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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허연

찰나21 2019. 8. 4. 21:51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허 연

 

 

 


형제는 같은 둥우리 안에서 어미 새의 사랑을 놓고 싸운다. 먼저 태어난 형은 큰 덩치로 둥우리를 장악한다. 엄마의 사랑을 가진 형에게 둥우리는 세계다.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동생은 할 수 없이 진보주의자가 된다. 먼저 태어나 덩치가 큰 형에게 이기려면 녀석은 둥우리를 부정해야 한다. 둥우리를 긍정하는 건 죽음이다. 그래서 동생은 평등을 외친다. 진보는 늘 성공 아니면 죽음이다. 동생으로 태어난 새가 할 수 있는 건 혁명밖에 없다. 새로운 둥우리를 만들지 않는 이상 그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데 혁명의 성공 확률은 낮아서 대부분 실패하고 모든 것은 유지된다. 둥우리 안에서 형은 눈물을 흘리며 동생을 밖으로 밀어낸다. 역사다.

 



   보리밭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보릿대가 쓰러졌고 시간은 흘렀다.

   새들이 하늘을 난다.

 

 



————

* 켄 로치 감독의 영화

 

 



                     —계간 《시인시각》 200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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