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만든 영화다. 영화가 아주 매끄럽게 완성되었다. 조승우의 자폐아 연기는 훌륭했고 김미숙의 엄마 연기도 탁월했다. 자폐아를 아들로 둔 엄마의 처절한 내면을 깊숙하게 표현한 그녀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된 가운데 이야기가 차분하게 진행된다.
이 영화가 정윤철 감독의 데뷔작인데 처녀작임에도 이렇게 말끔한 영화를 만들었다는게 참 대단하다. 기본에 충실한 연출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잘 된 영화라는게 내 생각이다. '말아톤'은 쉬운 내러티브를 가진 영화다. 그래서 어떤 관객이 이 영화를 봐도 쉽게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내러티브가 확실하게 구축된 영화라 일단 재미는 보장된 영화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악이 과도하게 사용된 측면이 있다. 물론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필요한 장치이지만 덕분에 인위적으로 감동을 조장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에 그마저도 용서가 된다.
'말아톤'은 어디까지가 실화인진 모르지만 어쨌거나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실화. 때론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할 때가 있다. 이 영화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현실에서 충분히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는 점이다. 자폐아는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에 자막으로도 나오듯이 굉장히 많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일찍이 우리는 영화 '레인맨'에서 초원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보았다. 다만 우리는 영화가 늦게 나온 것뿐이다.
'말아톤'을 보면 비 내리는 장면이 빈번히 등장한다. 초원이는 병실에 입원해 있는 엄마를 보다가 병원 밖으로 뛰쳐나간다. 동생이 보는 앞에서 초원이가 비를 맞으며 하는 말,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초원이는 '슬픔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운동장 100바퀴를 돌라는 코치의 무심코 던진 말을 진짜로 알아듣고 진짜 100바퀴를 돌고 바닥에 쓰러지는 초원. 초원이 일어나면서 코치의 손목을 잡더니 자신의 가슴에다 코치의 손을 얹는다. 나는 초원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똑같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초원이는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다만 소통의 방법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뿐이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약간 이해가 안가면서도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마치 초원이의 엄마가 초원이를 강하게 밀어붙여서 초원이를 망치고 있다고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물론 없지 않아 그런 부분이 있지만, 엄마 입장에선 달리 방법이 없는 거 아닌가. 초원이는 다른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아이다. 중원이는 보통의 일반 학생이기 때문에 엄마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성장할 수도 있는 아이지만 초원이는 다르다. 초원이는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에 엄마가 그렇게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것이다. 혹자는 과잉보호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엄마 입장을 전혀 고려치 않는 생각이다. 내가 보기엔 초원이의 엄마는 초원이에게 최선을 다한 엄마다. 물론 너무 밀어붙인 경향도 있으나 그 또한 엄마의 애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엄마가 그렇게 까지 초원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면 초원이는 그전보다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초원이와 엄마 못지않게 마음 고생하는 인물이 더 있다. 바로 초원이의 아빠와 중원이다. 중원이는 초원이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엄마에게 노골적으로 쌓여있던 불만을 터뜨린다. 아빠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과 다른 아들 초원이와 그런 초원에게 모든 걸 쏟아붓는 아내에게 완전 질려버린 것이다. 초원이를 가르치는 마라톤 코치는 처음엔 초원에게 관심도 없었지만 차츰 초원이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마음을 열더니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초원이로 인해 코치는 삶의 작은 행복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해피엔딩이다. 초원이는 코스를 완주해서 '서브쓰리'를 기록하고 팍팍했던 초원이의 가정에는 평안이 임한다.
'말아톤'은 전체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상황 상황마다 보여지는 소소한 재미들도 있는 영화다. 초원이의 독특한 말투와 행동은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를 안겨준다.
초원이는 비록 처음엔 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억지로 마라톤을 하게 됐지만, 영화 후반에 이르러선 초원이 스스로가 선택하여 마라톤을 뛴다. 코치에게 물을 가져다주고, 혼자 버스에 올라타서 마라톤 경기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며 안심을 시킨 뒤 엄마의 손을 놓고 비로소 스스로 달리기 시작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적어도 초원이에게는 경이로운 성장이다. 더불어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통쾌했던 순간은 엄마가 초원이와 같은 정신지체아에 대해 막말을 한 여자에게 쏘아붙이는 장면이다. 가장 화가 났던 순간은 지하철에서 자기 여자친구 엉덩이 만졌다고 무식하게 생긴 놈이 초원이를 때리는 장면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만 내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왜냐면 현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자폐아들은 계속해서 자폐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감이다.


★★★☆
진정성 있는 영화. 다만 영화와 현실의 괴리감. 내게는 감동적인 영화라기 보단 가슴이 아픈 영화. 이걸 정확히 알아야 한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지옥이라는 사실을. 마냥 기분 좋게 바라볼 영화가 내겐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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