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Tootsie

찰나21 2013. 11. 19. 22:14

 

 
  투씨 (1982/미국)


  장르 코미디, 드라마, 로맨스
  감독 시드니 폴럭
  출연 더스틴 호프먼, 제시카 랭, 테리 게어, 대브니 콜먼,
          조지 게인스, 기나 데이비스, 도리스 벨랙, 찰즈 더닝

 

줄거리

뉴욕의 어느 허름한 아파트에서 룸메이트 제프와 함께 기거하며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나가는 마이클 도시. 그러나 무대에서나 TV 광고에서나 여차하면 연출자에게 이것저것 따지고 대들며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관철시키려하는 태도의 모난 성격은 번번이 발생되는 오디션 탈락과 나날이 끊겨만 가는 출연 섭외로 이어지며 그에게 쇼 비즈니스 바닥에서의 암묵적인 퇴출(?)이라는 굴욕의 참사를 가져다준다.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리며 위기의식을 느낀 마이클은 절박함과 오기가 중첩되어 불러온 기운으로 기막힌 묘안 하나를 떠올리는데.. 그것은 바로 여장을 하고 TV 드라마 오디션을 보는 것. 결국 마이클은 여성(?)이 되고나서야 오디션에 합격하고 드라마 배역을 따내며 비로소 자신의 꿈에 한발자국 다가서게 되고.. 그리하여 그와 그녀(?)의 인생 최대의 무모하고도 위험한(?) 도전과 모험이 시작되는데...

 

감상평

나의 평가 ★★★★☆

 

불후의 명작.. 로맨틱 코미디의 명불허전.. 고전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여장 영화의 효시까진 아니더라도 여장 영화하면 대표적으로 꼽히는 작품.. <투씨>.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여장 영화와 남장 영화가 국적과 장르를 막론하고 쏟아져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투씨>는 영화적 매력과 재미 그리고 완성도 면에서 으뜸을 자랑한다. 정확한 사실관계 여부는 조사해봐야겠지만, <투씨>는 당시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을 거뒀던 영화라고 난 알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비평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하게'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것. 당시 오스카는 작품상을 포함한 많은 부문에 <투씨>를 후보로 올리며 영화를 향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었다. 어느덧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건만, 고전의 힘은 의외로(?) 강력한 것이어서 그것은 단단히 박힌 뿌리로 세월의 모진 풍파에도 쉽사리 쓰러지지 않고 바래지지 않는 더욱더 농도 짙은 푸른색으로 물든 풍성한 잎사귀들을 매달며 사시사철 나그네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나무와 같다. 'AFI 선정 100대 미국영화', '미스터 쇼비즈 선정 20세기 최고영화 100'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기라성 같은 여타의 걸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단한 성취를 이뤄낸 것만 봐도 시대를 초월한 이 영화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성공 배경의 핵심에는 괴물 같은 배우 더스틴 호프먼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절대적인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며 육중한 존재감으로 극 전체를 홀로 이끌다시피 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거의 신들린 듯한 연기로 모두를 압도한다.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이 영화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굉장한 배우인지를 알 수 있는데, '마이클 도시'와 '도로시 마이클스'라는 양극단(일단 표피적으로 봤을 때도 서로 정반대의 성(gender)을 가진 인물들이다)의 캐릭터를 마치 곡예를 하듯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완벽에 가까운 기적 같은 연기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특히나 놀라운 것은 목소리인데, 그렇게나 굵은 음성이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가발을 뒤집어쓰면 가느다란 여성의 음성으로 어느새 바뀌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또 바지를 입고 수염을 하고 장발의 헤어스타일을 한 채 남성의 목소리로 변해있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감쪽같아서 관객 입장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 <투씨>에서 그는 미묘한 표정의 변화라든지 세밀하게 표현되는 제스처와 몸동작, 목소리 톤과 악센트 조절 등과 같이 치밀하고도 정밀한 분석으로 계산된 디테일 연기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정확한 이해가 근간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판단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알 파치노, 톰 크루즈 등과 같이 할리우드에서 대표적으로 유명한 단신배우로 꼽힌다. 그러나 단신임에도 울림통이 큰 덕분인지 발성이 좋아서 특히 극중에서 그가 감정이 고조되어 흥분하거나 소리를 내지를 때에는 주변이 그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에코(echo)적 파워를 자랑한다. 또한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이은 화면 장악력은 그를 진정 리틀 빅 맨(Little Big Man)으로 칭송하게끔 만든다. 그는 여기서 타이틀 롤을 맡았고 사실상 <투씨>라는 영화에서 더스틴 호프먼의 존재는 전부를 의미한다. 지금은 쉰내 나는 노인네가 되어 비중이 초라한(?) 조연으로 전락한 부분이 없잖아 있으나, 적어도 80년대는 그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 할리우드에서 남자배우로서는 그가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하지 않았었나 짐작된다. 그 정점이 아마도 '레인맨'이었지.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기는 영예를 선물하기도 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상대역을 맡았던 톰 크루즈에게도 '레인맨'은 의미 있는 영화였는데, '탑 건'으로 일약 전 세계의 청춘스타로 우뚝 선 이 젊고 풋풋하며 전도유망한 미남배우를 비로소 할리우드가 배우로서 주목하는 첫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제시카 랭의 연기도 일품이다. 영화 속 그녀의 주름살 하나 없는 티 없이 맑고 싱싱했던 젊은 시절의 외모가 지금 와서 보니 참 많이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투씨>에서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더스틴 호프먼이라는 작지만 거대한 배우 앞에서도 결코 눌리는 법이 없이 튀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탁월한 균형감각을 통한 출연진들과의 조화로운 협업 속에서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당시 오스카는 그녀에게 여우조연상(주연이나 다름없었는데)을 트로피로 안겼다. 반면 극중에서 거의 단독주연으로 원맨쇼를 하다시피 하며 열연을 펼친 더스틴 호프먼에게는 안타깝게도 남우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만 하고 상은 수여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발견은 빌 머리의 신인시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데, 현재로서는 당시와 비교했을 때 주름살 가득한 흰머리의 배 불룩 나온 할아버지로의 신체상의 변화는 있지만 그의 연기만큼은 한결같이 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연기 스타일. 그만의 차분하면서도 시니컬한 무표정 연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혹자는 배우로서의 이런 그를 폄하할지도 모른다. 연기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대충 슬렁슬렁하면서 힘 한번 안 들이고 편하게 장면만 때우는(?) 듯하니까.. 그런가? 얼핏 보기엔 그의 연기가 굉장히 쉬워 보일지 모른다. 다소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광기를 뿜어내며 소리를 지르고 격렬한 감정을 토해내는 것만이 훌륭한 연기라고 생각하는 어설픈 관객들의 눈엔 특히나 더 그렇겠지. 참고로 난 개인적으로 메소드 연기와는 대치되는 냉소와 니힐 가득한 페이소스 짙은 그의 연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래전 영화를 보게 되면 간혹 난 감회에 젖곤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한때는 영화계를 주름잡고 이끌었던 배우들이 현재에는 노쇠하여 설 자리가 좁아져 활동이 뜸하거나 옛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순간이다.

 

사실 여기서는 방금 전 언급한 감회향수라는 다른 단어로 치환시킬 수도 있는데, <투씨>를 보면서 80년대에 대한 아늑하고도 아련한 노스탤지어가 개인적으로 느껴졌다. 감히(?) 풍요로웠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의.. 유선전화.. 지금 보면 촌스럽기 짝이 없는 당시의 패션.. 아날로그 감성의 문화.. 등과 같은 80년대만의 풍경들. 그러나 굳이 80년대의 흔적을 위와 같은 영화 속 그 시절의 풍경들로만 한정지을 필요는 없을 듯싶다. 그러니까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과 관련된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그 시대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이 영화에서는 흡사 뮤직비디오처럼 구성된 장면이 대략 3회 정도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압권은 스티븐 비셥의 노래 'It Might Be You'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줄리의 시골 고향집에서 도로시가 그녀(줄리)를 흠모하는 눈길로 애절하게 바라보는 일련의 모습들이 담긴 장면이다. 엄연히 뮤지컬과는 분명 다른 다분히 촌스럽게 느껴지는 이러한 연출 방식은 이미 근래의 영화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들이 죄다 80년대 올드 팝이었다는 거. 그것도 디스코풍의 흥겨운 리듬의 곡이거나 80년대 특유의 순수한 감성이 묻어나는 감미로운 멜로디의 팝 발라드이거나. 지금에야 힙합이나 소울 뮤직과 같은 흑인 음악이 대세를 이루긴 하지만 80년대만 하더라도 팝이나 록(Rock)과 같은 백인 음악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으니까. 또 하나는 극중 배우들의 대사 톤과 연기 스타일이다. 대표적으로, 영화 초반에 보면 마이클이 조지의 사무실로 찾아가 조지에게 심하게 따지며 둘이 서로 격론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서 더스틴 호프먼과 시드니 폴럭은 하이 데시벨의 목소리 톤으로 다소 과장된 제스처를 섞어가면서 속사포처럼 서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언쟁하고 싸우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난 이것을 이들이 그때 당시의 대사 발성법에 이은 80년대의 연기 양식을 몸소 관객에게 시현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샌디와 마이클의 대화에서도 종종 그와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비록 서로 말로써 티격태격하며 격하게 싸우더라도 애초에 그들의 싸움은 심각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유머가 배어나는 것이었다. 80년대식 유머라고나 할까.

 

그러나 정반대의 시각에서 보자면, 의외로 이 영화는 80년대 미국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은밀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마이클도 그의 친구 제프도 샌디도 사랑하는 여인 줄리도 모두 뭔가 가슴에 공허함을 지닌 채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인물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의 상흔은 채가시지 않았고, 뉴욕이란 거대한 도시의 그림자는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청춘들에게 이상이 아닌 현실을 택하라며 오직 생계를 위한 살벌한 전쟁터로 그들을 내몬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화려하고 성대한 파티에서 애인 사냥에 몰두하고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유흥의 열기 대신 허탈감이 채워진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쓸쓸하고 황폐화되어버린 가슴을 부여잡고 진정제를 찾으며 오늘도 먹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장밋빛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힌 채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2013년도 현재 미국이 직면한 사상 최악의 현실과 비교하면 영화 속 당시의 상황은 극락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지금의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면 쇼크(?)를 받을지도.. 오늘의 미국은 삼십 년 전과 비교하면 판이하게 다를 정도로 많이 변했을 테니까.. 정확히는 '변질'이라고 표현해야 적절하겠지. 이 도식을 할리우드 영화에 그대로 대입시켜도 별 무리는 없을성싶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80년대를 할리우드의 황금기로 보는 이들이 꽤 많다고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이유는 아마도 이때가 할리우드가 본격적으로 전 세계의 영화시장을 잠식해나가며 산업적인 측면에서 대내외적으로 가장 팽창했던 호황기였고 기술적으로도 수많은 실험과 도전을 통한 어마어마한 진보와 발전 그리고 성공을 이뤄냈던 시대였었기 때문이리라. 그에 반해 지금의 할리우드는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리만큼 나날이 독창성은 죽어가고 자극적이며 선정적인 연출의 고만고만한 허영덩어리 영화들을 주로 양산해내는 듯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확실히 근자에 들어와 할리우드는 클리셰를 반복하는 매너리즘과 속편(시퀄, 프리퀄), 리부트, 리메이크의 대량생산이라는 우려먹기 식 일관으로 인해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일종의 꼼수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할리우드식 동어반복이 비단 어제 오늘 일도 아니기에 새삼스러울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가뭄에 콩 나듯 창의적이고 신선한 영화 더 나아가 유니크한 영화가 심심찮게 만들어지기도 하는 곳 또한 할리우드이니까 그리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영화 <투씨>의 볼거리 중 하나가 연극이나 방송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생리 즉 쇼 비즈니스(show business)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오디션을 보러오면 무조건 안 된다고 일단 퇴짜부터 놓더니 키가 안 맞아서 또는 느낌이 안 맞아서, 나이가 안 맞아서라는 식의 각양각색의 그러나 뻔한 이유들만 갖다 붙이며 마치 자신이 조물주라도 된 양 참가자를 쥐고 흔들며 가지고 노는 그들의 행태. 어쩌면 그들이 보는 것은 응시자의 태도와 의지, 적극성인지도 모른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평판(reputation). 실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평판이 안 좋으면 그 실력이라는 것은 금세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한 개인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과 인지도 역시 무시 못 할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이 또한 좋은 평판이 전제되지 않으면 무쓸모한 것이 되어버리겠지. 무엇보다도 매니저나 에이전트 그리고 에이전시(연예 소속사)의 도움과 협조, 지원은 필수적이라 할 만큼 이 부분에 있어 상당한 중요도를 차지한다. 결론적으로 실력이 아닌 연기외적인 요소들로 배우로서의 자질을 평가받고 탈락여부가 결정된다는 주객전도의 아이러니 되시겠다. 내 개인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 마이클에 대해 정신과적 진단을 내린다면, 그는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미성숙함과 성격장애자적 기질을 드러내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자아가 굉장히 강한 인물이기도 하다. 연기에 대한 지나친 자존심과 굽힐 줄 모르는 신념과 철학은 그가 허구한 날 연출자와 싸우느라 탁월한 연기력에도 무대에서 방출당하거나 혹은 시위하거나 자기 발로 걸어 나가는 상황들로 이어지고 어느덧 작품은 뚝 끊겨 생계형 배우로서의 위기를 맞게 된다. 심지어 매니저 조지에게도 그는 불편한 존재로 여겨지며 기피 대상 1호이다. 그가 내뱉는 온갖 짜증과 불평, 불만에 매니저와의 만남도 서로 으르렁대는 상황으로 귀결되기 일쑤.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연극 캐스팅 명목으로 초면에 이 여자 저 여자 마구 찔러대며 들이대다가 본전은커녕 괴짜 취급 받으며 퇴짜만 맞는 불쌍하고 가여운 인생. 단지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주 질색을 하며 자신의 생일마저 거부하는 과민성 히스테리(?)를 보이고(막상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에 큰 선물이라도 받은 듯 감격에 겨운 반응을 보이는 그이지만), 평상시 삶에 있어서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것보다도 백수 되는 것을 더 끔찍이 혐오하고 두려워할 만큼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아있어 늘 강박과 불안에 시달린다. 모두를 속이고(단 그의 친구 제프와 매니저 조지는 제외하고) 여장까지 해가며 TV 드라마의 배역을 따낸 것도 그렇고.. 그러한 엄청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거짓말과 사탕발림으로 일관하며 여자 친구 샌디를 철저하게 따돌리느라 정신없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해, 그는 정상은 아니다.

 

영화 제목이기도한 'tootsie'의 사전적 의미는 아가씨.. 귀여운 꼬마.. 여인.. 레즈비언..이고 심하게는 매춘부.. 창녀..를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재밌는 사실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프롤로그 오프닝에 이미 극의 컨셉트에 대한 암시가 드러나 있다는 부분인데, 우리는 주인공 마이클이 노신사 혹은 중년 신사 역할의 연극 오디션을 위해 거울을 보며 분장을 하는 장면에서 컬러 파운데이션이나 매니큐어와 같은 여성 화장용품들이 소품으로 잠깐 스쳐지나가며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남성(노신사)에서 여성(툿시)으로의 변모를 일찌감치 앞서서 알리는 복선적 장치.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클이 도로시가 되면서 우리의 주인공은 동시대 미국의 여성들에게 그들의 시린 가슴을 데워주고 응어리를 풀어주는 대리만족의 체험을 제공하며 졸지에 여성해방론자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다. 그러나 진정 아이러니한 것은 따로 있다. 남자 마이클은 그 어떤 남성들보다도 여자를 밝히는 바람둥이이고 애초에 여성의 인권과 양성평등 따위엔 문외한이자 관심조차 없던 마초이며 여자에게 애걸복걸하며 칭얼거리는 찌질이에 불과한 사람이라는 것. 여자 도로시는 줄리의 바람둥이 애인 론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그녀의 바람막이 역할을 자청하지만, 정작 남자 마이클은 그의 애인 '샌디'를 바보 장님으로 만들며 '그녀' 몰래 한 눈 팔고 다닌다는 것. 한마디로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자 이중인격자적 태도를 지닌 인물이다. 성(gender)을 바꾸면서 자아분열(?)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그렇다면 <투씨>는 이게 다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졸렬한 생존의 투쟁이자 법칙이라는 섬뜩하고도 무거운 진실을 말하는 사회 드라마? 아니.. 해학과 풍자, 위트와 유머로 가득찬 통찰적 로맨틱 코미디. 동시에 주인공 도로시와 줄리라는 캐릭터들을 빌려 80년대에 미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다소 진중한 어젠다를 던지며 진취적인 여성상을 새로이 제시하는 전위적이고 진보적인 페미니즘 영화. 이것의 달성을 위해 우리의 주인공은 성전환(?)이라는 어마어마한 무리수를 감행해야했고, 그녀의 레즈비언(?) 파트너는 적극적이고 깨어있는 여성으로의 변화를 가져와야만했다. 반면에 이 영화에서 남성은 꽤나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찌질하거나 바람둥이거나 호색한이거나 이상하고 멍청하며 한심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것. 사실 멍청한 걸로 따지면 샌디가 초일등급인데. 눈치도 개념도 배짱도 아무것도 없이 늘 소심한 태도로 징징대고 짜증내며 히스테리로 일관하는 그녀를 진정한 백치녀로 임명하는 바이다. 어쨌거나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절벽 끝자락에 마주 서게 된 끝에서야 그는 비로소 일신을 구하고 모두를 구원할 수 있었다. 노동(연기)을 통한 생산으로 돈을 벌어 꿈(연극)을 이루고 사랑(줄리)을 쟁취했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삼조.. 전화위복.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당시로선) 기발한 착상과 플롯의 이음새에 있어 실밥 자국이 안 보일 만큼의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을 보이며 탄탄하게 잘 짜인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한 훌륭한 각본을 자랑한다. 연출도 좋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장면전환은 영화에 풍미를 더해주고,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시종일관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의 흥미진진한 전개로 서스펜스(?)와 유머 그리고 감동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긴장과 이완의 절묘한 완급조절은 관객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탁월한 스토리텔링의 저력을 보여준다. 단 여기서 언급한 서스펜스라 함은 히치콕 영화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서, 여장을 하면서 남자라는 본래의 성정체성을 숨기느라 노심초사하기 바쁜 우리의 주인공의 실체를 이미 다 알고 있는 관객이 당사자 본인보다도 더 그러한 거짓 행각의 발각을 염려하느라 가슴이 조마조마하며 심장이 쪼그라들고 펄떡거리는 경험을 하게 될 때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예측 가능한 결말 속에서 모든 진실은 밝혀지고 관객으로서 그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나, 새하얀 피부와 갈색 파마머리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에서 화장을 지우고 가발을 벗고 본래의 굵고 묵직한 음성이 나지막이 발화되는 순간으로의 점프 이동이 야기하는 엄청나게 극명한 대비효과는 막상 마주하고 나니 임팩트가 꽤나 커서 내게는 그것이 마치 충격적인 반전(?)으로까지 느껴졌다. 이렇게 남녀를 수시로 오가는 주인공의 이중생활 과정에서 재미난 장면 하나가 도출된다. 화장이 두꺼워 보인다는 줄리의 지적에 도로시가 남성호르몬 과다분비로 인한 수염 가리기라며 헤비 메이크업의 목적과 사연을 고해성사(?)하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순간의 기지를 발휘한 태연하고도 재치 있는 응수 덕에 도로시는 정체 탄로의 위기를 모면한다. 이것이 로저 이버트가 영화 '리플리' 비평에서 언급했던, 거짓을 인정하고 필요한 순간에 진실을 말해버리는 것이라는 이른바 거짓말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잘 활용한(?) 시추에이션이 아닐까. 

 

영화 프롤로그에서 마이클은 연기지망생 제자들에게 열변을 토해내며 열정적으로 연기에 대해 가르치는데 여기서 그가 내뱉는 대사들은 실제 더스틴 호프먼 자신의 연기 철학과 지향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듯했다. 그만큼 리얼리티가 느껴지고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무대에 대한 지독한(?) 갈증과 배우로서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국인 그것도 심지어 유태인이었던 그가 대서양 건너 연극의 본고장 영국의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 입성해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연기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러한 사례가 앞서 언급했던 내 개인적인 판단과 분석을 뒷받침하며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방증하는 것 아닐까. 영화 초반, 제프가 친구 마이클의 생일 파티 뒤풀이에서 마찬가지로(참나∼ 유유상종이라더니) 배우지망생들에게 인디언을 푸대접하는 미국의 배타성과 폐쇄성에 관해 신랄하게 꼬집고 연극에 대해 관객에 대해 마치 혼자 독백하듯 설교하듯 늘어놓는 대목은 감독 시드니 폴럭이 평상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아낸 장면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 장면에서만큼은 제프를 감독 자신의 페르소나로 내세워 그의 입을 통한 대사의 은유로서 본인의 개인적 소신을 스크린에 투사시킨 건지도 모른다. 특히 제프가 연극인으로서 관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어필하는 부분에서 그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시드니 폴럭 본인이 영화인(감독 겸 제작자)으로서 관객들에게 갖는 감정은 억하심정 내지는 원망/공포/냉소/애증/과 같은 대체로 부정적인 것들로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영화 말미, 줄리의 고향집 근처의 다소 한산한 바에서 레스와 마이클이 나란히 앉아있다. 이제 모든 진실을 알아버린 레스는 자신에게 애인이 생겼고 성별 확인 작업까지 마쳤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마이클의 정곡을 찌른다. 그리고는 마이클이 보는 앞에서 홀짝홀짝 마시던 맥주병을 글라스 잔에 짠∼하고 부딪치는 의식(?)을 거행한다. 거시기(penis)의 유무를 철저히 확인했다는 확인사살용 시그널이자 징표.. 청각적 메타포를 적확하게 활용한 성(sex)에 관한 유머의 화룡점정. 또 하나 유머러스한 장면이 있다. 진실이 다 밝혀지고 허탈하고 쓸쓸한 마음을 부여잡은 채 힘없이 공원을 거닐던 마이클이 그것도 희한한 재주랍시고 자꾸만 이상한 동작을 하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피에로 분장을 한 어떤 광대의 옆을 지나다 그를 손으로 살짝 밀쳐 넘어뜨린다. 얼핏 보기엔 뜬금없어 보이는 이 장면.. 뭘 말하고자 한 걸까.. 한마디로, 그렇게 기를 쓰고 억지로 애쓸 필요 없다는 거.. 그냥 편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며 물 흐르듯 살라는 것. 돈과 커리어 나아가 사랑을 얻기 위해 모두(?)를 속이고 인위적으로 여자가 되길 애썼던 주인공의 자기 성찰과 반성, 참회의 의미는 이렇게 그가 거리에서 어이없는 행위예술을 하는 광대를 밀치는 뜻밖의 행위로서 관객에게 설명되고 전달되어진다. 왜냐면 그 광대가 바로 마이클 자신이니까. 그의 직업이기도한 배우는 대중들로부터 광대로 불려진다. 그리고 그는 국민 대 사기극을 자행하며 모두에게 광대 짓을 했다. 다시 말해, 그 장면에서 그가 바닥에 쓰러뜨린 사람은 객체가 아닌 주체였다는 것. 그는 그에게 가서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애처로운 심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이제 됐다고...

 

그렇다면 이 영화가 결론적으로 말하고자하는 건.. 언제나 껍데기가 아니라 본질이외다! 도로시냐 마이클이냐 드레스를 입었느냐 바지를 입었느냐 따위가 아니라는 것.. 단지 줄리가 사랑한 건 그 사람이었다는 것.. 닫힌 빗장을 열어젖히고 진심어린 교감으로 날 토닥여준 그 사람.. 떠난 도로시를 그리워하는 줄리에게 마이클은 마치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도로시에 빙의(?)되어 자신도 줄리가 그립다고 말한다. 드레스가 아닌 바지를 입고 거짓이 아닌 진실로 고백하는 마이클에게 줄리의 대답은.. 그 노란색 원피스 빌려줄 수 있어요? 그의 고백을 받아준 것. 이것은 우회적인 화법을 이용한 의문문의 답변으로서 노란색 원피스라는 매개물을 통한 고백 승낙의 은유화이다.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이런 위트 넘치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극을 풍성하게 하고 작품의 격조를 높이는 것이다. 정말이지 작가의 혜안과 통찰에 감탄사 연발이다. "네, 받을게요"라는 막장드라마 식 단세포 대사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그 대사 한마디로 둘은 예전의 다정했던 관계로 아니 새로이 이어지는 인연으로 계속된다. 줄리의 엉뚱하면서 속 깊은 질문형 대답에 안 돼요, 더럽혀지면 어떻게 해요라며 짓궂게 응수하는 마이클의 유머러스한 리액션.. 그리곤 연신 서로 티격태격하고 장난치며 걸어가는 두 사람.. 줄리가 마이클을 옆으로 밀쳐 그가 밀려나는 모습은 한때 잠시 멀어졌던 이들의 관계를 비유하는 듯하다. 이제 둘은 어깨동무를 한 채 걸어가며 다시 하나가 된다. 곧이어 화면정지. 빛바랜 추억 속 사진 한 장으로 박제되는 순간.. 완전한 하나로.. 영원히...

 

 

★★★★

보석 같고 위트 넘치는 대사와 장면들로 구성된 로맨틱 코미디의 교과서. 특히 마이클이 줄리에게 진심으로 고백하며 내뱉는 엔딩에서의 주옥같은 명대사는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을 듯. 언제나 중요한 건 외피가 아니라 본질. '위기는 기회다'라는 삶의 낙관적인 역설을 말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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