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야구단 (2002/한국) 장르 코미디, 드라마, 스포츠 감독 김현석 출연 송강호, 김혜수, 김주혁, 황정민, 이대연, 김일웅, 하덕부, 최덕문, 김량현, 김량하, 민도기 |
줄거리
글공부보다 운동을 더 좋아하는 자칭 뜨내기 선비 호창은 어느 날 우연히 베쓰볼을 하는 미국인 선교사들의 모습을 발견하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YMCA 교사이자 신여성 정림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야구에 입문하는 호창. 호창의 아버지는 호창에게 서당을 물려받길 권유하지만 이미 호창의 마음에는 베쓰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거기에는 정림에 대한 사랑도 포함된다. 그리하여 호창과 그의 죽마고우 광태, 일본 유학생 출신 대현, 정림을 중심으로 조선 최초의 야구단 'YMCA 베쓰볼팀'이 결성된다. 최초는 최강이 되어 'YMCA 베쓰볼팀'은 연전연승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영원하지는 않은 법. 일본의 성남 구락부와의 대결에서 참패를 하고만 것.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일파 테러 사건의 전모가 발각되면서 대현과 테러에 연루되어 있던 정림이 일본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YMCA 베쓰볼팀'은 해체를 맞이하는데...
감상평
나의 평가 ★★★☆☆
나름 재밌게 봤다. 그러나 뭔가 미진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 생각에 이 영화를 차별화된 매력적인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시종일관 고요하면서도 차분한 정서적 흐름 속에 어떻게 보면 거대한 정치적 담론을 야구를 매개로 하여 민중들의 소소한 이야기로 완화시켜 풀어낼 때 그것이 사회(역사) 드라마에서 스포츠 드라마로 탈바꿈하고 거기에 엇박자 유머로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코미디가 더해지면서 형성된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데 주저하게 된다면 그것은 마음을 흔드는 어떤 감동 그러니까 속된 말로 감정적 야마 같은 게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거기다 영화는 정적이고 다소 단조로운 감이 없잖아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마냥 심심하고 밋밋하며 지루한 영화일수도 있다. 설익은 엔딩도 문제다. 비교적 급작스럽게 엉성하고 생뚱맞게 끝을 맺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얼렁뚱땅 급수습하며 끝매듭을 짓는 듯한 인상이다. 그래서 마지막 엔딩 장면은 보는 이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마치 채 몇 프로를 남겨두고 채워지지 않은 갈증처럼... 대신 웃음은 합격점이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안정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주연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준수하다. 정극 연기도 뛰어나지만 코미디적 감각이 워낙에 타고난 배우인지라 이 영화에서는 그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사실 장르와 비중을 막론하고 그가 나온 모든 작품에서는 마찬가지로 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고도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엇박자 유머로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코미디는 오롯이 그의 몫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와 연출자의 합작품이겠지만. 특히나 송강호는 리액션이 뛰어난 배우다. 그가 진정 훌륭한 배우라는 증거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리액션은 상대 배우로 하여금 더 나은 연기를 이끌어내고 돋보이게 한다. 그렇게 해서 서로간의 리액션이 오가고 주고받으며 절묘한 화음을 이루면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되고 그것이 모이고 모여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전체적인 조화이다. 결코 혼자 튀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본인 자신과 캐릭터보다 작품을 우선해 놓는 것..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방향일 것이다. 송강호 특유의 말투, 억양 같은 게 있다. 경남 억양에 기반을 둔 그만의 특유의 독특한 운율이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마법과 같다. 그가 대사를 내뱉을 때 관객은 일종의 마법에 걸린다. 청각적 쾌감.. 희열이랄까. 오달수를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비슷하다. 전라도의 송강호.. 송새벽 역시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그러니까 똑같은 말이라도 이들이 하면 다르게 느껴지는 것. 한마디로 포복절도의 웃음이 난다. 이건 흉내 낸다고 되는 성질의 것은 분명 아니다. 난 개인적으로 이들 같은 배우를 선호하는 편이다. 소위 얘기하는 성격파 배우는 몇몇을 제외하곤 별 취미 없다. 확실히 오래전 영화가 맞다. 김혜수의 비교적 앳되고 청초했던(?) 시절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네. 그녀로서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작품이겠지 아마. 이 영화가 계기가 되어 연기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갖게 됐다고 당시에 인터뷰 했었던 게 기억난다. 다름 아닌 송강호에게서 자극을 받았다고. 김주혁의 출연이 반갑다. 은근히 내공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하긴 피는 못 속이는 법이지. 뭣보다 황정민이란 배우의 초창기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이채롭다. 개인적으로 그를 처음 봤던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찌질하고 소심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나름 의외라고 느낄법하다. 다른 작품들을 통해 봐온 평상시 그의 인상과 이미지를 고려해본다면 말이지. 심지어 친일파 변절자의 아들이라니... 그것은 인물의 캐릭터로도 나타난다. 단적인 예로, 류광태는 YMCA 베쓰볼팀에 입단하는 오대현을 격하게 환영하며 오버를 떤다. 외국물 먹은 부르주아(?)를 향해 뚱한 표정으로 경계어린 시선을 날리는 다른 팀원들과는 상반된 태도다. 그는 대현에게 유달리 관심을 보이며 서로 친해지기를 종용하듯 한다. 우월한 상대에게는 머리를 조아리고 아부 떨며 붙어먹겠다는 근성.. 동류를 발견한 부르주아지의 끼리끼리 친근감의 우정 폭발?!.. 결론은.. 쪽발이 근성. 어쩌면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조승우의 카메오 출연 등장. 물론 카메오 출연 자체가 충격적이란 의미는 아니다. 마부 청년으로 등장하는데 그 역할과 연기가 기존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듯한 혹은 약간 비틀어 패러디한 흔적이 느껴져서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것은 그의 데뷔작이자 그가 연기한 '춘향뎐'의 이몽룡 캐릭터를 김현석 감독이 영화에 가져와 다소 과장되게 희화화시켜 패러디한 것이다. 거기다 그는 졸지에 마부 청년에서 암행어사로 신분 상승(?)을 한다. 호창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기이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엔딩인데 바로 여기서 그는 호창의 마패를 치켜들고 스크린을 뚫고 나올 기세로 있는 힘껏 소리 내어 "암행어사 출두요!"를 길게 외친다. 사실 그 마패의 주인은 정림이고 진짜 주인은 정림의 외숙부이다. 신분 상승의 '바통 이어받기'라 하겠다. 비록 분량은 카메오지만 그는 여기서 YMCA 베쓰볼팀이 성남 구락부를 야구 시합에서 이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말하자면 승리의 매개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결국 조금만 확장하면 이는 한국이 일본을 설욕전에서 이긴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민족의 승리, 한민족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좀 더 의미부여를 한다면, 오롯이 민중·민초들의 힘으로 왜놈들을 두들겨 패고 일본 제국주의를 패대기치며 극복하는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여담으로 재밌는 사실 하나를 공개하자면, 조승우는 이 영화를 찍고 정확히 9년 후에 '퍼펙트 게임'이란 작품에 출연하게 된다. 김주혁 역시 같은 해에 '투혼'이라는 영화에 주연을 맡으면서 이 두 배우는 야구 영화와 묘하게 인연을 형성한다.
김현석 감독의 연출은 데뷔작 치고는 상당히 안정된 연출력을 보여준다. 바꿔 얘기하면, 패기가 없다.. 진부하다.. 전형적이다.. 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내 생각에 소재는 참신하다. 야구와 시대극의 결합.. 대한민국의 비극의 역사, 정치적 이슈라는 무거운 재료에 야구라는 친숙한 매개체를 양념으로 살을 붙이면서 대중친화적인 영화로 거듭나는 나름의 신선한 착상.. 야구를 정치적 메타포화하는 영리하고 교활한(?) 상업적 전략.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장르 영화, 스포츠 드라마의 공식화된 컨벤션을 답습했다는 한계를 느끼게 하는.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스토리텔링에는 일가견이 있는 연출자라는 사실이다. 드라마를 만들고 거기에 유머와 코미디를 불어넣어 살아 숨 쉬는 윤기 나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재능과 감각이 있는 감독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이 영화는 확실히 '명필름' 작품답게, 웰메이드를 지향한다. 코미디와 드라마 중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명필름'표 웰메이드 코미디 또는 웰메이드 드라마가 된다. 이 작품처럼 양쪽에 다 방점을 찍으면 웰메이드 코미디 드라마가 되는 것이고. 풀어서 설명하면, 기본적으로 '명필름' 영화는 따뜻하고 온화하며 '건강한' 영화를 꿈꾼다. 자극적이고 미장센적으로 휘황찬란한 현란하고 화려한 영화는 지양하고 모범적이고 건전하며 드라마와 스토리텔링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영화를 만든다. 심심할 정도로 기교를 부리지 않는 우직한 정공법으로 승부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들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공동경비구역 JSA'.. '마당을 나온 암탉'.. 등등.
이제는 국민 스포츠로 완전히 자리 잡은 야구.. 난 개인적으로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땐 이 나라에 살면서 야구를 안 좋아하는 게 죄인가 싶을 때가 있을 정도로 문자 그대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야구에 열광하는 희한한 현실이 도래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가 스포츠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것뿐. 취향은 각자 다른 거니까. 영화를 보면 재밌는 부분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야구 용어에 관련해서 당시와 지금의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 있다. 극중 민정림은 1루를 1 베이스라고 지칭하고 인물들 모두 야구를 야구라 하지 않고 베쓰볼 혹은 베이스볼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만 해도 야구의 초창기였기에 언어 정리가 잘 되어있지 않았었다. 그래서 일종의 차용어로서 영어를 그대로 한글로 가져와 사용했던 것. 심지어 80년대 프로야구 초창기 때도 경기 중계에서 해설자가 1루를 '퍼스트 베이스'라고 지칭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1905년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당시의 역사적 풍경을 보여준다. 20세기 초입에 들어서면서 양반과 쌍놈의 구분이 공식적으론 사라졌다지만 사회적으로는 미진하게 남아있던 과도기였고 그래서 시합 중에도 양반이랍시고 쌍놈이 던진 공은 받지도 않고 외면하는 바람에 어이없이 상대 타자에게 출루를 허용한다던가 안타를 치고도 1루를 뛰어가지 않고 천천히 뒷짐 지우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걸어가다 아웃이 될 성싶으니까 갑자기 냅다 뛰는 황당무계하고도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배트가 없어 농기구를 가져다가 만든 대체 방망이, 새끼를 꼬아 제작한 조악한 글러브와 야구공으로 베쓰볼을 하는 당시의 모습들.. 야구의 룰을 몰라 안타를 치고도 1루가 아닌 3루로 먼저 뛰어가거나 끝끝내 아웃을 안 당하려고 그라운드(?)를 이탈해(?) 나무 위로 올라가는 타자의 모습들..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무지가 순수로 치환되는 경우. 호창이 야구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상기해보라. 단순히 낯선 호기심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 컬쳐 쇼크였다. 처음으로 야구공을 던진 순간.. 그것이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마치 수박이 쩍 갈라지며 나는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개벽의 순간이었다. 그것은 영화 말미에 다시 반복된다. 호창이 결정적 한방을 날릴 때, '딱!'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것은 바로 고고한 학이 용기백배한 학으로 승화되는 순간.. 책상물림에서 잡초로의 커밍아웃.. 학처럼 살라 말라가 아닌 학의 정의를 바꾸다.. 의식의 개벽.. 그릇 키우기.
야구의 시작은 미국이다. 우리가 현재 크리켓이 아닌 야구를 하게 된 것은 보나마나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 덕이다. 농구 역시 마찬가지. 그러고 보면 미식축구는 예외다. 말 그대로 '미식'축구라서 그런가.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사실 경제적인 이유가 더 클 것이다. 경기장, 경기복, 헬멧 등을 마련하고 구비하는 부분에 있어서의 과하게 지출되는 비용적인 부담의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도 국내에선 대중화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암튼 야구가 대한민국에 들어오게 된 것은 농구와 마찬가지로 미국 선교사들 덕분이다. 당시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이 구기 종목 야구를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뿌리내리게 만든 초석이 된 것. 한마디로 정치와 종교의 이름으로 이 땅에 야구는 싹을 틔웠다. 그들은 전도의 목적으로 우리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농구를 전수했다. 여기서 야구는 무려 세 가닥에서 매개체가 된다. 선교사에게 그것은 복음 전파의 징검다리가 되고 일본에게는 조선의 기를 꺾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필름메이커들에겐 영화의 상업적 전략으로 이용된다. 영화 보면서 한 가지 의아했던 것은 극 초반에 등장했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극이 진행되면서 어느 순간 증발되어 사라진 것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야구하다 방망이로 구타당해 죽었나. 아님 땅 끝까지 복음을 위해 다른 나라로? 농담이다. 기본적인 야구에 대한 전수가 얼추 다 마무리돼서 퇴장했나보다. 이런 의견은 사실 의미가 없지. 그들의 퇴장 여부는 창조와 소멸의 키를 쥔 전지전능한 감독(director almighty)께서(?) 맘껏 주무르는 것일 테니.. 단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만큼만 쓰여졌을 뿐. 그건 모든 인물들이 다 마찬가지.
정치와 스포츠의 상관관계.. 기본적으로 평등한 관계는 아니다. 정치가 스포츠보다 힘의 우위를 가진다. 정치는 스포츠를 도구화하고 스포츠는 정치에 이용당한다. 극중에 벌어지는 YMCA 베쓰볼팀과 성남 구락부의 대결은 지금의 한일전과 같다. 관객들은 마치 축구 경기 한일전을 생중계로 관람하듯 가슴을 졸이며 속으로 자기 나라를 응원하면서 이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다. 이른바 스포츠를 통한 일종의 애국 행위. 문화를 통한 애국 행위도 있다. 요즘 회오리바람처럼 부는 영화 '명량' 관람 열풍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것은 진정성을 논할 부분은 아니고 애국의 대상과 그에 대한 행위 그 자체로서 보여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딱 거기까지다. 착각하지 말아야할 건, YMCA 베쓰볼팀의 승리가 대한민국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 승리의 주역들과 관중들은 마치 해방이라도 된 것처럼 민족의 승리를 연호하지만 그것이 휩쓸고 간 자리에 연소되지 않고 채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남아있는 것은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는 차가운 진실이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여전히 건재하고 을사조약은 깨지지 않았으며 조선은 일제 식민지 국가라는 변함없는 사실의 존재. 나아가 현재를 살고 있는 스크린 밖의 관객들은..? 완전히 해방됐을까? 아직 우리는 의식적 정서적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은 행위로 표출된다. 어둠의 그림자로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위안부, 독도 영유권, 과거사 문제 등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있는 일제의 잔재는 교육,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 등에서도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여전히 우리는 해방된 게 아니다. 벗어나지 못했고 자유롭지 못하다. 스포츠를 정치의 도구로 삼는 것은 비단 영화 속 일본의 모습만은 아니다. 실제의 현실에서 같은 나라의 지도자가 같은 국민에게 뻔뻔하게 저지르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은 이른바 소위 3S 정책의 하나로 스포츠를 도구화해 독재 타도와 민주화 시위로부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엄한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 애썼다. 일종의 권력 유지용으로서. 그래서 탄생한 게 프로 야구의 출범이었다. 이 영화는 야구라는 소재를 통해 민중의 위대함을 한민족의 위대함을 스포츠의 위대함을 설파하려는 듯하지만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사족 하나, 영화 라스트 부분에 송강호가 결정적 순간에 나타나 최후의 홈런을 때려 YMCA 베쓰볼팀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지는 카타르시스 절정의 장면이 나온다. 이때, 그가 친 공은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경기장(?) 너머 강에 빠진다. 지금으로 말하면 장외 홈런인 셈이다. 근데 여기서 어째 연상되는 게 없나? 그래.. 배리 본즈.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은 바닷가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 희대의 강타자 배리 본즈가 장외 홈런을 날리면 바다에 공이 빠지는 장면이 꽤나 연출되곤 했었다. 그래서 간혹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우연히 본즈의 공을 줍거나 혹은 아예 그의 홈런 볼을 받으려고 그곳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그래서 실제로 공을 잡기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지. 시대와 공간의 차이가 있을 뿐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거의 흡사하게 재연된다. 나룻배를 타고 있던 어떤 선비인가 뱃사공인가 하는 사람이 호창의 홈런 공을 받을 뻔했지. 이것은 다분히 표절의 혐의가 짙다. 샌프란시스코의 흑색 거인 배리 본즈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 야구에 문외한이라도 본즈의 바다 홈런 장면을 한 번이라도 안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뿐 아니다. 극중 일본팀 주장의 이름은 노무라 히데오. 이건 작명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갖다 썼다 해도 틀리지 않다. 노모 히데오의 조상쯤이라도 되나.. 아예 김주혁이 맡은 인물 이름도 오대현이 아니라 오찬호라고 짓지 그랬나.. 오! 찬호. 자칭 야구 매니아라더니 실은 표절 매니아?
사족 둘, 극중에서 송강호가 몰래 야구를 하고 다니다가 아버지 신구에게 들킨 후 쌍놈 짓하고 다닌다고 욕을 먹으며 바둑알 투척 세례를 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은 정확히 영화 '반칙왕'에서 아들 송강호가 프로레슬링을 한다는 이유로 아버지 신구에게 두드려 맞고 혼나며 야단맞는 장면으로 고대로 오버랩 된다. 종목만 프로레슬링으로 바뀌었을 뿐 내용은 똑같다. 배우도 똑같고. 무진장 웃기는 대목이다. 시간적으로 '반칙왕'이 먼저 제작되었으니.. 이것은 '반칙왕'의 패러디이자 각각 야구 버전과 시대극 버전의 구타 패러디. 여기서는 양반답지 못한 쌍놈 짓이라서 안 되고 저기서는 단순 무식하고 퇴폐적이며(?)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퇴물 종목이라서 안 되고.. 결국 어쩌면 프로레슬링도 현대판 쌍놈 짓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당대의 사회적 인식의 보수성과 폐쇄성, 편견으로 인한 구속받고 소외당하고 배타당하는 아들의 모습이다. 아버지.. 권력자.. 다수.. 기득권..과 아들.. 민중.. 소수.. 프롤레타리아의 대립 구도에서 아들은 아버지 세대를 극복하는 결과를 이들 영화에서는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은..? 버겁기만.. 현실에선 정의도 상식적 당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기적조차 허용되지 않는 99%의 세계..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지배구조.. 천민자본주의의 노예들 간의 서로 물고 뜯는 적자생존의 서바이벌 게임..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가 되는 상태.. 이제 더이상 아들은 없다.. 청년은 없다.. 있어야 할 것들이 사라진 그 자리에.. 지금 여기에.. 남은 건 늙고 추레한 아버지만 있을 뿐.
★★★
민중 민초들의 야구 봉기로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다? 일종의 은유적 승리.. 나라가 하지 못했던 일을 민중이 해내다.. 작은 기적이라 불러야할듯.. 현실에선 바뀐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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