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The Talented Mr. Ripley

찰나21 2010. 3. 6. 18:19

 

영화 줄거리
어느 화려한 파티 석상에서 친구 대신 피아노를 치던 톰 리플리. 선박업계의 대부호 허버트 그린리프는 톰을 주의 깊게 본다. 톰이 입은 재킷을 보고 허버트는 이탈리아 시골마을에 있는 그의 아들 디키를 데려와 달라고 톰에게 부탁한다. 천 달러라는 거금을 손에 쥔 톰은 디키를 만나기에 앞서 그에 대한 정보를 익히고 철저한 준비 끝에 디키에게 다가간다. 디키에게는 연인 마지가 있다. 어느 순간 톰은 디키와 가까워지고 디키를 점점 흠모하게 되는데...
영화 감상평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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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영화.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한시도 눈을 돌릴 수 없을 만큼 짜임새있게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무엇보다 앤서니 밍겔라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는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마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입니다'라고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남자 주인공 '톰 리플리'의 얼굴이 차츰 차츰 윤곽을 드러내면서 슬픈 오페라와 함께 보여진다. 오프닝부터 이미 <리플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어일으키는 마력을 선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주인공 톰은 초반부터 거짓말을 한다. 톰이 거짓말을 하는 그 타이밍에 음산한 음악이 깔린다. 이 영화는 음악을 잘 사용한 경우에 속한다. 게이브리얼 예어드의 음악은 슬프고 때론 웅장하다. 특히 이 영화에선 재즈가 주로 등장한다. 아니나 다를까 주드 로가 연기한 '디키'가 재즈 광이기 때문이다. 디키 덕분에 톰도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된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재즈 음악이 빈번히 울려 퍼지는 것이다.

 

톰은 디키의 아버지 부탁으로 디키를 만나러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의 거짓말 덕분이다. 우연히 빌린 재킷이 뜻밖에 톰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톰은 디키가 재즈 광이란 정보를 듣고 디키를 만나기 전에 재즈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열의를 보인다. 비록 그가 거짓말쟁이이긴 하지만 그의 프로페셔널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드디어 디키를 만난 톰은 디키를 동경하게 되고 심지어 사랑하게 된다. 디키에겐 연인 마지가 곁에 있다. 영화 초반에는 비교적 밝은 톤으로 영화가 진행되지만 중반부터 영화는 심각한 상황으로 점점 빠져든다. 톰의 이중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톰은 야심이 가득한 인물이다. 그는 서명위조나 디키의 아버지 말투를 똑같이 따라할 정도의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디키의 아버지 허버트는 그런 톰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좋게만 본다. 반면에 그의 아들 디키에 대해선 망나니 혹은 잉여인간 취급을 한다. 허버트의 이런 신념은 결국 종착지에 이르러선 오류를 범하게 되는 실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허버트 자신은 끝까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오도된 신념을 진실인양 믿는 것이다. 허버트는 디키를 죽인 범인인 톰에게 오히려 부탁을 하고 그를 달래려한다. 물론 허버트는 톰이 범인이란 사실을 모른다. 오로지 톰과 마지만이 알고 있다. 마지는 톰이 디키를 죽였음을 증거가 없음에도 직감으로 알아챈다. 하지만 톰은 살아남는다. 모든 화살이 톰에게만 빗겨나가는 것이다. 톰은 오히려 디키를 살인자로 몰아넣고 경찰과 탐정 그리고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톰의 술수에 놀아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너무나 신기하다. 톰은 사악한 천재다. 그는 그들의 머리꼭대기위에 올라 앉아서 그들을 마음껏 조종하며 혼자 미소 짓는 악마다. 무엇보다 톰의 술수가 가능했던 건 그의 천재성 덕분도 있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의 무지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너무 순수하거나 아니면 너무 오만하거나. 결국 디키의 과거행적 즉 고정화된 이미지가 그 자신을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반대로 톰의 단정한 이미지는 온갖 술수에도 불구하고 감옥행은 커녕 금전적인 혜택까지 얻는 결과를 낳았다. 허버트와 미국 탐정은 개인과 국가의 이미지 때문에 정밀 수사는 커녕 오히려 디키 사건을 덮으려 한다. 부모를 골라 가질 수 없듯이 자식도 마찬가지라는 허버트의 대사에서 이미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톰은 디키 행세를 하면서 그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디키를 흠모하다 못해 아예 디키가 되려 한다. 누군가는 톰을 디키로 인식하고 누군가는 톰을 톰으로 인식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은 이거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가장 큰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서로 얽히고 혹은 가까스로 비켜나갈 때의 긴장감. 서스펜스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여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마치 히치콕 영화를 보는 듯 했다. <리플리>는 고전적인 영화에 포함시켜야 할듯하다.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 모두 고전적이다. 무엇보다 내러티브 자체가 고전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눈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배경과 고전적인 건물, 인물들의 화려한 의상, 컬러풀한 색감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촬영 또한 인상 깊다. 몇몇 장면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있다. 

 

톰과 디키는 서로 매우 대비되는 캐릭터다. 톰은 단정하고 내성적이며 머리가 좋은 반면에 디키는 덜렁대고 수다스러우며 머리가 나쁘다. 톰이 좀 더 이성적이라면 디키는 매우 감성적이고 한마디로 다혈질이다. 이탈리아에 오래 머물더니 영향을 좀 받은 걸까.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톰이 어느 순간 이성을 잃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이후에 프레디와 피터를 살해할 때는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다분히 이성적으로 계획된 행동을 보인다. 이것은 톰이 점점 더 사악해짐을 의미한다. 감정이 마비되고 죄책감은 점점 사라지며 오로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톰은 유일하게 피터에게만 속내를 털어놓는다. 톰을 유일하게 좋아해주고 아끼는 사람이 피터다.

 

맷 데이먼은 역시 훌륭한 배우다. 근데 주드 로와 같이 연기하는 순간에는 왠지 주드 로에게 묻히는듯하다. 주드 로는 얄미울 정도로 못되게 나온다. 필립 시모어 호프먼은 겨우 서너 장면 등장하지만 인상 깊은 연기로 역시 연기제왕이란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 <리플리>는 잔인한 장면이 꽤 등장하는 영화다. 또한 동성애코드가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를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엔딩이 나온다. 엔딩의 톰은 오프닝의 톰과 묘하게 겹친다. 톰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거울 속에 비친 톰의 이중적인 모습이 점점 사라지면서 문은 닫힌다. 캄캄한 암흑이다. 그의 닫힌 마음처럼 그의 육체도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문은 열린다. 불이 환하게 켜지고 새날이 밝아온다. 그도 과연 그럴까? 어차피 삶은 계속되는 거니까.

 

★★★★

한시도 눈과 마음을 뗄수 없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앤서니 밍겔라는 만만치 않은 연출을 보여준다. 맷 데이먼은 정말 매력적인 배우다. 인간은 결국 고정화된 시각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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