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감'으로부터 시작해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끝난다. 이 영화는 패러디 영화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시도된 패러디 영화다. 벌써 제작된지 8년이나 된 영화다. <재밌는 영화>는 그전까지 개봉된 한국영화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구에 많이 회자된 기억 남는 영화들을 모조리 패러디하는 신선한 시도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패러디한 영화들의 목록은 마지막에 사족으로 따로 올리도록 하겠다.
제목 그대로 <재밌는 영화>는 정말 '재밌는 영화'가 되었다. 단지 아쉬운게 있다면, 한편이라도 더 패러디하기 위해서 간혹 가다 일부러 끼워 맞춘 흔적도 보인다. 그러다보니 작위적인 느낌도 든다. 큰 틀에서 보자면, <재밌는 영화>는 '쉬리'를 기본골격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다 마치 토핑처럼 패러디를 얹어놓는 식이다. 그건 할리우드 패러디 영화도 마찬가지다. 가장 쉬운 예를 들면, '무서운 영화'시리즈가 있다. 공교롭게도 제목도 비슷하지 않는가. 그렇게 보면, 충무로의 <재밌는 영화>가 할리우드의 '무서운 영화'를 패러디한 것이다. '무서운 영화'시리즈의 경우에도 어떤 특정영화를 기본골격으로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영화들을 패러디하는 식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정서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무서운 영화'시리즈는 미국적인 정서가 있고 <재밌는 영화>는 한국적인 정서가 있다. 나는 당연히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재밌는 영화>가 정서에도 맞고 더 친근감이 느껴지며 더 재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는 영화>가 '무서운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거란 생각은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아마도 감독은 '무서운 영화'를 참조했을 것이다. 뭐 할리우드 패러디 영화하면 '레슬리 닐슨'을 주인공으로 한 '총알 탄 사나이'시리즈나 요즘 같으면 '에픽 무비', '디제스터 무비', '슈퍼히어로 무비' 등등이 있다. 그러나 후자에 나온 영화들은 <재밌는 영화> 이후에 나온 영화들이기 때문에 참조를 할 수 없는 영화들이다. 아무튼 감독은 '무서운 영화'를 포함해 그전에 나온 할리우드 패러디 영화들을 참조했을 것이다. 물론 참조만이다.
<재밌는 영화>는 패러디 코미디답게 영화적 과장이 심하다. 그에 대한 최고의 정점은, 박경림이 김정은으로 바뀌는 부분이다. 성형수술로서 말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바로 이것이 패러디 코미디만이 해낼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데도 극중의 김정은이 연기한 '상미'는 이영애처럼 결과가 안 나왔다고 분개한다. 또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서태화가 자신이 출연한 '친구'를 본인이 패러디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아니고 장동건이 연기한 '동수'를 패러디한다. 심지어 다른 역할('친구'에서 선생님에게 출석부로 얻어맞고 발길질까지 당하는 맨 앞자리 학생)까지 패러디한다. 이것이 <재밌는 영화>가 관객에게 가져다주는 일종의 쾌감이다.
사실 이 영화가 굉장한 흥미를 가져다주는 데에는 패러디영화로서 가져다주는 재미도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을 한다. 김수로는 얼굴만 봐도 저절로 웃음이 난다. 특히 그의 특유의 말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임원희는 이번에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봤는데 순간 박명수가 떠올랐다. 목소리나 외모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둘 다 뛰어난 코미디 감각을 가진 것도 그 이유다. 서태화와 김정은의 경우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너무 오버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경우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으니 아무래도 다듬어지기 전이었다고 이해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하나 더 느낀 게 있다. 바로 정치적인 자유로움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영화는 '국민의 정부'시절 제작된 영화다. 당시 시대상도 반영이 되어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이나 남북정상회담 같은 굵직한 이슈들 말이다. 한참이나 지나서 영화를 보게 되니 이렇게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 아무래도 영화가 개봉된 지 한참 지나서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 재평가되는 부분이 있어 예전 영화를 지금 시점에서 보는게 나에겐 긍정적이다.
영화 말미에 다다르면, 사람들로 꽉 찬 실내 강당에서 천군파의 대원들과 KP의 대원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시퀀스가 나온다. 이것은 '쉬리'의 축구 경기장 시퀀스에 대한 패러디이다. 그런데 아마도 영화의 규모나 장르에 맞게 장소를 대폭적으로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을 해보라. 패러디 영화 만드는데 월드컵 경기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다 본 후에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왜 <재밌는 영화>는 1편으로만 끝나고 시리즈로 나오지 않았을까? 만약 할리우드의 '무서운 영화'처럼 시리즈로 나왔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 '스캔들', '말죽거리 잔혹사' etc.. 더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패러디 되었을텐데 말이다. 굉장히 안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도 충분히 가능한데 말이다.
서두에 밝혔듯이, <재밌는 영화>가 패러디한 영화들의 목록을 올리겠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반칙왕, 엽기적인 그녀, 박하사탕, 동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약속, 접속, 서편제, 주유소 습격사건, 비트, 8월의 크리스마스, 여고괴담, 비천무, 번지점프를 하다, 넘버3) 이상이다. 특히 '비천무'의 경우는 특별한게, 영화 속의 영화로서 패러디된다. 이때 임원희와 김정은의 표정연기가 압권이다. 음악은 더 가관이고.


지나친 우연과 과장이 만들어내는 플롯이 작위적이긴 하나 유명영화들을 패러디하는 장면들을 보는 즐거움은 뿌리치기 힘들다. 장규성 감독은 패럴리 형제 못지 않게 화장실 코미디를 보여준다. 그래도 재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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