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 시선

이번 오스카에 대한 단상

찰나21 2022. 4. 9. 15:08

거침없이 화려했던 시상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작품상 수상작으로 '코다'가 호명되었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이 전형적이고 진부해 보이는 말랑말랑한 감동 드라마에게 작품상이라니. 분명 이변이라고 생각했다. '파워 오브 도그'가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세계 3대 영화제만큼은 아니어도 오스카도 이따금씩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오스카는 작년에 '노매드랜드'에게 작품상을 수여했다. 물론 작품성이 뛰어났기에 수상을 했겠지만 단지 그뿐이었을까. 당시가 코로나19 과도기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해 오스카는 전례 없이 축소된 형태로 시상식을 치러야 했다. 이렇듯 '노매드랜드'의 작품상 수상의 요인으로는 이 영화가 가진 시의성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오스카 작품상 수상 결과는 2003년도를 떠올리게 한다. 그해 오스카는 전쟁 드라마 '피아니스트', 묵직한 대서사시 역사극 '갱스 오브 뉴욕', 우울한 멜로드라마 '디 아워스'를 제쳐 두고 음악과 춤 등 온갖 화려한 눈요깃거리로 현실을 분칠하는 '시카고'에게 작품상을 수여했다. 당시 수상 결과의 배후에 이라크 전쟁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있다. '코다'의 작품상 수상은 코로나에 전쟁까지 겹친 암울한 시대에 오스카가 병든 세상에게 건네는 치유의 처방전이다. '파워 오브 도그' 같은 진중한 영화는 병세를 더 악화시킬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오스카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런다고 전쟁이 하루아침에 종식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치유되는 것도 아닐 것이기에. 어느새 시대의 고질병으로 전락한 자본주의를 예리하고 신랄하게 비판한 '기생충'에게 작품상을 안겼던 오스카의 혜안이 새삼 그립다. 다행히 '파워 오브 도그'는 감독상이나마 하나 건짐으로써 간신히 체면치레에 성공했다. 이로써 2년 연속 여성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여성 감독이 감독상 후보에 오르는 것도 힘들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래도 불만인가? 페미들아!

잊지 말아야 한다. 오스카도 하나의 작품이다. 스토리텔링이 깔려 있다. 양키들은 시상식마저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내러티브 중독자들이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일컫는데 오스카도 종종 그럴 때가 있다. 올해 오스카에서 윌 스미스가 보여 준 돌발 행동은 오스카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다. 시상자로 나선 크리스 락의 무례한 농담에 윌 스미스가 난데없이 시상식 단상 위에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각본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단상 아래로 내려가서 단상 위에 있는 크리스에게 욕을 퍼부을 때에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일이 터졌구나. 공교롭게도 남우 주연상을 윌 스미스가 수상하게 되면서 각본 있는 드라마라는 혐의는 더 강고해졌다. 윌 스미스에게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해명하고 포장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이것을 여지없이 활용한다. 오스카는 윌 스미스에게만 특별히 예외적으로 최장 시간의 수상 소감을 할 수 있게 허용하며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해 낸다. 오스카 측은 시상식 후 윌 스미스에게 경고장을 보냈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뻐할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덕분에 이번 오스카는 남다른 화제를 불러 모았으니까. 올해 오스카는 '윌 스미스의 오스카'였다. 공개 석상에서 갑자기 단상 위에 올라가 그야말로 난데없는 폭행을 가했는데도 상대측으로부터 보복 폭행도 고소도 당하지 않았고 수상이 취소되지도 않았으며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의 아내를 욕하는 놈을 두들김으로써 위대한 남편이자 헌신적인 가장이라는 찬사를 받고 게다가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쥐었으니 그는 진정 선택받은 놈이다. 크리스가 분명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상 위까지 올라가서 폭행하는 것은 과했다. 그 정도로 폭행할 것 같으면 나는 살인을 했겠다. 심지어 처음엔 윌 스미스도 크리스의 농담에 실실 웃고 자빠졌었다. 그러다 부인이 똥 씹은 표정을 지으니까 급작스레 돌발 행동을 한 거지. 많은 이들이 그의 이런 행동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미화하지만 내가 보기엔 용기가 아니라 객기에 가깝다. 다분히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이미 전과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레드 카펫에서 어떤 미친놈이 그에게 난데없이 뽀뽀를 하자 그 미친놈의 따귀를 때린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다. 얼마나 당혹스럽고 황당했겠나. 그렇다고 화가 날 때마다 따귀를 때리는 것도 당혹스럽고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보니까 손버릇이 안 좋다. 화가 나면 욕을 하든가 고소를 하든가. 근데 그게 아니라 일단 손부터 올라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다못해 이번 경우는 시상식장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 더 나아가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지구상 가장 권위 있고 유서 깊은 영화계 별들의 잔치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없이 충격적이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지. 그러고도 태연하다. 정말 놀랍다. 경의(?)를 표한다. 그래서인지 수상 소감에서 보여준 그의 눈물은 어쩐지 가증스럽다. 웃고 때리고 화내고 울고 다시 웃고 그렇게 네 시간 남짓한 시상식 동안 그는 감정의 버라이어티를 펼쳐 보인다. 하여간 미친놈이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애프터 파티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춤추며 노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사과의 진정성은 희석되고 말았다. SNS를 통해 재차 사과를 했으나 이미 때늦은 궁색한 사과에 불과했다. 왜 사과를 할까? 단상 위에 올라갈 때도 아래로 내려갈 때도 그렇게 당당한 자태를 뽐내던 그가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솔했던 행동에 대한 때늦은 자각일까? 수상 취소에 대한 비겁한 두려움일까? 상까지 받은 상황에서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어졌을 텐데 그까짓 말로 때우는 사과가 뭐 어렵겠나. 둘 다 똑같다. 크리스도 심했다. 어쨌든 원인 제공자니까. 언제 저렇게 사고 날 줄 알았다. 워낙에 입이 싸고 입을 험하게 놀리고 다니는 놈이니까. 그렇게 맞고도 별 감정의 동요 없이 흐트러지지 않고 비교적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걸 보면 이놈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이런 일 따위는 이젠 익숙하다는 듯이, 아님 짜여진 각본이라도 있는 것처럼. 근데 어떤 병신들은 그가 차분한 대처를 했다며 프로 정신이라고 포장한다. 하여간 답이 없는 인간들이다. 윌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이 녀석도 선택받은 놈이다. 가해자인데 피해자로 둔갑하더니 폭행 사건 후 그의 코미디 투어가 매진되는 전화위복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블랙 매치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그러고 보면 양키들은 참 별종이다. 공개 석상에서 버젓이 폭행 사건이 벌어지고 그럼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폭행조차도 쇼의 일부로 녹여 내고 우리 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독설이나 유머들을 마구 날리며 정치적 발언도 서슴지 않으니까. 우리 정서에는 좀 안 맞지.

할리우드 영화가 그렇듯이 오스카도 종합 선물 세트다. 웃음, 감동, 환희, 스펙터클, 슬픔, 그리움 등 오만 가지가 들어 있다. 게다가 올해는 분노와 충격, 황당함까지. 오스카를 20년 넘게 봐 왔지만 올해만큼 남달랐던 오스카도 없었다. '기생충'의 돌풍이 거셌던 2020년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확실히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다양성의 시대가 완연히 열렸구나. 백인들만의 잔치는 옛말이고 흑인은 말할 것도 없고 히스패닉, 동양인 등 갖가지 인종이 시상식장에 우글댄다. 뿐만 아니라 여우 조연상을 받은 배우는 유색인이자 성 소수자이고 각본상 시상자로 단상에 오른 엘리엇 페이지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이다. 과거에 그가 '주노'에서 십대 임신부를 연기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충격적인 변화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마침 '주노'에서 자신의 부모로 나왔던 배우들과 같이 단상에 섰다. 15년 만에 딸에서 아들로 바뀌어 돌아온 자식을 마주한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이렇게 인종적 다양성에다 성적 다양성 거기다 청각 장애인 배우가 남우 조연상을 수상하고 대망의 작품상마저 청각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코다'에게 안긴다. 마침 휠체어를 타고 나온 관록의 노배우가 작품상을 시상함으로써 화룡점정의 감동적인 드라마로 막을 내린다. 그렇게 전쟁이 남긴 우울과 잠깐의 소동이 빚어낸 혼란은 '코다'의 작품상 수상으로 희석되고 이것은 오스카가 바라 마지않은 결말이었던 셈이다. 해피 엔딩이라는 결말마저도 할리우드 영화를 닮았다. 유색 인종, 성 소수자, 장애인은 사람이니 그렇다 치고 동물이 단상에 오르는 광경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오스카의 이 놀라운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관용성. 폭행범까지 껴안는데 말 다한 거지. 단상 높이만큼이나 오스카의 진입 장벽도 낮아진 느낌이다. 반대로 말하면 오스카의 아우라가 예전만 못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건 할리우드도 마찬가지. 할리우드는 이미 망조가 들었다. 코믹 북을 원작으로 하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그 주범이다.

중간중간에 아슬아슬하고 아찔하고 거북한 장면이 있었지만 끝내는 감동으로 마무리하는 오스카를 보며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윌 스미스의 폭행만이 아니라 사회자들의 수위가 센 발언과 행동, 시상자의 의도적 트림, 코로나 검사 받을 배우들을 단상 위로 올리는 장면 등은 보면서 당혹스럽고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오스카다웠다.

작품상을 수상한 '코다'나 감독상을 받은 '파워 오브 도그' 같은 OTT 영화의 약진은 강고해 보였던 기존의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의 벽을 허무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보여줬다. 이번 오스카는 OTT 영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출발점이다.

개인적으로 남우 조연상과 여우 주연상 수상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전자는 윤여정 때문이고 후자는 수상 소감 때문이다. 오스카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울림 있는 장면들이었다.

수상 소감에 시간제한을 얄짤없이 들이대는 오스카의 행태는 여전히 불편했다. 특히나 '제2의 기생충'이 되지는 못했던 '드라이브 마이 카'의 국제 장편 영화상 수상 때는 통역사가 입 한 번 떼지 못하고 단상에서 내려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나마 연기상이나 주요상 부문에는 시간을 할애하는데 나머지 부문은 에누리 없다. 형평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시간제한도 모자라 비인기 부문은 생중계 전 미리 시상을 끝내 놓고 중간중간에 녹화본으로 틀어 주는 전례 없는 황당한 방식을 채택한다. 시청률 지상주의가 초래한 추태가 아닐 수 없다.

단언컨대 오스카의 백미는 'In Memoriam'이다. 한 해 동안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을 추모하는 시간인데 영상과 함께 음악이 연주된다. 보통 슬픈 음악이 깔리는데 올해는 특이하게도 흥겨운 음악이 나오더라. 또한 중간중간에 몇몇 유명 영화인은 특별히 따로 언급이 되기도 했다.

오스카는 우아함과 천박함, 예술성과 상업성, 다양성과 미국의 우월성이라는 이중적인 요소를 아우르는 지상 최대의 쇼다. 늘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주파수를 맞추며 진화를 거듭해 나간다. 여전히 오스카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