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Flawless

찰나21 2010. 8. 2. 04:11
(1999/미국)
장르
코미디, 범죄, 드라마
영화 줄거리

퇴역군인으로서 영웅이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바른 생활을 하는 월트 쿤츠. 그는 이웃인 여장남자 '러스티'를 혐오하는 완고한 보수주의자이기도 하다. 한편, 갱단 보스인 Z와 그의 일당은 Z의 돈을 가로챈 '앰버'의 아파트를 급습하고 앰버를 총으로 쏴 죽인다. 총성을 듣고 영웅 심리가 발동한 월트는 총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다 갑자기 쓰러지고 뇌졸중으로 반신불구가 된다. 언어치료를 위해 노래를 배우라는 물리치료사의 조언으로 인해 월트는 그가 그토록 혐오하던 러스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영화 감상평
나의 평가
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

 

 

 

최고다. 음악, 연기, 연출, 각본 모두 완벽에 가깝다. 내가 이 영화에 콩깍지가 씌었나. 그래서 다 좋아 보이는 건가. 좋아할만하니까 좋아하는 건데 뭐가 어떠랴.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이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건 그만큼 영화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에 대한 근거를 차근차근 밝혀보도록 하자. 일단 로버트 드 니로와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왜 이들이 대단한 배우인지 이 영화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실 비중으로 따지자면, 로버트 드 니로가 더 크긴 하지만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연기가 더 압도적이다. 상대배우를 잡아먹기로 소문난 엄청난 카리스마의 메소드 연기 달인 드 니로도 필립 시모어 호프먼은 잡아먹지 못했다. 오히려 필립 시모어 호프먼은 드 니로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도움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필립 시모어 호프먼은 평상시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들 중 두번째로 꼽고 있다. 이미 그의 연기는 다른 영화에서도 확인된바 있으니까. 사실은 <플로리스>로 이 배우를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난 후에 다른 영화에서 이 배우의 연기를 또 보게 되었다. 처음 그의 연기를 보았을 때, 예상외의 열연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이런 배우가 있었다니! 하면서. 어찌됐든 그는 어떤 영화에서건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로버트 드 니로의 경우는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면서 그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플로리스>에서 그의 연기는 흡사 영화 '사랑의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영화에서도 안면근육이 마비된 환자를 연기했었다. <플로리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마도 환자 연기의 달인인 것 같다. 너무나도 실감나게 환자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플로리스>에서 드 니로의 연기는 사려 깊고 진중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드 니로가 연기한 월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연민을 자아낸다. 이렇게 드 니로와 호프먼- 두 배우는 영화의 완성도에 크나큰 기여를 한 셈이다. 이 두 배우가 없었다면 혹은 다른 배우가 역할을 대체했다면 아마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 공산이 크다. 아니 드 니로와 호프먼 외에는 상상할 수 없다.

 

연기만 훌륭한 게 아니다. 음악도 좋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음악도 상당히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장악하는 탱고 음악이 내 마음을 울린다. 탱고를 출 때, 드 니로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몸짓과 표정에서 그의 감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아울러 영화 전체를 말해주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화만이 가진 그 무엇이다. 일종에 나에겐 체험이다. 감정적 체험.

 

<플로리스>는 플롯이 굉장히 세밀하게 잘 짜여진 영화다. 이 영화는 두 개의 플롯이 존재한다. Z 일당이 보스의 돈을 훔친 사람을 쫓는 플롯이 일단 큰 줄기를 이루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월트가 재활을 위해 러스티에게 노래를 배우는 플롯이 작은 줄기를 이룬다. 특히 월트가 러스티에게 노래강습을 받는 플롯이 굉장히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그것은 마치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고 보수와 진보의 충돌이며 영웅과 소수자의 만남이다. 어떻게 서로 만날 일없는 두 사람이 관계를 맺게 되었을까. 그 계기도 참 재밌다. 월트는 시에서 훈장까지 받은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다. 그런 그가 뇌졸중으로 안면근육이 마비되면서 여장남자인 러스티에게 노래를 배우게 된다. 월트는 권위적인 인물답게 동성애를 혐오하며 저주한다. 그러나 그렇게 완고한 그도 육체적으로 병마가 찾아오자 나약한 인물로 변한다. 한마디로 그도 러스티처럼 소수자가(성적소수자는 아니지만) 된 것이다. 월트의 캐릭터는 이미 영화 초반에 카메라가 그의 집에 진열된 소품들을 비추면서 설명된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단장 혹은 치장하는 월트와 러스티의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두 인물이 장차 관계를 형성할 것임을 암시한다. 사람의 가치관이란 게 그렇게 쉽게 변하겠나. 러스티에게 도움을 요청한 월트이지만 그래도 그는 기존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러스티에게 계속 성적으로 비하하는 욕설을 퍼붓고 러스티도 거기에 맞대응하지만 관객인 내 입장에서는 둘의 그런 말다툼이 재밌다. 그런 월트도 차츰 차츰 러스티에게 마음을 열고 위기의 순간에 그를 돕는다. 가치관이란 건 변하기 어렵지만 불가능한건 아니다. 월트처럼 완고한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변하지 않았나. 그의 가치관이 완전히 변했다고 확신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그는 말과 행동에서 변화를 보여주었다. 사실 우리 주변에도 월트처럼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하는 사람들. 러스티같은 성적소수자는 잘못된 부류가 아니라 보통의 우리와는 다른 부류일 뿐이다. 물론 보편적인 정서로는 거부감을 표시하는 게 이해되는 측면도 있으나 그렇다고 그들을 저주하거나 경멸해선 안 된다. 심지어 말살하려는 세력도 있다. 대단히 위험하고 어리석은 발상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주는게 있나? 단지 그들은 그들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망할 잡종'이라며 욕을 퍼붓는 월트에게 러스티가 하는 말,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거라구. 당신은 감당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존재가 전염병처럼 그들의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는 건 결코 아니다. 그건 일종의 공포심리 자극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성적취향이 다를 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생각도 다르고 이념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다 다르다. 만약 이 사회가 그런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고 획일화로 치닫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영웅 운운하는 월트에게 러스티는 단 한마디로 일침을 가한다. "영웅시대는 이제 끝났어." 맞다. 영웅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존재다. 우리는 영웅을 만들고 싶어 하고 혹은 영웅이 되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과연 영웅이 필요한가? 단 한사람이 모든 걸 해결하고 모든 걸 가능케 한다면 그건 신이나 다름없지. 이런 말이 있다. '불완전하지만 다양한 인간 백 명이 완벽한 인간 백 명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

 

영화 제목인 'flawless'는 '흠이 없는 또는 결점이 없는'이란 의미다. 매우 역설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월트와 러스티는 결점투성이의 인간들이다. 정반대의 가치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놀랄 만큼 공통점이 많다. 월트와 러스티는 둘 다 외로운 인물들이다. 월트는 뇌졸중 환자이고 러스티는 성적소수자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두 인물이 맺어나가는 관계는 감동적이며 흐뭇하다. 우리네 인생사는 사소한 것에서 모든 게 출발되고 결정되어진다. 사소한 계기가 그들의 관계를 만들고 사소한 말다툼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지만 다시 사소한 행동이 그들의 찢어질 듯한 관계를 회복시킨다. 소외된 두 인물이 만나 서로를 보듬고 품어주며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엔딩도 꽤 흐뭇하다.

 

<플로리스>의 미덕은 매우 진지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풀어간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도 않다. 조얼 슈마커가 균형감각을 잘 발휘한 덕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웃기는 장면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건 거의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연기 때문이다. 그는 코미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의 재치 넘치는 연기를 보면서 자지러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영화만의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건 뭐냐면 유명영화의 주인공들을 언급하는 대사에 있다. 이를테면, 러스티가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기 전에 "터미네이터 2의 린다 해밀턴이다"라고 주문을 외운다던가 목발을 짚고 다니는 월트에게 러스티의 친구 '차-차'가 "나의 왼발 오빠"라고 부른다던가 하는 장면들. 그 외에도 많다.

 

늘 고만고만한 영화만 만든다고 생각했던 조얼 슈마커가 이렇게 내 마음을 움직이다니.

 

아마도 게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도 이 영화를 보면 조금은 마음이 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러스티와 그의 친구들이 이토록 너무나 사랑스러운데..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연기가 더 대단하다. 두 배우의 호흡은 정말 최고다. 탱고 음악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진흙에서 발견한 진주같은 영화. 조얼 슈마커가 날 울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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