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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허연

찰나21 2019. 8. 4. 21:37



보리밭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보릿대가 쓰러졌고 수백만 년이 흘렀다.

 


알에서 먼저 나온 형은 보수주의자가 된다. 동생은 기회를 노린다. 평등을 외치는 것이다. 하긴 동생으로 태어난 새가 둥우리에서 할 수 있는 건 혁명밖에 없다. 확률은 낮아서 대부분 실패하고 둥우리는 유지된다. 형은 눈물을 흘리며 동생을 밖으로 밀어낸다. 어수선해진 둥지를 추스르며. 바람이 없었다면, 중력이 없었다면, 알이 하나밖에 없었다면...... 형은 이유를 만든다. 수백만 년 동안

 


별 일 아니라는 듯 새들이 하늘을 난다

 

 


                                    —시집『내가 원하는 천사』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