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동적인 영화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선 할 이야기가 많다. 러슬 크로우의 연기가 훌륭하다. 역시 그는 대단한 배우다. 제니퍼 코널리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헌신적인 아내 '얼리샤'를 감동적으로 표현해낸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하다.
론 하워드는 가장 미국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동시에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대중적인 감독이다. 드라마에 강점을 지닌 연출자다. 그 때문에 아카데미가 가장 선호하는 영화를 만든다. '뷰티풀 마인드' 역시 이 범주에 속하는 영화다.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보수주의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내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영화와 달리 실제 존 내쉬는 양성애자라고 한다. 물론 난 개의치 않는다. 영화가 꼭 사실관계를 반드시 반영해야하는 매체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구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뷰티풀 마인드'는 수학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론 하워드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정신분열증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정신분열증에 관한 영화다. 좀 더 넓게 말하면, 존 내쉬가 정신분열증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다. '굿 윌 헌팅'과 비슷한 지점이다. 물론 '굿 윌 헌팅'의 주인공은 정신분열증 환자는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없나? 맞다. 천재와 정신분열증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신은 공평하다. 보통 사람보다 월등한 두뇌를 선물로 주는 대신에 정신을 빼앗아가 버린다.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천재는 대부분 불행하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 외부와의 소통은 차단한 채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자기 내면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보통사람보다 영혼에 더 가까이 가는 존재들이다. 어쩌면 소통을 하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혹은 타인들이 자신들을 멀리하기 때문에 외톨이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고 예민하다. 때론 광기에 사로잡혀 저절로 주변인들은 그들을 '정신병자'라며 딱지를 붙인다. 너무나도 힘든 병이다. 무엇보다 힘든 건 타인이 그들에게 갖는 편견이다. 정신질환자는 누굴 해치지도 않고 겁주지도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존 내쉬는 정도가 심한 환자라고 볼 수 있다. 정신분열증은 여러 가지로 나눠진다. 존 내쉬의 병명은 일종의 양성 증상인 환각이다. 환각에는 환시와 환청 등등으로 나뉜다. 존 내쉬는 환시와 환청- 두 가지 증상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환시가 많이 나타나는데...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한번 상상을 해보라. 실재하지 않은 사람이 눈에 보인다면.. 그리고 실재하는 인물로 믿게 된다면... 더 중요한건 실재하지 않은 인물이란 걸 자각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망상이 따라 다닌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고통스런 병이다. 알면서도 믿게 되고 안 믿어도 뿌리치기 힘든 증상이다. 존 내쉬가 택한 방법은 그러니까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이 따라 다녀도 심지어 길을 막고 말을 걸어도 그냥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이다. 사실 무시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방편으로 택한 방법이지만 눈에 보이고 말을 거는 존재를 무시한다는 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단지 그 상황만 피해가는 것뿐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존 내쉬가 겪고 있는 그 망상은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사라지는 것들이다. 이게 현실이다. 정신분열증을 남일 이라고 방관하는 인간들은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 당사자들에겐 엄청난 짐일 수밖에 없다.
존 내쉬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인건 그가 병을 가지고 있음에도 끝까지 그의 곁에 있어주는 아내와 친구들 때문이다.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들도 인간이다. 존의 아내 '얼리샤'는 남편을 떠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움에도 남편을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존의 친구들 역시 처음엔 그를 별종으로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결국 사랑이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끊어질 것 같은 그들의 관계를 이어준다. 비록 사랑이 존 내쉬의 정신분열증은 치유하지 못했지만 마음의 병은 깨끗이 치유해주었다. 노벨 경제학상 시상식에서 존 내쉬는 그의 아내에게 상을 바친다. 그의 수상소감에는 눈물과 진심이 담겨있기에 내 가슴을 적신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존 내쉬가 앉은 자리의 테이블 위로 동료교수들이 만년필을 하나씩 놓고 가는 장면이다. 미국에서 특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 장면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영화 초반에 존 내쉬가 부러운 눈길로 그와 똑같은 광경을 보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신이 그런 존경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내가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존 내쉬를 존경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수학이라는 학문으로 이룬 그의 업적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극복하려한 그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존경을 표한 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현란하지 않은 안정된 구도의 촬영이 인상적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드라마틱하다.
정신분열증은 힘든 병이다. 나 역시 정신병이 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문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다. 하다못해 가벼운 우울증이나 사소한 집착도 정신병이다. 부끄러워할게 아니라 드러내야 한다.


★★★★
가슴 뭉클함을 안겨주는 잘 만든 영화. 러셀 크로우의 내면연기가 빛난다. 제니퍼 코널리의 연기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정신분열증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를 말해준다. 물론 차이는 조금 있다. 음악이 정말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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