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노인에겐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최노인의 '영혼의 친구'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최노인이지만 희미한 소의 워낭 소리도 귀신같이 듣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른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갈까 논에 농약을 치지 않는 고집쟁이다.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 최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른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의 친구다.
그러던 어느 봄, 최노인은 수의사에게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듣는다...








우선 이 영화가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이례적으로 엄청나게 흥행을 한 것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다. 입소문이 큰 이유였겠지만 흥행을 할 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게 내 개인적인 판단이다. 이렇게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는 건 사실 경이로운 사건이다.
이 영화는 커다란 사건도 없고 아름다운 배우도 등장하지 않고 화려한 비주얼도 없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단조롭고 하품 날 정도다. 필름으로 촬영하지 않은 덕분에 화면조차도 평면적이다. 주름살에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늙은 소가 나올 뿐이다.
할머니는 시종일관 계속해서 할아버지와 늙은 소에게 짜증과 불평을 다 쏟아 붓는다. 계속 신세타령하고 팔자타령하면서 한숨만 푹푹 쉰다. 처음엔 할머니의 그런 모습들이 웃기고 재밌었지만 나중엔 내가 잔소리를 듣는 것처럼 귀가 아프고 짜증이 밀려왔다. 물론 '시골의 할머니가 다 그렇지 뭐'라고 이해하는 마음 또한 가지고 있으니 괘념치 않는다.
시골이라 배경이 아름답다. 비 내리는 소리.. 물이 흘러가는 소리.. 내 마음이 씻겨내려 가는 듯한 상쾌함을 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은 이유를 생각해보자. 우선 사회가 각박하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심신이 지쳐가는 가운데 이 영화가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의 역할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론 상업영화의 뻔한 이야기구조에 식상한 관객들이 신선한 영화를 찾는 와중에 이 단순하지만 진정성 있는 영화에 마음을 뺏긴 것이다. 더 넓게 보자면 독립영화에 관객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워낭소리'를 통해서 현대인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삶의 소중함과 느림의 자세를 깨닫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사실 요즘 영화들에 비하면 이 영화는 내세울게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눈물을 쏙 뺄 만큼의 진심이 담겨 있다. 사실 난 개인적으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받진 않았다. 물론 마지막 하일라이트 부분에서는 슬픔이 느껴졌지만 마음을 울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대략 짐작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기대했던 것만큼 대단한 영화는 아니다.
노을을 배경으로 늙은 소가 할아버지를 태우고 끌고 가는 장면은 인상 깊게 남아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 부분은 가치관이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옛날 방식을 고수한다. 편하게 갈 수도 있지만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힘든 길을 간다. 반대로 할머니와 주위 사람들은 편한 길을 가려한다. 거기서 할아버지는 그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고 소외된다. 요즘 세대의 가치관이라면 할아버지의 생각은 틀렸다고 말해야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할아버지는 그들과 다를 뿐이다. 옛날의 가치관이 무조건 틀리다고만 볼 수 없으니까. 할머니와 자녀들은 늙은 소를 팔라고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럴 수 없다. 입장 차이다. 자녀들 입장에서 그 늙은 소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팔라는 거다.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하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할머니를 위하는 말 인진 몰라도 할아버지에겐 그것은 상처다. 할아버지에게 늙은 소는 그냥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40년간 같이 지내온 영혼의 친구다. 할아버지에게 늙은 소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버팀목 같은 존재인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그토록 아끼는 소를 무척이나 많이 닮았다. 소처럼 외길을 가는 황소고집하며 느림의 미학을 알고 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소처럼 큰 눈망울이 아닌 작은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
확실히 '워낭소리'는 요즘에 나오는 영화들과는 아주 동떨어진 세계에 있는 보기 드문 영화다. 요즘 영화에서 등장하는 요소들은 거의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만큼은 살아있다. 감정의 결핍이 대세인 요즘 영화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할아버지가 한 말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나한테는 이 소가 사람보다 나아요.'


★★★☆
영화를 보면서 '집으로..'가 떠올랐다. 물론 다른 부분도 많지만. 특별한 사건도 아름다운 배우도 화려한 비주얼도 없다. 다만 진심이 있을 뿐이다. 눈을 감는 늙은 소.. 눈물 흘리는 늙은 소.. 슬퍼하는 할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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