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와호장룡

찰나21 2015. 6. 21. 20:39

 

 

 
 
 
 
  와호장룡 (2000/대만,홍콩,미국,중국)


  장르 액션, 드라마, 로맨스
  감독 리안
  출연 주윤발, 양자경, 장쯔이, 장젠

 

 

줄거리

19세기 청조 말엽 혼란기의 중국. 당대 최고의 문파인 무당파의 마지막 무사 리무바이는 뛰어난 무공을 소유한 여무사 수련과 평생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사부가 자객 푸른 여우에게 목숨을 잃자, 강호를 떠날 결심으로 보검 청명검을 수련에게 맡긴다. 수련은 무당파와 인연이 깊은 베이징의 호족 페이러에게 청명검을 전해주려던 자리에서, 고관 옥대인의 딸 용과 첫 만남을 갖는다. 강호의 삶을 동경하며 용은 끊임없는 정략결혼의 강요 속에서, 자신을 납치했다 풀어주며 "언젠가 꼭 다시 데려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마적단 두목 호에 대한 열정과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호가 찾아왔을 때, 용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용은 수련에게 깊은 호감을 표하면서, 자매의 연을 맺자고 청한다. 한편 정체 모를 자객이 청명검에 손을 대고 수련은 범인의 뒤를 쫓아 결투를 벌이지만 결국 검을 놓치고 만다. 사건의 조사를 위해 파견된 수련은 용을 의심하게 되고, 실제로 용이 유모로 위장한 푸른 여우에게서 대단한 무공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련과 함께 청명검을 찾아 나선 리무바이는 용이 보검을 훔쳤으며, 그녀가 무당파의 무공을 전수받을 수제자라는 것을 직감하고 설득하지만, 용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마침내 용은 수련과 리무바이에게 각각 도전장을 내밀며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데...

 

감상평

나의 평가 ★★★☆☆

 

아마 요즘 어린 세대는 잘 모를 것이다. 영화 <와호장룡>은 우리나라엔 여름에 미국엔 겨울에 개봉했다. 미국에서 겨울에 개봉한 것은 다분히 오스카를 의식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와호장룡>의 인기는 지금의 '매드맥스' 광풍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와호장룡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는 일종의 기현상(?)을 낳았다. 한국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인상적인 점은 미국에서의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알다시피 할리우드는 영어권 영화가 아닌 비영어권 영화에 대해서는 철옹성과도 같다. 대체로 미국 관객들은 자막 읽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경향(그도 그럴 것이 자국 영화를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니까)이 있어 비영어권 영화에게 할리우드는 뚫기가 거의 불가능한 진입장벽이다. 그런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영화로서 <와호장룡>은 까탈스런(?) 미국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흥행 잭팟을 터뜨리고 비평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상찬을 받게 된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으레 각종 언론과 영화 전문지, 비평가 협회에서 그 해 최고의 영화 리스트를 작성하거나 부문별로 최고의 수상자(작)를 가려내기도 하는데 거기에도 <와호장룡>은 여기저기 곳곳에 수도 없이 이름을 올리며 상복 터진 작품이 되었다. 그것의 정점이 바로 오스카 수상이다. 당시 아카데미에서 무려 10개 부문에 후보를 올리며 외국어 영화상을 포함하여 4개 부문의 상을 석권했다. 심지어 외국어 영화(다국적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만 영화로 분류)로서는 드물게도 작품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금이야 열편에 가까운 영화들이 작품상 수상을 위해 경합을 벌이지만 당시만하더라도 다섯 작품만 후보에 올리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그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글래디에이터'가 트로피를 가져가는 바람에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사실 그러한 요인에는 <와호장룡>이 '글래디에이터'보다 못한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외국어 영화라는 태생적 한계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영화의 손을 들어준 것뿐. 아이러니컬한 것은 '글래디에이터'가 미국 영화이긴 하지만 작품 속 배경은 미국이 아니었다는 거. 어쨌거나 <와호장룡>처럼 외국어 영화임에도 작품상 후보까지 올라 미국 영화에 트로피를 빼앗기는 사례는 그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지금까지도 최악의 오스카 작품상 중 하나로 거론되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이것 역시 극중 배경이 미국이 아님)에게 작품상을 내주고 역시나 외국어 영화상 수상으로 만족해야했던 '인생은 아름다워'. 대신 미안했던지 오스카는 로베르토 베니니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다. 그것도 최고의 연기를 펼쳐 보여서라기보단 연출과 연기를 겸업하면서까지 작품에 혼신의 열정을 불태운 그의 노고를 좀 덜어주기 위해서였다고나 할까. 차마 감독상은 줄 수 없어서 대신 주연상으로 퉁친 듯.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때 같이 후보에 올랐던 주연상 후보 명단을 보면 아카데미가 큰 죄를 저질렀다 할 만하다. 일생일대 최고의 연기를 펼쳐 보였다는 평가를 들은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에드워드 노튼과 '갓 앤 몬스터'의 이언 매켈런 경, 그리고 최고의 연기는 아니었어도 적어도 베니니보다는 훨씬 나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톰 행크스.. 이들이 바로 그 희생양들이다. 이 엄청난 연기의 신들을 놔두고 엉뚱하게도 베니니한테 트로피를 건넸으니.. 이래저래 미움 받는 아카데미. 어찌됐건 <와호장룡>은 외국어 영화상 이외에도 쟁쟁한 미국산 영화들을 제치고 촬영상, 미술상, 작곡상까지 연거푸 받으며 그 위력을 떨쳤다.

 

아마도 장쯔이의 가장 화려하고도 매혹적이며 아름다웠던 순간을 목도할 수 있는 영화.. <와호장룡>. 장쯔이의 초기작에 해당되며 그렇기에 그녀의 순수하고 청초하며 싱그러운 매력이 오롯이 잘 담겨있다. 내 생각에 <와호장룡>은 장쯔이의 영화다. 물론 리안의 영화다. 내 말은 배우로서 한정 짓는다면 그렇단 얘기다. 장쯔이가 진정한 주인공이다. 주윤발이나 양자경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장쯔이를 처음 알게 된 영화이기도 하다. 장젠도 마찬가지고. 내가 어렴풋이 알기론 주윤발이 맡은 '리무바이'라는 역할이 여명한테도 제의가 갔다고 한다. 물론 여명은 그 제의를 거절했다. 근데 그 이유가 재밌다. 삭발하기 싫어서였다고.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다. 늘상 우리가 보아왔고 상상하던 주윤발의 이미지는 현대식 액션 영화에서 바바리 코트를 입고 쌍권총을 쏘아대던 모습인데 그랬던 그가 고전 무협 영화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변발을 한 채 검술 액션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근데 그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릴 줄이야.. 그래도 배우층이 얇은 홍콩 영화판에서도 연기가 되는 흔치않은 액션 배우였으니까. 안타까운 건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고만고만한 액션 영화에 출연하며 악역이나 고만고만한 배역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가뭄에 콩 나듯 자국으로 돌아가 주연으로 출연하며 중국어권 영화를 찍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영화 속 주요 배우 네 명 모두 저마다 태어난 배경이 각기 다 다르다는 거. 주윤발은 지금은 명성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한때 중화권에서 가장 활발하게 영화 산업이 돌아가던 명실상부한 20세기 후반의 영화 강국 홍콩 출신이고 장쯔이는 대륙 출신이며 장젠은 리안 감독과 같은 대만 출신이다. 그리고 양자경은 흥미롭게도 상대적으로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 출신이다. 어쨌든 모두 다 중국인이다. 우연인지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중화권 안에서도 그렇게나 서로 각기 다른 다양한 출신 배경의 배우들로 모아 놓았는지 신기할 정도.

 

난 리안이 장예모보다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웅'과 비교하자면 <와호장룡>에 점수를 더 준다. 장예모의 '영웅'은(본지가 꽤 오래되긴 했지만) 이미지 과잉에다 자의식과 자뻑, 오만과 허세가 집약된 알맹이 없는 공허한 사치품의 영화였다. 반면 리안의 <와호장룡>은 진심과 영혼이 담긴 절제된 미학과 감성의 영화이다. <와호장룡>이 전 세계적인 대성공을 거두며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에 불과 2년 만에 장예모는 제2의 와호장룡이라는 영광을 꿈꾸며 야심을 품고 '영웅'이란 작품을 내놓지만 결과는 아류작조차 되지 못했다. 누가 봐도 '영웅'은 <와호장룡>을 의식한 작품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편의 영화에 모두 장쯔이가 출연한다. 아마도 장예모는 리안의 성공에 배가 아팠거나 그를 뛰어넘고 싶었을 것이다. 둘 다였겠지. 이쯤에서 생각해볼 게 있다. 리안의 변화무쌍한 행보인데 그는 장르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그것들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넘나드는 희귀한 감독이다. 근데 그러한 급격한 변화가 작위적이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점 심지어는 탁월하기까지 하다는데 놀라움이 발현되는 것이다. 가령 동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제인 오스틴 원작의 19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한 너무나 고전적이고 영국스러운 시대극(센스, 센서빌리티)을 만들다가도 미국 서부로 이동하여 너무나 미국적인 장르인 웨스턴(라이드 위드 데블)을 찍고 미국의 정신적 유산인 코믹 북의 캐릭터(헐크)를 스크린으로 불러와 SF를 선보이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와호장룡>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정신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더듬어가며 만든 무협 영화이다. 이건 비단 리안 감독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지아장커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언젠가 꼭 무협 영화를 만들겠노라고. 지아장커의 무협 영화라니.. 상상이 되는가?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중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협 영화에 대한 꿈과 로망이 있다면서. 최근에 허우샤오시엔이 무협 영화를 만들었고 이제 그의 차례가 다가왔다. 이미 만들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중국인들에게 있어 무협 영화는 단지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자신들의 상징이자 정체성이며 자부심이고 거대한 자산이라는 거. 그래서 리안이 <와호장룡>을 만들고 장예모가 '영웅'과 '연인'을 만들었던 것. 이때를 기점으로 장예모는 상업주의에 투항하다시피 하며 변절의 피를 뿌린다. '황후花'가 극단적인 예. 어느 순간부터 중국 정부에 엄청난 지원을 받으며 사이즈에 집착하는 국수주의적 영화만을 양산해내는 헷가닥 해버린 변질 헤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에 반해 오히려 리안은 가장 상업적이라는 영화 공장 할리우드에서조차도 결코 타협하는 법이 없다. 기어이 작가주의적 마인드를 끝끝내 고집하고 견지하며 때에 따라선 예술성과 상업성을 절묘하게 줄타기하는 전략으로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낸다. 가장 최근에는 3D(라이프 오브 파이)까지 손을 대며 영역을 확장해갔다. 리안의 영화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와호장룡>은 정적인 무협 액션 영화다. 리안 감독 특유의 느리면서도 여유 있는 정적인 전개가 돋보인다. 이것도 만만디 정신인가? 자칫 느슨해지거나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를 리안은 내공 있는 연출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킨다. 몰입도와 흡입력이 상당해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듯한 마술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페이드인 페이드아웃이 비교적 꽤 등장한다. 이것은 이 영화를 확실히 고전적인 클래식한 무협 영화로 관객에게 인지시키는 효과를 불러온다.

 

미학적으로도 훌륭한 영화다. 오스카에서 기라성 같은 작품들('글래디에이터'도 포함된다)을 제치고 촬영상과 미술상을 받았을 정도인데 오죽하겠나. 그것의 정점이 그 유명한 대나무 결투 장면이다. 영화의 백미로 꼽을 만한 이 장면은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탄을 자아낸다. 눈부시게 아름답다. 더 대단한건 여기서 리안 감독은 역발상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통념을 뒤집어엎는다. 곧고 단단한 대나무가 부드럽고 유연한 우아한 대나무로 재탄생하는 것. 대나무의 갈대화. 아이러니를 통한 대조.. 대비. 다만 상대적으로 다른 액션 장면들에 비해 분량이 너무 적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아무래도 고난이도의 액션 장면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실제로 배우의 몸에 와이어를 매달아 스태프들이 직접 줄을 잡아당기는 수작업으로 탄생한 장면. 늦었지만 이 지면을 빌어 스태프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뒤이어 등장하는 장면은 더 압권이다. 리무바이가 용이 가지고 있던 청명검을 뺏어 폭포수 아래 강물에 집어 던져버리자 용이 곧바로 뛰어내리며 풍덩 빠지는 것이다. 그때 초록빛 강물(마치 대나무 숲의 색깔을 연상시킨다)이 마치 구름 모양처럼 뿌옇게 부글거리며 올라오는데 거기서 나는 어떤 거대함, 위엄 같은 걸 느꼈다. 두려울 정도의 태산 같은 압도적인 위엄이랄까. 바꿔 말하면 그건 중국의 거대함, 중국 영화의 위엄 같은 거였다. 할리우드와는 또 다른 차원의 위엄 말이다. 고요하면서 깊은 영화. 그렇게 <와호장룡>은 풍경에 압도당하고 이야기에 현혹되며 액션의 화려한 진수성찬으로 배가 부른다. 이외에도 인상적인 액션 장면들은 수두룩하다. 굳이 하나 더 예를 들면, 주점에서 장쯔이가 일대 다수로 싸우며 무공 솜씨를 발휘하는 장면. 거기에는 재기발랄한 재치와 유머러스한 통쾌감마저 배어있다. 유려한 카메라 워크와 신기에 가까운 액션 안무로 대가의 여유마저 느껴진다. 이 영화의 무술 감독을 맡은 원화평은 홍콩 뿐 아니라 할리우드에 진출해 '매트릭스'로 국제적 명성을 쌓은 인물이기도하다.

 

음악이 좋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용과 수련이 지붕 사이를 날아다니며 추격하며 싸우는 영화 초반 첫 액션 씬에서 배경 음악으로 등장하는 북소리.. 정말이지 으뜸이다. 관객의 심장을 쥐었다 폈다 하며 긴장감과 스릴을 배가시킨다. 전체적으로 동양적인 특히나 중국적인 정서와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선율의 음악이 좋다. 명상 음악으로도 괜찮을 것 같네. 거기에 코코 리가 부른 (영어판) 주제곡 'A Love Before Time'(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었다)은 화룡점정이다.

 

제목 와호장룡의 의미는.. 영어 제목으로 참조해 보건대 웅크린 호랑이, 숨은 용 혹은 비밀의 용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극중 장젠이 맡은 역할이 '호'이고 장쯔이가 연기한 인물이 '용'인 것으로 보아 은유적인 제목이기도 하다. 두 인물에 각기 대입을 해보면 의미가 거의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는 웅크리고 있다가 혼인을 앞둔 용 앞에 갑자기 나타나고 용은 비밀을 품은 도둑으로 미스터리한 캐릭터다. 그렇다면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은 리무바이와 수련이 아니고 호와 용인 것인가. 전자는 후자의 조연에 불과했더란 말인가. 전자와 후자 커플의 사랑을 대비해 보는 것도 영화를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관람법 중 하나가 되겠다.

 

이 영화는 두 개의 플롯으로 진행된다. 메인 플롯은 청명검과 푸른 여우를 둘러싼 복수극이 주된 이야기이고 서브 플롯이라 한다면 장쯔이의 회상으로 전개되는 용과 호의 로맨스 이야기. 후자에선 용의 과거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인연이 되었는지 그 연원을 보여준다. 회상이 끝나는 순간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은 하나의 플롯으로 합쳐진다. 장예모의 '영웅'식으로 표현을 하면, 메인 플롯에 해당하는 주윤발과 양자경 그리고 장쯔이의 무협 로맨스는 그린이고 서브 플롯인 장쯔이와 장젠의 서부극(심지어 음악도) 로맨스는 황토색이다. 주윤발과 양자경 대 장쯔이와 푸른 여우의 추격 대결 무협 스릴러는 블랙이다.

 

하나 재밌는 부분을 발견했다. 영화 말미에 수련과 용이 최후의 결투를 하는데 수련의 칼끝은 상대인 용에게 향해 있는 데 반해 용의 칼끝은 하늘을 향한다. 무슨 의미일까. 사소하게 보이지만 의미심장한 대목 같아서 말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용이 수련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대결 끝에 가면 수련이 용에게 일종의 판정패를 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나무 숲(앞서 언급했던 대목 바로 뒤에 나오는 리무바이와 용의 최후의 결투 장면)에 비유를 하자면 수련은 나무밖에 못 보는 것이고 용은 숲 전체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수련은 오직 상대만 주시하지만 용은 하늘을 본다. 오직 하늘에 맡긴다는 일념으로.. 진인사대천명의 각오인가. 마치 초탈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걸 반대로 비틀어서 표현하면 그만큼 용의 자신감 혹은 오만,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는 의미가 될 수 있겠다. 심리학적 어휘로 표현하면, 용은 자아도취적 근성이 강하다고나 할까. 나르시시스트적 인간 유형으로 보면 되겠다.

 

 

내가 여기서 주의 깊게 보는 부분은 관계다. 리무바이와 수련.. 용과 호.. 리무바이와 용.. 용과 푸른 여우. 앞의 두 커플이 공식적(?) 연인 관계라면 뒤의 두 커플은 비공식적(?) 연인 관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용과 푸른 여우는 단순한 사제지간이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특히나 용을 대하는 푸른 여우의 태도를 보면 스승과 제자를 초월한 뭔가 진한 감정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종의 퀴어 코드의 형성이다. 그렇다면 이제 리무바이와 용이 남는다. 두 사람의 관계를 언급하기에 앞서 장면 하나를 떠올려 보자. 리무바이가 용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것은 리무바이가 가면을 벗은 용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되는 장면이다. 리무바이가 왔다는 누군가의 말에 갑자기 용이 리무바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이때 카메라가 의미심장한 표정의 용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어쩌면 찰나의 순간일 수 있다. 근데 나에겐 뭔가 확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럼 하나 더. 리무바이와 용이 처음으로 대면한 장면.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미스터리와 결투로 시작한다. 리무바이는 용에게 정체를 묻고 용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첫 만남에서도 리무바이는 용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었고 용은 리무바이에게서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큰 힘을 느꼈다. 어떤 큰 산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이랄까. 연민은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이고 존경은 사랑의 덕목이니라.

 

엔딩은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여운으로 남는다. 리안 감독의 영화는 '브로크백 마운틴'도 그렇고 엔딩이 주는 여운이 사무칠 정도로 아리다. 일종의 오픈 엔딩 즉 열린 결말이다. 수도 없는 논란과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다시 묻는다. 용은 리무바이를 정말로 사랑한 것일까? 그래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나? 왠지 '번지점프를 하다'가 연상된다. 현실적으로 보면 자살로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적으로 보면 의미가 달라진다. 윤회 사상 혹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떠올랐다. 굳이 양자택일을 하자면 윤회 사상 쪽에 가까워 보인다. 의미상으로도 그렇고, 아무래도 대만 영화이다 보니 서구 사상보다 동양 사상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이기 때문에. 뛰어내리기 전 용은 호에게 소원을 빌어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호의 소원이지 용의 소원이 아니었다. 용은 속으로 소원을 빌었겠지. 그리고 이내 깎아내린 절벽 아래로 자신의 몸을 던진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리무바이와의 또 다른 인연의 씨앗을 뿌리며.. 그렇게..  

 

 

★★★

용과 호를 리무바이와 수련 커플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물론 극명히 대조적이다. 리무바이가 기백이 넘치고 상남자라면 호는 다정한 찌질남에 가깝고 수련이 지고지순한 순정파 무사라면 용은 머스마 같은 다혈질의 천방지축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래서 기질은 리무바이와 용이, 수련과 호가 서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