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
라디오 스타 (2006/한국) 장르 드라마, 코미디, 음악 감독 이준익 출연 박중훈, 안성기, 최정윤, 노브레인 |
줄거리
1988년도에 가수왕을 거머쥔 스타였지만, 지금은 카페에서 기타를 튕기는 한물간 가수 최곤. 그의 곁엔 언제나 그를 하늘처럼 모시는 매니저 박민수가 있다. 카페에서 손님과 말다툼을 벌이던 최곤은 카페 사장을 주먹으로 폭행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끌려가 유치장에 갇힌 신세가 된다. 강원도 영월 촌구석으로 가서 라디오 DJ를 하는 조건으로 최곤은 유치장에서 풀려난다. 방송 첫날부터, 원주 라디오방송국에서 쫓겨나 영월로 온 강PD와 마찰을 일으키며 순탄치 않은 출발을 하게 된 DJ 최곤. 그러나 우연찮게 라디오 게스트로 모신 다방 아가씨 김양의 사연이 방송을 탄 이후부터,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은 청취율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100회 기념 공개방송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거대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 최 사장은 박민수에게 충격적인 제안을 하고 박민수는 최곤의 앞날을 위해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하는데...
감상평
나의 평가 ★★★★☆
일종에 휴식 같은 영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록 휴식 같은 영화지만, 결코 만만히 볼 작품이 아니다. 이준익 감독은 힘을 빼고 연출한 듯, 보는 사람을 매우 편안하게 드라마에 젖어들게 하지만 실은 굉장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마치 인생을 통달한 사람이 마음을 비우고 즐거운 마음으로 뚝딱 만들어낸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괜히 철학적인 척 하며 선문답을 하거나 지적 허영에 사로잡혀 관객에게 어쭙잖은 철학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하지도 않는다. 복잡하게 내러티브를 배배 꼬아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담으려다 장광설로 흐르는 지적 과잉에 사로잡힌 영화들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라디오 스타>는 자칫 빠지기 쉬운 신파의 함정을 걷어내고 시종일관 절제된 감정과 연출로 관객이 불편함 없이 기분 좋게 영화를 감상하도록 만들어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라디오 스타>를 여백의 미가 있는 영화로 부르고 싶다. 정적인 영화라고 느꼈다. 감독이 많은 것들을 영화 안에 첨가하기 보다는 관객들 스스로가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선, 상당부분 관객들에게 문을 열어두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을 아직 다 보진 못했지만, 내가 본 그의 작품들 중에서는 <라디오 스타>가 가장 재밌고 감동적이며 인상적이다. 설령 '이준익 영화 완전정복'을 이루고 난 후에도, <라디오 스타>가 그의 최고작이라는 내 생각은 아마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님은 먼곳에'를 기점으로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더니 '평양성'의 참패 이후 영화계 은퇴 선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제는 퇴물이 된 듯한 인상마저 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당시 '태풍'과 '킹콩'에 가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왕의 남자'로 잭팟을 터뜨린 이후로, 차기작으로 <라디오 스타>를 내놓았을 때가 이준익의 영화인생에서는 정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즐거운 인생'까지만 해도 괜찮았었는데... 그 때의 이준익이 그립다.
<라디오 스타>에서 주연을 맡은 안성기와 박중훈은 여전히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환상의 복식조 호흡을 보여준다. 안성기와 박중훈이 아닌 박민수와 최곤은 상상할 수 없다. 거의 대체 불가능하다 여겨질 만큼 배우와 캐릭터의 조합이 안성맞춤이다. <라디오 스타>에서 두 사람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라디오 스타>는 연출이나 음악, 내러티브도 훌륭하지만 근본적으로 영화를 좌지우지하는 요소는 최곤과 박민수라는 두 캐릭터이며 동시에 이들을 연기한 박중훈과 안성기라는 두 거물급 배우의 연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한 연기란, 이들 각자의 탁월한 연기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서로가 핑퐁처럼 주고받는 가운데 일어나는 시너지(synergy) 효과로서의 연기를 말한다.
<라디오 스타>는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80년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80년대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너무나 흐릿한 기억에 희미한 잔영만이 남아있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자아가 채 형성되기도 전에 80년대를 빨려나가듯이 통과했기에,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성인으로서 그 시절을 경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80년대는 민주화항쟁이 물결을 이루었던 시대이고,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올림픽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시기이기도하다. 본격적인 프로스포츠 출범의 서막을 알리던 때였고, 장발단속이 횡행했으며 컬러TV의 출현으로 일종의 미디어 혁명을 예고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새삼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라디오 스타>는 여기에서 언급되지 않은, 그 당시 80년대에 유행의 붐을 선도했던 록(rock)음악에 대한 추억을 스크린 안으로 불러들인다. 시대는 21세기로 바뀌었고, 공간은 강원도 영월이라는 소도시로 축소된다.
<라디오 스타>에서 유심히 봐야 될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영화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들이다. 라디오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특성상, 극중에서 DJ 최곤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들려주는 음악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등장한다. 그럼 왜 유심히 봐야할까? 그의 라디오를 통해 전파를 타는 음악들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등장하는 게 아니다. 각각의 곡들마다 캐릭터의 감정을 은유하거나 플롯에 직접적으로 기여를 하거나, 더 나아가 현실비판이라는 풍자적 도구로서 모두가 나름의 사연과 의미를 가지고 영화에서 사용되어진다. 최곤이 DJ가 되던 첫 날, 흘러나온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와 김장훈의 노래(제목은 모르겠다)는 아직은 얼어붙어 굳게 닫혀있는 그의 심리상태를 보여줌과 동시에 시작부터 잡음을 일으키며 마치 순탄치 않을 것만 같은 (그와 라디오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첫 선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마치 작심하고 청취자들에게 최곤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관심 있게 들어달라는 일방적인 선전포고로 느껴진다. 이것(라디오)을 영화라는 매체로 바꿔서 그대로 대입시켜보면, 감독이 관객들에게 영화를 관심있게 호의적으로 봐달라는 또 하나의 선전포고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님 말고. 다소 억지스런 분석일진 몰라도 어차피 해석은 수용자의 몫이다. 원래 민주주의에는 '오독의 자유'도 포함되는 거니까. 김장훈의 노래는 곡 자체의 슬픔도 있지만, 극중의 상황과 엮여 최곤을 더없이 불쌍한 인물로 전락시켜 애잔함을 더하게 만든다. 전자가 최곤의 팍팍하고 메마른 분노의 감정 상태를 표현한다면, 후자는 서글픔과 슬픔의 감정을 반영하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신중현의 '미인'은 스타(star)라는 거대한 별에 가려져 묵묵히 스타의 그림자 역할만을 수행하는 설움 많은 매니저 박민수를 위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민수가 시도 때도 없이 즐겨 부르는 18번이자, 엔딩에서 비로소 진정한 역할을 하며 영화의 감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몫을 한다. 특히나 여자가 부재한 영화의 특성상, 이 노래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최정윤이 연기한 강PD는 여자로서의 매력이 거의 없으니까. '빗속의 여인'은 유달리 비오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연출된 영화의 특성으로 볼 때,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곡이다. 다방 아가씨 김양이 우연찮게 라디오에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릴 때 하늘도 같이 눈물을 뿌리고, 그것에 자극받은 박민수는 아내에게 애틋한 전화한통을 날리며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의도치 않았지만 최곤의 즉흥적인 진행 방식이 낳은 김양 사건은 놀랍게도 청취자들로 하여금 신선하고 감동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을 청취율 상승으로 이끄는 촉매역할을 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최곤과 박민수가 재회하는 감동적인 엔딩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하늘에서 내린다. 공개방송에서 노브레인이 직접 부른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은 강원도 영월에 대한 비유적인 찬사 내지는 최곤에 대한 박민수의 한껏 부푼 희망과 꿈을 웅변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어느 순간부터 댄스곡에 밀려 찬밥신세로 전락한 록음악에 대한 자조 섞인 태도와 이러한 음악적 현실을 개탄하며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브레인이 영화 속 라디오에서 직접 들려주는 자신들의 곡 '넌 내게 반했어'는 꽃집의 숫기 없는 총각과 그가 짝사랑하던 은행아가씨를 연결시켜주는 일명 용기의 고백 송으로서 기능한다. 이건 여담인데, 사실 노브레인이 맡은 강원도 촌구석 영월의 유일한 록밴드는 원래 크라잉넛이 하기로 되어있던 역할이었다. 그런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크라잉넛이 노브레인에게 아쉽게도 역할을 내줘야만 했었다. 조용필의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는 최곤과 박민수의 남다른 인연을 의미로 담고 있다. 두 사람이 스타-매니저 커플로 맺어지게 된 계기이자, 종국적으로 다시 두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끈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영원한 그림자 박민수를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오길 애타게 찾는 최곤의 절절한 고백을 담는다. 자신에게 박민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 같은 소중한 존재임을 절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테마곡 '비와 당신'은 인생사 새옹지마 그리고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그렇다. 최곤과 박민수를 최고의 스타와 매니저로 만들어준 곡이자, 두 사람을 강원도 영월이라는 산골짜기로 유배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둘 사이를 잠시나마 갈라놓는(라디오 공개방송을 두고 하는 말) 의미를 지니더니, 엔딩에서는 다시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조용필의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것 같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의미상으로 분명 차이가 있고 스케일 면에서도 '비와 당신'이 전자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곡이다. 이렇듯 '비와 당신'은 다분히 양면의 얼굴을 가진 형태의 곡으로서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로 사용된다. 비와 당신.. 비는 누구고 당신은 누구일까.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가 박민수라면, 당신은 최곤이 될 것이다. 이건 어떤가. 세상의 모진 풍파가 비라면, 당신(최곤)을 세차게 내리꽂는 비에 다치지 않게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우산(박민수)이다.
사실 처음엔 최곤의 하늘을 찌르는 건방짐과 오만함이 짜증나고 욕도 나왔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숨겨졌던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비호감이 약간 누그러지기는 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박민수라는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여진다. 최곤의 비호감을 희석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최곤과 박민수는 아직도 80년대에 살고 있는 인물이다. 감독은 갈수록 고도의 디지털 문명사회로 진입해가는 21세기의 길목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계를 18년 전으로 거꾸로 돌린 다음, 과거를 한번 추억해보자고 넌지시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듯하다. 불황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을 갖게 되고, 그것은 복고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어 유행을 타기도 한다. 80년대와 90년대가 한국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대이다. <라디오 스타>는 현재의 이러한 대중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충족시키려 하는 것 같다. 특히나 80년대가 그렇다. 비록 독재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고통을 받던 시기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낭만을 누리며 새로운 것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호기심 천국의 시대였다. 지금처럼 각박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낭만이 사라진 더 이상 새로운 게 나올 거 같지 않은 정체현상이 빚어지는 한도초과의 시대에서, 80년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욕구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아직도 80년대의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환영을 벗어버리지 못한 나르시시즘의 종결자 최곤은 자신의 매니저를 개처럼 부리고, 잠시라도 옆에 있지 않으면 불안에 떨며 매니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데다 이제는 한물간 스타에 지나지 않는 안하무인의 쓰레기를 위해 시다노릇을 마다하지 않으며 온갖 모욕을 들어도, 늘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띠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매니저 박민수를 보면서 속이 터지기도 했다. 가끔 서로 티격태격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20년 우정은 심각한 싸움마저 하찮게 만든다.
<라디오 스타>는 외견상 단순한 드라마로 보이지만, 사실은 지금의 음악적 현실에 대한 꽤 날선 비판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스쿨 오브 락'에서 잭 블랙은 자신이 교사로 위장해 들어간 학교에서 MTV가 록음악을 죽였다고 학생들에게 피를 토하듯 절규(?)한다. <라디오 스타>도 그와 비슷한데, 대한민국 음악시장에서 주류로 자리매김한 아이돌 음악에 대한 비판과 함께 비주류 음악으로 전락한 록음악의 처참한 현실을 개탄한다. 그러나 영원한 주류도 영원한 비주류도 없다. 한때 미국에서 비주류 언더 음악으로 인식되던 힙합과 같은 흑인음악들이 20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해서 주류 음악으로 승격됐듯이, 주류와 비주류는 불변의 구분법보다는 얼마든지 둘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일종의 순환구조로 봐야 옳지 않을까싶다. 록(rock)은 서양음악이고 정확히 말하면, 백인음악이다. 록(rock)의 본고장은 영국이다. 록(rock)은 저항의 상징이자 주체할 수 없이 끓어오르는 분노의 표출이다. 진보적이고 혁명적이며 파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한때 악마의 음악 혹은 불온한 음악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물론 록(rock)이 무조건 거칠고 사나운 사운드의 음악은 아니다. 록(rock)이란 음악적 장르의 뿌리에서 가지를 치고 뻗어나간 수많은 파생물들이 존재한다. 그것만 보더라도, 록(rock)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과 색깔을 지닌 장르인지를 알 수 있다. 한국 역시 미국이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오래된 관습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서 록(rock)이 기능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그러한 저항의 산물로서 대마초가 빈번하게 등장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주범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은 철저하게 그 당시 사회 제도권에 속해있던 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결과물이다. 대중들 역시 결국엔 프레임(frame)의 독점권을 쥐고 있던 당시 인기 많은 언론의 일면적인 기사에 그저 함몰되고 세뇌된 가여운 피조물에 불과했던 것이리라. 그와 관련해, <라디오 스타>에서 재미난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최곤이 새로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를 홍보하러 다방에 들른 매니저 박민수는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 김양에게 최곤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정작 김양은 최곤을 모른다고 답한다. 급기야 최곤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대마초 사건을 언급하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김양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리더니 이제 기억난다며 무릎을 친다. 이 때, 박민수의 표정을 보았는가? 그의 씁쓸한 표정이 말해주듯, 현실은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냉혹하기 이를 데 없다. 대중이 기억하는 최곤은 한때 가수왕을 했던 환희에 찬 모습이 아니라, 대마초 사건이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기억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긍정적인 모습보다는 부정적인 인상으로 쉽게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건 비단 공인에게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니고 사인도 마찬가지다. 어찌됐건 공인에게 있어서, '인기'란 필수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못 괴롭혀 안달 난 언론과 팬들의 성화도, 너무 안 괴롭혀 공인으로서의 생명이 끊어지는 듯한 무관심의 태도도 모두 다 공인에게는 독약(?)과도 같다.
만약 최곤이 타임머신을 타고 2012년 미래도 온다면, 그전처럼 그렇게 한숨만 쉬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태원, 임재범, 박완규, 김경호 등을 필두로 해서 록(rock)의 부활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다시 쟁취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벌써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록음악을 하면 배고프다는 불평은 점점 효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 <라디오 스타>에서도 등장하듯, 이제는 록음악도 거대 매니지먼트 회사에 종속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여야만 되는 형국에 와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화의 흐름은 본래 유동성이 있다. 항상 어떤 문화적 흐름과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포화상태에 이르면, 대중들은 어느 순간 싫증을 내기 시작하고 더 이상 반응하지 않다가 새로운 다른 무언가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무언가라는 게, 반드시 전에 없던 낯선 창조물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전에 있었던 익숙하지만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다가오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바로 복고풍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며, 복고상품의 판매 혹은 구매 열풍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의 아이돌 음악이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유럽과 미국의 일부 대도시로까지 뻗어나간 상황이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아이돌 음악에 대한 누적된 피로도와 식상함으로 인해 과거의 아날로그 음악으로 회귀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넘실대는 분위기는 단지 음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정치나 사회 그리고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점차 스며들며 일종의 이 시대의 화두로 읽힌다. 여담이지만, 재작년에 비(rain)가 음반으로 낸 앨범제목이 'Back to the basic'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의미를 가진 제목인건 알겠는데, 공적인 의미로 해석해보면 지금의 아이돌 음악을 고착화시킨 주범 중의 한사람이 기본을 강조하는 이러한 태도는 아이돌 범람이라는 음악적 현실에 비춰볼 때, 다소 아이러니한 모순으로 다가온다.
서두에 언급했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 <라디오 스타>를 보면 단순함의 힘이 느껴진다. 촬영, 캐릭터, 연출 , 연기, 내러티브, 대사 - 거의 모든 부분에서 단순함의 미학을 보여준다. 카메라가 무심코 턱턱 걸치는 쇼트들이 하나같이 다 인상적이다. 간혹 인서트 컷으로 등장하는 삶과 자연의 모습들을 스케치하듯 그림처럼 담아내는 장면들은 특히나 가슴속에 탁탁 꽃혀 여운을 남긴다. 인물들의 대사도 심플함의 극치를 달린다. 정돈되지 않은 그저 일상의 언어들을 방금 막 건져올린 듯한 날것의 싱싱함으로 담아내는 대사들은 고급스럽진 않지만 영월의 인심만큼이나 촌스러운 진심을 관객에게 실어 나른다.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건,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음에도 꽤 인상적인 연기를 남긴 한여운이다. 그녀가 연기한 다방 아가씨 김양이 라디오에서 언급한 눈물어린 사연은 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라디오 스타>에 대해 심성으로 만든 영화라고 평했었다. 그러한 분석에 나 개인적으로도 동의하는 편이다. 영화를 보면, 감독이 매우 선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에서 루저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목적 중의 하나가, 영화 속의 주인공을 보며 감탄하고 우러러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래도 내가 저 사람(주인공)보다는 낫다는 위안을 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살아갈 희망을 주는 인물은 대개 루저들이다. 현실에서는 소외당하고 배척당하는 즉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반대로 영화에서는 매력적이고 호소력 있게 다가와 관객과 좀 더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주류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한번 떠올려보자. <라디오 스타>에서 최곤의 주먹을 다시 불끈 쥐게 한 '최 사장' 캐릭터가 정감이 가던가? 그래서 그가 주연이던가? 아니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한 인물은 영화에서는 그닥 매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설령 신이 내린 천재 캐릭터라 해도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무언가 아킬레스건이라도 있어야, 천재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쫓으며 연민의 정이라도 느낄 수 있고 감동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루저가 모두 매력적인 건 아니다. 최정윤이 연기한 강PD가 술자리에서 최곤을 포함해 함께 동석한 남자들에게 술에 취한 채 삿대질하며 욕을 하는 장면은 어이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루저가 루저들에게 욕하는 꼴이라니.
<라디오 스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21세기를 사는 80년대 퇴물들의 고군분투기라 할 수 있겠다. 21세기는 그들을 구시대적 관념과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시대의 패배자 혹은 정신병자로 규정하고 링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비록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그들은 어리석을 정도로 미련하고 우직하게 그들만의 삶의 방식과 우정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바보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사회는 그들이 필요하다. 온갖 꼼수가 남발하고 날로 각박해져가는 메마르고 피폐한 영혼들이 넘실대는 21세기에 그들의 옹고집과 서툴지만 질긴 우정이 그립기만하다. 말로만 다양성의 시대라고 외칠 게 아니라 실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준익 감독은 자칫 과거의 쓸쓸한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그들을 21세기 현재로 불러내, 디지털에 저항하는 아날로그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디지털에 대한 아날로그의 승리만을 외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해보자는 지혜로움을 지금 이 사회에 주문하고 있는 듯하다. 아울러 점점 구시대의 유물처럼 되어가는 라디오를 극의 전면에 내세워 라디오 매체만의 다양한 풍경들을 재미있게 보여주며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더불어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진하게 드러낸다. 특히 PD와 DJ간의 신경전은 긴장감이 넘치며 흥미진진하다. 엔딩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
민수가 최곤에게 중요한 일을 앞두고 늘 하는 말, 떨지마.. 릴랙스... 정작 떨고 있는 사람은 본인인데, 자신의 긴장되는 마음을 주위 사람에게 투영시킨 일종의 착각현상이다. <라디오 스타>는 언제나 거대한 별에 가려져 빛을 보진 못해도 늘 자리를 지키며 주인공보다 더 애를 태우는 매니저들에게 바치는 헌정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