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효자동 이발사

찰나21 2023. 6. 19. 10:57

 

 

 

 

 

 

 

효자동 이발사 (2004/한국)

 

장르 코미디, 드라마

감독 임찬상

출연 송강호, 이재응, 문소리

 

 

 

 

감상평

나의 평가 ★★★★☆

개인과 역사는 어떻게 조우하는가. 주인공 성한모는 청와대 근처에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이발사로 채용된다. 게다가 대통령의 사진이 이발관에 걸려 있고 결정적으로 나중에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간첩 잡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그를 청와대 이발사로 만들어 주었다. 영화는 시간적으로 이승만 말기부터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 초기까지를 다루는데 박정희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니까 성한모를 박정희의 이발사라고 칭해도 무방한 것이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평범한 인물 성한모를 통해 평범하지 않았던 그 시대를 조롱하고 풍자한다. 조롱과 풍자의 방식은 역시 코미디다. 블랙 코미디는 언제나 웃으면서 뼈아프다. 가령 성한모가 마루구스병이 의심되는 아들을 파출소에 맡기면서 우리나라는 민주 국가라서 죄 없는 사람은 안 잡아간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아들을 잡아가는 식이다. 유머는 여유 있는 자의 몫이다. 어둠을 묘사하는 것은 밝음에 있을 때 가능하다. 이 영화는 참여 정부 시절에 만들어졌다. 비극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만만치 않은 내공의 작품이다.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기묘묘했던 그 시대가 가진 아이러니를 토대로 송강호의 페이소스 짙은 연기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어쩌다 한국 영화의 얼굴이 되었는가. 새삼스럽나? 지금은 그렇게 들리겠지만 '넘버 3'에 출연할 때만 해도 그가 장차 한국 영화의 얼굴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국민 배우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싫어하지만 20세기 충무로의 국민 배우가 안성기였다면 21세기 충무로의 국민 배우는 단연 송강호다. 한때 최민식, 설경구와 함께 한국 영화 남배우 트로이카 중의 1人으로 꼽히던 그였다. 그러나 송강호는 최민식, 설경구와는 연기의 결이 다르다. 최민식과 설경구가 강렬한 연기를 바탕으로 하는 정통파 배우라면 송강호는 연기의 도그마를 교란시키고 해체시키며 기존에 없던 다른 차원의 연기를 선보이는 돌연변이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송강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나는 그의 연기를 사랑한다. 돌이켜 보면 떼거리 주연들 중 1人으로 등장한 '조용한 가족'에서도 심지어 단역으로 출연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조차도 그는 낭중지추였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송강호가 '살인의 추억'으로 명실상부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오르고 난 직후에 출연한 차기작이다. '살인의 추억'만큼의 뜨거운 반응은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효자동 이발사였던 그는 오일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택시운전사'가 되고 부산으로 가서는 부림사건의 '변호인'이 되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이 영화에서 '박정희'라는 이름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영화 속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경의(?)를 표하는 각하가 박정희라는 사실을. 사사오입 개헌에 부정 선거에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박정희는 유신체제로 장기 집권을 노리다가 파국을 맞고 또 그 틈을 비집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결말은 아시다시피. 단지 설사를 했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전기 고문을 가하고 심지어 사형까지 시키고 전기 고문으로 애를 불구로 만들어 길바닥에 버리는 야만적인 시대에 분노를 넘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찌 보면 성한모의 아들이 그 지경이 된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날 고위층으로 보이는 사내가 이발관에 방문해 성한모에게 오늘밤 자정에 수상한 자가 나타날 것이니 신고 바란다고 명을 내린다. 성한모의 가족은 잠자리에 들고 천장에서 쥐새끼들이 달리는 소리에 성한모는 베개로 천장을 때린다. 간첩을 쥐새끼로 은유한 것이다. 이윽고 괘종시계는 종을 치고 성한모는 잠에서 깬다. 결과적으로 성한모는 잡기는 잡았지만 중앙정보부 요원을 간첩으로 오인해 정보부장에게 조인트를 까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각하의 이발사로 임명된다. 그렇다 해도 그는 엄연히 시대의 희생양이다. 어쩌다 엄혹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재수 없게 휘말려 든 것뿐. 그가 잘못한 것은 없다. 단지 힘없는 아버지였다는 사실 말고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장갑차 한 대가 효자 이발관 앞을 지나가는데 젊은 군인 하나가 아기를 안고 있는 성한모에게 청와대가 어디냐며 반말로 물어보고 경호실장이 한 집안의 가장인 성한모에게 반말은 기본이고 욕하고 기합 주고 조인트 까고 총부리까지 들이댄다. 각하의 초대로 청와대 앞마당에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성한모는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모욕하는 각하의 아들을 밀어 넘어뜨리자 곧바로 각하의 아들한테 달려가 존댓말로 괜찮으시냐며 일으켜 세우고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자신의 아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치며 뺨따귀를 사정없이 올려붙인다. 그리곤 성한모의 가족은 각하를 포함한 모두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한다. 피해자가 가해자한테 사과하는 꼴이라니. 게다가 아내와 아들이 보는 앞에서 경호실장에게 조인트를 까이고 협박과 모욕까지 당했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지만 아들의 걱정에 아버지는 괜찮다며 아들을 업고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이다.

 

영화를 보면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진기는 엘비스 프레슬리 헤어스타일을 하고 통기타를 들고 트위스트를 추며 그레이스 켈리를 만나기를 꿈꾼다. 미국 문화가 한창 유입되던 시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 가고 싶다는 진기의 소망은 진기의 월남전 참전과 성한모가 대통령의 이발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성한모가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는 장면은 '포레스트 검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부분적으로도 그렇지만 전체적인 플롯이 유사하다. 평범한 한 인물이 역사를 관통하며 시대를 보여 준다는 측면에서. 개인사가 역사가 되고 역사가 개인사가 되는 아이러니.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이 영화의 화자가 주인공 성한모가 아니라 성한모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와 그 시대. 이 영화는 아들이 아버지와 그 시대에게 바치는 헌정 영화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들을 빼내기 위해 청탁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이며 아들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야심한 밤에 몰래 용안의 눈을 칼로 긁어 담은 용기를 꿀꺽 삼키는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전날 밤 꿀꺽 삼킨 그것을 빼내려고 항문에 잔뜩 힘을 주지만 빠지지 않고 마침 운구차가 효자 이발관 앞에서 멈춰 꿈쩍도 하질 않는다. 그것이 아버지의 항문에서 빠져나오자 비로소 운구차는 움직인다.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 감탄했다. 결국 아들은 다시 걷게 된다. 각하(구체제)의 죽음으로 아들(신체제)이 살아났다는 정치적 메타포로 읽을 수 있지만 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정성의 결과라고 봤다. 국민이 국가가 아니라 각하가 국가였던 시대. 지금은 어떠한가? 성한모의 아들은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는 안다. 그 뒤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대한민국은 여전히 불구적 사회라는 것을....

 

 

★★★★

이 영화는 박정희를 미화하지도 폄하하지도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한다. 어차피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박정희가 아니라 이발사 성한모다. 평범한 인물이 대통령을 누르고 주인공이 된다. 이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다. 그의 가위와 빗은 한국 사회를 향한다. 머리가 다 자라면 다시 온다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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