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The Terminal

찰나21 2023. 8. 15. 10:05

 

 

 

 

 

 

 

터미널 (2004/미국)

 

장르 코미디, 드라마, 로맨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톰 행크스, 캐서린 제이타-존즈,

        스탠리 투치, 치 맥브라이드,

        디에이고 루나

 

 

 

감상평

나의 평가 ★★★★☆

 

오프닝부터 웃음을 자아낸다. 비행 정보 전광판에 영화사 이름과 영화 제목이 각각 차례로 큼지막하게 표시된다. 누가 터미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아니랄까 봐. '캐치 미 이프 유 캔' 이후 이런 오프닝 크레디트에 맛을 들였는지 스필버그의 장난기가 느껴진다. 직전에 만든 영화라서 그런가.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잔상이 여러모로 남아 있다. 그중 하나만 예를 들면 활주로 장면이다. 비행기에서 탈출하는 프랭크는 자수하고 미국에서 추방당하여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굽타가 되었다. 오프닝 크레디트가 지나가면 입국 심사원 앞에서 말을 버벅거리는 남루한 차림의 한 사내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빅토르 나보르스키. 영어식 발음으로 하면 빅터 나보르스키. '크라코지아'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왔다. 왜 생소할까? 그도 그럴 것이 크라코지아는 실재하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상적으로 설정한 국가이다. 어쩐지 '크로아티아'랑 발음이 비슷하지 않나?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주인공의 이름이 소개되었을 때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래, 맞다. 동유럽 국가이다. 동유럽 하면 뭐가 떠오르나? 사회주의. 근데 왜 주인공의 국적을 동유럽으로 설정했을까? 과거 20세기 미국의 라이벌은 소련이었다. 영화 <터미널>에는 주인공 빅터를 괴롭히며 못살게 구는 안타고니스트 프랭크 딕슨이 등장한다. 정치적으로 은유하면 빅터는 사회주의를 딕슨은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딕슨 스스로도 나한테 맞서는 건 미국에 맞서는 것이라고 빅터에게 말했을 정도니까. 고국에서 내란이 벌어져 오도 가도 못하고 터미널에 갇힌 신세가 되어 버린 빅터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접한 고국의 참상에 당혹스럽고 참담한 심정이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는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에 동화되기 작업에 들어간다. 동전 버는 법을 터득하고 와퍼 맛에 눈을 뜨고 책으로 영어를 공부하고 거래에 익숙해지고 '휴고 보스'에서 양복을 사 입는다. 참고로 영화 <터미널>도 '아이 엠 샘'처럼 PPL의 전시장 같은 역할을 한다. 가령 버거킹, 배스킨라빈스, 휴고 보스 등이 있다. 그렇게 영화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일방적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듯했으나 막판으로 갈수록 사회주의와의 공존(?)의 제스처를 취하며 자본주의 스스로 반성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엔딩에서 빅터가 딕슨을 따돌렸다고 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빅터가 왜 계속 기다리는지.. 왜 아비규환의 고국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왜 땅콩 깡통을 애지중지하는지.. 왜 어밀리아의 사랑을 받는지.. 

 

영화 <터미널>은 스필버그가 '우주 전쟁'과 '뮌헨'이라는 대작을 찍기 전에 쉬어 가는 영화로 그러니까 일종의 소품으로 찍은 영화다. 스필버그는 장르적으로 드라마와 SF를 번갈아가며 만드는 경향이 있다. 스필버그에게는 두 톰이 있다. 톰 크루즈와는 SF를 찍고 톰 행크스와는 드라마를 찍는다. 스필버그의 장기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나 <터미널> 같은 드라마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우주 전쟁' 같은 SF에서 두드러진다. 드라마 장르를 찍을 때 스필버그 영화는 나이브해진다. 화면 때깔은 언제나 최상이나 진부하고 상투적인 내러티브는 스필버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스필버그의 영화는 기술적으로는 찬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영혼을 울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굽타의 격한 의리나 서먼이 자신의 외투를 벗어 빅터의 어깨를 덮어 주며 미국의 문을 열어 주는 따스한 정은 뜻밖의 반전 감동이고 무엇보다 드디어 베니 골슨의 사인을 받고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 준 빅터가 마지막으로 베니 골슨의 사인이 새겨진 종이를 땅콩 캔에 넣으며 땅콩 캔에 입맞춤하고 집으로 향하는 엔딩은 머뭇거리던 엄지손가락을 기어코 치켜들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비록 그것이 얄팍한 감동일지라도 할리우드의 영악한 상술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다. 
 
터미널판 '캐스트 어웨이'. 무인도에서 터미널로 공간만 바뀌었을 뿐 톰 행크스는 여전히 갇혀 있다. 그를 숨 쉬게 하는 것은 나가서 베니 골슨의 사인을 받겠다는 꿈과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밀리아와의 사랑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에게 자유가 찾아오자 사랑은 떠나간다. 자유와 사랑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터미널을 떠나는 그와 터미널로 들어가는 그녀가 교차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잊히질 않는다. 난 왜 이제껏 영화 <터미널>을 코미디 드라마라고만 알고 있었을까. 캐서린 제이타-존즈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로맨스를 간과하고 있었다. 영화 <터미널>은 21세기에 나온 영화지만 20세기 할리우드의 고전 로맨스를 보는 듯한 향수를 자극한다. 멀리 갈 필요 없이 90년대 로맨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연상된다. 톰 행크스가 나오니 더 그런가. 각각 상대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캐서린 제이타-존즈와 멕 라이언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할리우드는 바보를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포레스트 검프'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라고 보여진다. 포레스트 검프는 장애인이고 빅터는 이방인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둘 다 바보로 그려진다. 영화 <터미널>을 보면 이방인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얼마나 야만적인지 알 수 있다. 'alien'이란 단어만 보더라도 양키들에게 이방인은 외계인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인 것이다. 어쩌면 외계인보다 더 낯설고 이질적인. 공교롭게도 빅터의 친구들도 하나같이 소수 인종이다. 멀로이는 흑인이고 엔리케는 히스패닉이고 굽타는 인도인이다. 이들 모두가 미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주변부에서 맴돌 뿐이다. 빅터는 백인이지만 영어도 서툴고 심지어 국적을 상실하여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터미널의 슈퍼스타가 됐을까. 자본주의의 이미지 세탁으로 가능했다. 방금 언급한 자본주의에 미국이나 할리우드를 대입시켜도 무방하다. 착한 자본주의를 꿈꾸는 미국. 결국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길밖에 없는가. 딕슨이 되거나 빅터가 되거나. 전자는 현실이고 후자는 허구다. 적어도 허구의 세계에서는 자본주의가 바보에게 항복하는 이야기가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은 거꾸로다. 자본주의가 바보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일종의 착취라고 할 수 있다. 위선적인 자본주의. 얼마나 모순인가. 
 
코미디와 드라마 그리고 로맨스가 결합된 스필버그의 판타지는 정치성을 희석시키고 현실의 고통을 탈색시킨다. 너무나 할리우드적인 스필버그적인 톰 행크스적인.. 전형적인 식상한 영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어찌 됐든 최종적으로는 개인으로 수렴된다. 
 
이런 역할에는 톰 행크스가 제격이다.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영어를 못하는데 잘하는 척 하는 연기가 어려울까? 영어를 잘하는데 못하는 척 하는 연기가 어려울까? 그에겐 영어가 모국어다. 모국어를 일부러 못하는 척 하는 연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그는 꽤나 능숙하게(?) 못하는 연기를 잘 해낸다. 묻는 질문마다 'Yes'로 답하는 장면에서는 '버스데이 걸'의 니콜 키드먼이 떠올랐다. 
 
극 중에서 딕슨의 대사에 화들짝 놀랐다. "나한테 맞서는 건 미국에 맞서는 거다." 그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이자 레이시스트이다. 한마디로 재수없는 캐릭터다. 딕슨이 미국이다. 빅터와 어밀리아의 대화에서 빈번히 언급되는 나폴레옹도 미국을 상징한다. 어밀리아는 나폴레옹의 에고가 나폴레옹을 살렸다고 말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비대해진 에고로 딕슨은 빅터를 놓쳤고 부쉬 정부는 이라크 전쟁에서 실패했으며 할리우드는 슈퍼히어로물의 대량 양산으로 망조가 들었고 자본주의는 인간성마저 집어삼키며 제어 불능의 폭주 기관차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어밀리아의 나폴레옹의 에고에 대한 예찬은 그녀가 아직도 20세기적 사유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영화 <터미널>은 비스킷을 먹는 데에 번번이 실패하는 어수룩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엔 딕슨 때문에 그 다음엔 어밀리아 때문에. 권력은 그의 입을 막고 사랑은 그의 눈을 멀게 만들었으니까.

 

 

★★★☆

이 영화의 진짜 악당은 어밀리아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빅터한테 의지하고 제멋대로 오해하여 빅터에게 상처를 주더니 자신의 애인이 돌아오자 곧바로 빅터를 떠나 버리는 여자. 대놓고 괴롭히는 딕슨보다 더 악질이다. 때론 위선이 악보다 더 볼썽사납다. 영화는 어밀리아의 위선을 닮았다. 화장은 두꺼워지고 어느덧 스필버그는 자신의 민낯을 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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