락영화도 잘 만들어야지 좋은 오락영화지. 예를 들면, 같은 오락영화라도 최동훈의 '타짜'는 때깔부터가 다르고 완성도도 굉장히 뛰어나지 않은가. 솔직히 천만 관객 동원이 무슨 의미가 있나. 제작자와 감독, 배우들에게만 좋은 거지. 그러나 아무리 천만 혹은 이천만이 들었다 한들, 나에게 별로인 영화라면 그런 수치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만 이 영화의 의미는 다른데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을 다시금 환기시킨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실은 이 영화를 통해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까.    

 

 

★★☆

싸구려 감상주의와 눈에 거슬리는 비장미가 영화의 격을 떨어뜨린다. 인위적으로 감동을 쥐어짜려는 연출이 불편하다. 실제로 이런 사건이 대한민국 과거에 있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씁쓸하다.

'영화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품행 제로  (0) 2011.01.15
Identity  (0) 2011.01.12
The Others  (0) 2011.01.04
8 Mile  (0) 2011.01.01
올드보이  (0) 2010.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