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1 / 이성복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새가 울고 꽃이 피었겠습니까 당신의 슬픔은 이별의 거울입니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면 당신은 나를 들여다봅니다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 좋은 글 2019.06.30
역전(易傳) 1 / 이성복 며칠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눈물 흘리는 짐승들이 슬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기를 먹었습니다 넓적넓적 썰은 것을 구워 먹으니 맛이 좋았습니다 그날 아침 처형당한 간첩의 시체라고 했어요 한참을 토하다 고개 들어 보니 입가에 피범벅을 한 세상이 어그적어그적 고기를.. 좋은 글 2019.06.30
느낌 / 이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좋은 글 2019.06.28
길 1 / 이성복 길 1 그대 내 앞에 가고 나는 그대 뒤에 서고 그대와 나의 길은 통곡이었네 통곡이 너무 크면 입을 막고 그래도 너무 크면 귀를 막고 눈물이 우리 길을 지워 버렸네 눈물이 우리 길을 삼켜 버렸네 못다 간 우리 길은 멎어버린 통곡이었네 좋은 글 2019.06.25
강가에서 1 / 이성복 그대 목소리 듣고 강가로 나왔을 때 봄풀이 우거진 먼 언덕에서 내가 선 모래톱까지 하늘이 와 닿았네 강은 한 줄기 팍팍한 흐름 이었네 잔잔히 밀리는 물결은 떠나지 않았네 밀렸다가 다시 돌아 오는 모래들의 중얼거림, 그대 품은 너무 깊어 나는 거기 흐를 수 없었네 강은 굽이져 언덕 .. 좋은 글 2019.06.11
강 1 / 이성복 남들은 저를 보고 쓸쓸하다 합니다 해거름이 깔리는 저녁 미류나무 숲을 따라갔기 때문이지요 남들은 저를 보고 병들었다 합니다 매연에 찌들려 저의 얼굴이 검게 탔기 때문이지요 저는 쓸쓸한 적도 병든 적도 없습니다 서둘러 그들의 도시를 지나왔을 뿐입니다 제게로 오는 것들을 막.. 좋은 글 201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