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백의 화면이 마치 고전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것도 그냥 고전영화가 아닌 클래식 느와르를 보는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어둡고 무거우며 암울하다. 흑백의 화면에 주인공 '에드 크레인'은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피워댄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흑백 화면에 에드는 시종일관 미간을 찌푸리며 냉소적인 표정으로 일관한다. 인물들은 모두 중절모에 정장을 걸치고 있으며 모두 심각한 표정과 시니컬한 대사만을 뱉어낸다. 정확한 시대배경은 모르겠으나 1940~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과의 전쟁의 여운이 채가시지 않은 시대이며 지금과 달리 경제호황을 누리던 시대이다. 물질적으론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상태에 놓여있던 내부 균열의 시대였다. 영화를 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데이브'의 아내 '앤 너드링어'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인물이다. 물론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외계인과 데이브의 연관성을 두면서 과대망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당시에 우주선이나 외계인 혹은 UFO의 존재는 아마도 미국인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던 게 분명하다. 또한 당시에는 '드라이클리닝'이란 게 처음으로 생겨난 시대였다.
영화를 보면, 평화로운 느낌보단 무미건조한 일상이 많이 느껴진다. 그런 분위기를 잘 대변해주는 인물이 바로 '빌리 밥 돈튼'이 연기한 에드 크레인이다. 에드 크레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 치의 감정의 동요 없이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영화 속에서 그가 웃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빌리 밥 돈튼의 무표정 연기는 시니컬한 연기의 대가 '빌 머리'의 무표정 연기에 비견할만하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그래서 지루할 법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지루하지 않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약간 루즈(lose)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으나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곱씹는 맛이 있다.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미국 드라마) 기준으로 볼 땐 심각할 정도로 호흡이 느리지만 이럴 때 일수록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느리게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다면 그건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영화 전반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끔 만든다. 그와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어우러지면서 몰입을 유도한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시종일관 진지하지만 가끔씩 등장하는 코엔 형제의 허를 찌르는 유머는 살아있다. 여기서 말한 유머는 대사로서의 유머와 영화기법으로서의 유머를 동시에 의미한다. 특히 주인공 에드와 정반대의 캐릭터인 수다스런 캐릭터는 보는 사람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에드를 보면서 답답했던 가슴이 그들을 통해서 약간은 중화되는 느낌이 들어서 다행이다. 후자에서 언급한 기법으로서의 유머는 장면전환을 예로 들 수 있다. '장면전환의 대가'라고 칭해도 될만큼 이 영화에서 코엔 형제가 보여주는 장면전환은 예술에 가깝다. 여기서 장면전환은 사운드로서의 장면전환과 영상으로서의 장면전환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타자기에서 종이를 찢을 때 나던 소리가 바로 이발소에서 전기면도기 소리로 이어지는 장면이고 후자는 검은 화면에서 홀로 빛을 내는 동그라미가 의사가 머리에 쓰고 있는 물건으로 밝혀지는 장면이다. 이런 것들이 이 영화만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은, 이 영화의 테마곡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멜로디가 아니던가. 극중에서 스칼릿 조핸슨(버디 역)이 연주하는 이 곡(제목은 모르겠다)은 베토벤이 작곡한 노래이다. 그러나 나에겐 '키즈 피아노'의 'Remember'가 떠올랐다. 'Remember'의 초반부에 원곡인 베토벤의 이 곡을 약간 변주해서 편곡한 멜로디가 나온다. 그래서 영화에서 이 곡이 나오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이 든다.
내 생각에 코엔 형제는 이 영화를 통해서 삶의 아이러니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데이브를 죽인 사람은 다름 아닌 에드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에드의 아내 '도리스'가 살인범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크리튼 톨리버'를 죽인 사람은 데이브였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로 엉뚱하게 에드가 살인범으로 몰린다. 결국 극중에서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과정이 어떠했든. 서로의 죄는 다 달랐지만 하다못해 사실이 왜곡됐지만 결론은 동일하다. 한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한명은 전기의자에 앉았으며 나머지 두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모두들 에드에게 묻는다. 너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냐고. 그는 과연 어떤 인간일까? 내가 보기엔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는 인간이 아닐까? 분명히 화를 내고 혹은 슬퍼해야 할 상황에서도 그는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 섬뜩할 정도로 차분하고 침착하다. 그의 표정만으로는 그의 심리상태를 알 수가 없다. 삶에 대해 혹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건 아닐까? 마치 모든 걸 초월한 사람처럼 그는 흔들림이 없다. 무덤덤하게 모든 걸 받아들이고 흘려버린다. 심지어 전기의자에 앉을 때도 그는 담담하다. 나는 그가 어떤 인간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나. 알 필요도 없고. 그럼 자문해보자.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나도 날 모르겠다. 내 안에는 수많은 페르소나가 우글거리고 있을테니.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자. 이 영화의 제목은 뭘 뜻하는 걸까?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이건 에드의 독백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유령인 것이다. 실체가 없는 떠도는 영혼. 그 누구도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우주 저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체인가? 영화를 보다보면, 약간의 초현실적인 느낌이 감지된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면. 실재하지 않은 일이라면. 이렇게 말하니 어지럽군. 내가 내린 결론은, 그는 현실에서 실존하는 삶을 살았지만 동시에 아무런 존재감 없이 아무런 성과 없이 허공에 떠다니는 유령처럼 산 것이다. 그에게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거기 없었다.
사족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빌리 밥 돈튼이 아닌 '제임스 갠돌피니'다. '존 폴리토'도 꽤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으나 제임스 갠돌피니 만큼은 아니었다. 초반에 짧게 등장하고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나 그는 '씬 스틸러(scene stealer)'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역시 대단한 배우다.


★★★
괜찮았다. 코엔 형제의 영화는 늘 뭔가 부족하다. 이 영화 역시 내게는 범작이다. 엔딩이 좀 갑작스럽단 느낌이다. 그러나 연출력만큼은 인정 안 할수 없다. 촬영도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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