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2003/한국)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감독 박찬욱 출연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
줄거리
여기 '오대수'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있다. 어느 비오는 밤, 대수는 공중전화박스에서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다. 대수는 자신이 왜 갇혀있는지도 모른 채 15년간을 군만두만 먹으며 감금방에서 외로이 복수를 다짐한다. 드디어 대수는 15년 만에 세상으로 나오게 되고 자신을 가두었던 놈에게 복수를 하러 그 놈을 찾으러 나선다. 하지만 대수 그의 앞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감상평
나의 평가 ★★★★★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6년 전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영화다. 영화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연출, 연기, 각본, 미술, 음악- 모든 부분에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오프닝부터 영화는 이미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영화사 로고가 뜨면 긴장감과 장엄함을 타고 흐르는 음악이 깔리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서도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오프닝 장면을 기대하게 되고 이미 박찬욱이 관객에게 거는 주술에 걸려 이미 극 속으로 빠져들어간 상태가 되어버린다. 사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내러티브 상으론 맞지 않는다. 오프닝 장면은 극의 초반에 오대수가 세상의 빛을 처음 보는(여기서도 박찬욱은 대수의 눈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보여줌으로해서 의미를 강조시킨다) 장면에서 벌어지는 오광록과의 장면과 겹친다. 여기서 감독의 재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관객을 초반에 제압시켜야 겠다는 일종의 술수로 여겨진다. 곧이어 최민식이 자기 이름을 소개한다. 그리곤 화면은 파출소에서 행패 부리는 대수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보자. 파출소 장면에서 감독은 오대수 편에 자리잡은 인물들에게만 카메라를 들이댄다. 심문하는 경찰은 아예 보여주지도 않는다. 여기서 박찬욱의 스타일을 알 수 있다. 그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과감히 배제시키거나 건너뛰어 버린다. 그러니까 생략과 축약을 적절하게 잘 할줄 아는 감독인 것이다. 한마디로 화끈한 연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이런 스타일은 영화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장면도 에둘러가지 않고 정공법으로 화끈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거침이 없다.
<올드보이>의 특징 중 하나는 시종일관 음악이 흐른다는 점이다. 다양한 음악이 계속해서 연주되는데 때론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의도는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왜냐면 <올드보이>에서의 음악은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아마도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OST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내가 본 한국영화 중에서만 말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음악들의 향연은 한국영화에서도 보기 드물다고 여겨질 정도다. 마치 외국 영화음악 같은 느낌이 드는데 사실은 놀랍게도(?) 국내 음악가들이 작곡한 순수 한국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사실 관객들에겐 'the last waltz'-영화에서 총 세 번 등장하는 미도의 테마-가 제일 지지를 많이 받지만 오히려 이 곡은 너무 많이 들어서 좀 식상한 반면에 다른 음악들이 오히려 더 신선하고 더 세게 다가온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우니 이건 넘어가기로 하고.
이 영화가 특히 좋은 이유는 감독의 유머와 재치가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것도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 이건 좀 엉뚱한 얘기지만 크리스 놀런의 영화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다면 유머다. 그의 영화는 유머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너무 무겁게만 느껴진다. 반면에 <올드보이>는 굉장히 어두운 영화지만 곳곳에 배치된 유머 때문에 웃으면서도 볼 수 있어서 무척 맘에 든다. 영화를 보다보면, 박찬욱이 얼마나 똑똑하고 학식이 풍부한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이참에 한마디 하겠다. 평상시 독서를 안 하고 인문학적 소양이 결핍되어 있는 연출자는 영화에서도 그게 다 드러난다. 그들의 영화는 평면적이다. 반면에 크리스 놀런이나 박찬욱 같은 감독의 영화에선(물론 둘만 그런건 아니다) 지식의 깊이가 영화에서도 다 드러난다. 그들의 영화는 입체적이고 풍부하다. <올드보이>를 보다보면 감독의 발명품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노트 철사를 잉크에 찍어 문신을 새긴다거나 지하철에 등장하는 개미라던가 등등. 그리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라고 일컬어지는 장도리 액션 장면. 사실 아는 사람만 알지만 그 장면은 의도치 않게 탄생한 명장면이다. <올드보이>의 대단한 점은 어느 한 장면도 버릴 게 없을 정도로 모든 장면이 세공품처럼 정밀하게 연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모든 장면이 모든 컷이 다 매력적이다. 그 중에서도 어렵게 한 시퀀스를 꼽으라면, 늙은 오대수와 젊은 오대수가 종국적으로 하나가 되어 학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과거를 마주하는 시퀀스다. 우선 감독의 착상에 감탄을 표시하게 되고 그걸 또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절묘한 연출력과 음악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마디로 매혹적인 시퀀스다.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봤던 그 시절엔, 그저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화로만 생각되었었다. 근데 다시 보니, 굉장히 슬픈 영화다. 근친상간이라는 금기시되는 소재를 가져왔고 잔혹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박찬욱은 대중상업영화라는 틀 속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박찬욱은 자신의 스타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영화에 녹여냈다. 한마디로 대중적인 재미와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오프닝과 초반 아파트 옥상 장면에서 등장하는 오광록이 연기한 자살남이다.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되지 않지만 그는 강아지와 섹스를 한 '짐승만도 못한 놈'이다. 그래서 차 위로 투신자살을 한다. 그런데 오대수가 오광록을 옥상 난간에서 넥타이를 붙잡은 채 취하는 자세가 왠지 낯이 익지 않은가. 바로 합천댐에서 수아가 물에 빠져 죽기 전 우진이 수아의 팔을 붙잡은 채 취하던 자세와 똑같다. 수아는 동생 우진과 성관계를 가졌다. 그녀 역시 물에 빠져 죽는다. 결과적으로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성관계를 가진 두 인물 모두 투신해 죽었다.
<올드보이>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복수'다. 우진은 대수에게 복수를 하고 대수는 자신을 감금시킨 이름 모를 사내에게 복수를 꿈꾼다. 감금방에서 나온 대수는 복수를 시작하지만 우진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대수가 모든 진실을 알았다고 여길 쯤 이제서야 극의 퍼즐은 다 맞춰진 걸로 관객은 생각하고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감독은 퍼즐이 다 맞춰지기도 전에 퍼즐판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다. 여기서 영화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우진의 복수는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곧이어 대수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고 곧 절규한다. 그에 따라, 관객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낀다. 그런데 대수에게 통쾌하게 복수의 주먹을 두 번 날렸던 우진은 정작 복수가 끝나고 찾아온 엄청난 허탈감 때문에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보는 나도 허무하다. 결국 복수는 또 다른 비극을 부른다는 결말. 솔직히 복수해놓고 자살하는 건 좀 이해가 안 간다. 물론 장면 자체로 봤을 땐, 너무 훌륭하고 임팩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올드보이>는 크게 대수가 감금방에서 홀로 외로움과 싸우며 분노를 삼키는 1부와 대수가 감금방에서 나와 복수를 하러 가는 과정이 담긴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무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갇혀있는 건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영화이니 망정이지 만약 현실이라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사실 지금 와서 보니, 오대수를 연기한 최민식보다 이우진을 연기한 유지태가 더 눈에 들어온다. 최민식이 왜 처음에 이우진을 연기하고 싶어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우진 이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매력적인 역할이다. 동창인데도 얼굴만 봤을 때, 대수와 나이차가 현격히 느껴진다는 결정적 결함만 빼면 유지태의 중저음의 목소리와 호리호리한 길다란 체구는 슬픔을 간직한 이우진 역할에 딱 알맞게 느껴진다. 최민식의 광기어린 연기는 더 이상 말을 보탤 여지도 없다. 무엇보다 강혜정은 이 영화의 발견이다. 이 당시만해도 신인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는데(물론 신인이 아니었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연기와 독특한 마스크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뿜어낸다. 윤진서도 또 하나의 발견이다.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풍기는 인상적인 데뷔였다.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강렬한 연출은 시종일관 관객을 압도하고 클라이맥스까지 치달으며 비극의 종을 울린다. 엔딩에 이르면, 오대수와 몬스터가 분리된다. 몬스터는 과연 죽었을까. 이때, 이우진의 마지막 대사가 들린다. "누나하고 난 알면서도 서로 사랑했어요. 너희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혹시 오대수도 다 알면서 미도를 계속 사랑하는 건 아닐까. 미도만이 진실을 끝까지 모르게 한 채로.
사족하나, <올드보이>에는 철학적인 대사가 곳곳에 등장한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작은 죄든 큰 죄든 어차피 둘 다 죄고 둘 다 똑같은 죗값을 치뤄야 한다는 뜻 아닐까.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이 말이 나에게는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대사다. 이 말처럼 현실적이고 차갑고 면도날처럼 매섭게 느껴지는 대사도 없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잘나가고 행복할 때는 주위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다 같이 웃어주고 즐거워하지만 내가 불행하고 외롭고 슬플 때는 아무도 주위에 없고 나 혼자만이 외로움과 고독을 삼키며 눈물을 머금어야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건 어떨까. 강자(선)는 웃고 약자(악)는 운다. 마치 강자만이 세상에 살아남고 약자는 설자리도 없다는 말로 들리는군. 아무튼 한번쯤은 곱씹어 볼 말들이다.
★★★★☆
신들린듯한 연출, 감정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음악, 강렬한 연기, 화려한 미장센- 거의 모든 부분에서 완벽에 가깝다.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건 정말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하다. 엄청난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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