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영화는 영화다

찰나21 2011. 10. 30. 01:45

 

 
 
영화는 영화다 (2008/한국)


장르 액션, 범죄, 드라마
감독 장훈
출연 소지섭, 강지환

 

줄거리

여기 두 남자가 있다. 지금은 깡패지만 영화를 너무 좋아해 한때 배우가 되고 싶었던 강패. 현재 배우지만 깡패처럼 주먹질이나 하고 사고만치는 수타. 우연히 룸살롱에서 마주친 강패와 수타는 팬으로서 강패가 부탁한 싸인 한 장으로 인해 관계가 얽혀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출연제의를 주고받기에 이른다. 상대배우를 때려눕혔다는 수타의 솔직한(?) 고백에 출연제의를 받아들이는 강패. 한껏 무게를 잡고 촬영장을 어슬렁대는 강패를 보자 봉 감독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지만 수타의 부탁과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강패를 배우로 받아들인다. 처음에 우려했던 목소리와는 달리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든다. 그런데 어느 날, 와해되기 일보직전의 조직을 살리기 위해 강패가 도중하차를 선언하면서 영화는 엎어질 위기에 처하는데... 과연 그들의 영화는 완성될 수 있을까? 두 사람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감상평

나의 평가 ★★★☆☆

 

영화와 현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우리네 현실을 돌아보곤 한다. 혹은 영화를 통해 환상을 경험한다. 반대로 현실에서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삶 자체가 영화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현실이 영화로 옮겨지기도 한다. 즉 현실이 영화가 되고 반대로 영화가 현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은 약간 식었지만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을 분노의 도가니로 들끓게 했던 영화 '도가니'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를 테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 KBS 인간극장 '달려라 내 아들'편에 등장했던 자폐아 배형진 군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말아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비운의 좌절을 맛보았던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대표팀의 고군분투기를 극적인 감동으로 풀어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그 외에도 많은 영화들이 있다. 굳이 극적인 실화가 아니더라도 지금 현실의 문제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시의성의 영화들도 있다. 영화로 시각화되어 현실의 사건이 영화처럼 느껴지는 경우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도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던 장면들이 서서히 우리네 현실로 다가오는 것처럼, '주유소 습격사건'이 어느 멍청한 관객에 의해 모방범죄로 이용됐던 것처럼 말이다. 때론 수용자의 태도에 따라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종교적인 갈등과 회의를 경험한 사람에게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닌 현실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소외된 일상을 늘 살아가며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어떤 이에겐 마튼 스코시즈의 작품 '택시 드라이버'가 마치 현실의 내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미래의 현실을 예견하거나 지금의 현실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을 고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현실이 먼저냐 영화가 먼저냐,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애정남'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참.  

 

지금 내가 소개할 <영화는 영화다>가 바로 영화와 현실이라는 양측 면을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이다. 제목부터 뭔가 노골적이면서 왠지 무슨 선언문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당돌함마저 느껴진다. 다분히 장난기가 느껴지는 제목인데.. 타이틀만 봐서는 왠지 무슨 패러디물이나 코미디 장르의 영화 같은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감독의 시니컬함에 둔기로 뒤통수를 약간 얻어맞은 느낌이다. 다소 촌스럽고 성의 없이 지은 타이틀 같지만 사실 <영화는 영화다>라는 제목에는 장훈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정확히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감독은 관객에게 앞으로 여러분들이 보시게 될 이야기는 철저히 영화로만 봐달라고 읍소한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막을 내리고 화면이 뒤로 빠지면서 텅 빈 관객석을 배경으로 실제 극장에서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듯한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감독의 연출은 이러한 작품의 의도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정작 장훈 감독은 영화 내내 리얼(real)을 강조한다. 영화 속의 감독 '봉 감독'이 망나니 배우 '수타'를 데리고 만들려고 하는 작품도 액션의 리얼(사실적인 묘사)을 강조하는 영화이고, <영화는 영화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에도 '리얼'이란 단어가 많이 들어가 있다. 수타가 '강패'에게 처음으로 찾아가 자신이 찍게 될 영화의 각본을 내밀며 출연제의를 할 때, 이유를 묻는 강패에게 대답한 말도 "이번 영화 컨셉이 리얼 이거든" 이었다. 출연제의를 받아들인 강패가 수타에게 출연조건으로 내건 사항도 모든 액션 장면에서 실제로(real) 싸우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영화에서 강패와 수타는 일명 '다찌마리'로 불리는 맨몸 격투 장면을 소화한다.

 

<영화는 영화다>는 상반된 개념의 조합들로 이뤄진 영화다. 픽션(fiction)과 현실, 과장과 리얼, 깡패와 배우. 그리고 이것은 다시 영화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영화로, 배우 같은 깡패와 깡패 같은 배우로 구분되어진다. 바로 이러한 점이 <영화는 영화다>를 흥미롭게 보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는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희미해지며 그들 영화의 엔딩 '갯벌싸움 장면'에 이르러선 와해되기에 이른다. 진흙으로 온몸이 뒤범벅이 되어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강패와 수타 두 사람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서로 간의 차이와 구분이 무의미해져버린 유일한 순간이다. 픽션과 현실은 영화 내내 서로 끊임없이 교섭하며 우리들 스스로가 구분 짓기를 좋아하는 악습을 끊으려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종래에는 영화는 현실이 될 수 없고 현실은 영화가 될 수 없다는 다소 이분법적인 결론을 <영화는 영화다>라는 또 하나의 영화 안에 속박시켜버린다. 결국 이 모든 게 다 영화일 뿐이라는 감독의 이야기다. 사실 영화 자체가 픽션인데(다큐멘터리는 제외하고), <영화는 영화다>의 경우는 픽션 안에 또 다른 픽션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영화 속에 영화가 들어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건, 영화를 보다보면 허구가 아닌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영화는 영화다>는 리얼리즘(realism)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독립영화라 해도 무방한 이 영화는 시종일관 건조하고 무뚝뚝한 정서와 태도로 일관한다. 저예산 독립영화답게 화면은 매우 평면적이고 화려한 기교나 치장은 배제되어 있다. 마치 느와르 필름을 보는듯한 느낌마저 약간 든다. 확실히 영화를 보다보면, 김기덕의 체취가 느껴진다. 원래 김기덕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으려 했던 작품이었는데, 자신의 영화제자 장훈에게 각본을 넘기면서 장훈 감독의 입봉작품이 되었다. 장훈이 다른 작가와 같이 각색을 하긴 했지만(엄밀히 말하면, 각색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서나 종교적인 메타포, 비극적인 결말의 여운,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영화적 설정과 같은 부분들이 김기덕의 흔적을 말해준다. 김기덕은 <영화는 영화다>에서 제작과 각본을 맡았다.

 

<영화는 영화다>는 크게 두 개의 플롯(plot)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이 찍고 있는 영화 플롯과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 플롯. 여기서 현실 플롯은 강패의 이야기와 수타의 이야기로 다시 나뉜다.

 

솔직히 수타에게는 깡패 같은 배우보단 양아치 같은 배우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린다. 영화를 보면서, 수타의 뻔뻔함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무간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영화 초반 옥상 장면에서, 수타는 안 그래도 조직일로 바쁜 강패를 전화로 불러놓곤 그에게 느닷없이 서류봉투에 담긴 영화 대본을 들이밀더니 출연해 달라 정중하게 부탁은 못할망정 낯짝 두껍게 출연제의를 한다. 아마 상대가 강패였기에 일부러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같이 공연하는 동료남자배우들을 족족 병원으로 실려 보내고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오히려 자신의 인기만 생각하며 여자 친구를 식물(?)로 만들어버리는 배우. 자신의 기획사 실장을 하대하고 매사에 애만 먹이더니 나중엔 배신했다고 욕지거리를 하는 안하무인,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자세를 가진 수타를 보면서 역겹고 혐오스런 감정이 솟구쳤다. 근데 이런 쓰레기가 과연 영화에만 존재할까? NO. 내가 알기론, 실제로 이런 오만방자한 무개념의 배우들이 꽤 있다. 일개 배우가 감독 머리 위에 올라앉아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자기가 감독 노릇을 하며 정작 진짜 감독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로 만든다거나,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왕자나 공주라도 된 양 스탭들을 부려먹으며 심각한 자아도취증에 빠진 경우도 있다. 연기라는 본질은 망각하고 돈에만 눈이 먼, 일명 돈벌레배우도 있다.

 

이랬던 수타가 강패와 영화를 찍으면서 미세하게나마 변화해간다. 늘 대중들의 이목에만 신경 쓰며 자신의 인기에만 목을 메다보니 여자 친구와 그 흔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기를 꺼려했던 그가 처음으로 여자 친구와 카페에서 공개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바로 그의 변화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사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의외로 인상적인 느낌을 개인적으로 갖게 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캐릭터의 변화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극중에서 유일하게 밝고 산뜻한 로맨틱 분위기를 자아냈기 때문이다. 수타의 입장에서는 나름 용기(?) 있게 한 행동으로, 여자 친구가 은근히 감동받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거기다 카페 유리 너머로 두 사람의 데이트 행각을 신기한 듯 관찰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더해지니 나에게도 은근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 장면이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장훈 감독이 연출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장훈 감독은 남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거칠고 투박하며 선 굵은 영화를 추구해왔다. <영화는 영화다>의 영어제목이 'rough cut'인 것만 봐도 감독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의외일 수밖에. 비유를 들자면, 마치 황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다.

 

수타와 달리 강패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가시적으로 확 드러날 만큼의 확연한 변화를 보인다. 점점 알게 모르게 감성적으로 변해간다. 이러한 변화는 비록 짧지만 그에게 낭만적인 로맨스를 누리게 하고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도록 하며 그의 삶에 새로운 모험을 선사하고 비루한 현실을 탈피하는 돌파구가 되어준다. 동시에 그와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는 그에게 있어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았다. 환호의 외침도, 우려의 목소리도 모두 허무하게 느껴진다. 백일몽이 끝나자 그는 본래의 위치로 와있고 진정 '강패'로 다시 돌아온다.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그는 본래의 심성으로 돌아와 원래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을 마무리 짓는다. 그는 그가 보스로 모시던 회장을 배신하고 그를 기만한 박 사장에게 처절한 복수를 감행한다. 강패는 원래 그런 인간이다.

 

박 사장이 자신이 귀하게 여기며 구입한 불상으로 강패에게 최후의 일격을 처참하게 당하는 엔딩은 꽤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여겨진다. 영화초반에, 재판 끝날 때까지 자신이 보스로 모시는 백 회장을 잘 부탁드린다며 돈 가방을 건네던 강패에게 박 사장이 느닷없이 한 질문은 "자넨 종교가 뭔가?" 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끼던 불상을 강패에게 선물로 건넨다. 여기서 불상은 종교이자 절대자를 의미한다. 이는 결국 박 사장이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던 절대자에게 징벌을 당한 것으로 의미가 해석된다. 한마디로 죄인이 죗값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도록 중간에서 수행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강패이다. 수타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강패가 아닌 너무나 낯설어 보이는 강패의 진짜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하고는 충격에 휩싸이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강패는 수타처럼 멋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그는 배우일 수 없었다. 수타 역시 잠깐이나마 강패를 부러워하며 열등감도 느끼고 강패에 대한 시기심도 있었지만 결코 깡패일 수 없었다. 영화 초반에, 강패와 수타가 서로에게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를 각자의 공간에서 혼자서 웅얼거리는 장면은 두 사람이 서로를 관심과 끌림을 가지고 상대를 동경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수타는 강패가 될 수 없고 강패는 수타가 될 수 없다. 엔딩에서 수타와 강패는 서로를 마주본다. 한 명은 처연한 표정으로, 나머지 한 사람은 넋이 나간 괴물의 표정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때 감독은 수타의 시선과 강패의 시선을 분할해서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두 사람 모두 자기 자신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가여운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숙명이자 바꿀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결국 나의 삶은 오로지 내가 감내하며 살아 나가야하는 것이다. 수타가 강패 대신 수갑을 차고 경찰차에 몸을 실을 수 없고 강패가 수타 대신 바라보는 자가 될 수도 없다. 서로를 대신할 수 없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것뿐이다. 강패가 수타에게 억울한 듯 말한다. "우리 같은 진짜 건달들은 쓰레기 소리 듣고 너희들처럼 흉내도 제대로 못내는 배우들은 멀쩡한 사람 취급받는다." 얼핏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는 이 대사는 내게는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결코 공평한 사회가 아니다. 착하게 열심히 산다고 해서 알아주는 세상도 아니고, 꾀를 부리며 영악하게 산다고 해서 손가락질 받는 세상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올바른 상식을 가지고 정의를 외치며 순수하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이 융통성 제로의 바보라는 소리 듣기 딱 이고, 적당히 타협하며 권모술수와 암수를 일삼는 계산주의자들은 성공의 계단을 맘껏 올라가며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좀 더 심하게 얘기하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전자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후자는 멀쩡한 사람 취급 받는다. 아무리 정의를 외친들, 세상은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 상식과 이론이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건 결코 아니다. 현실은 가혹하고 냉혹하다.

 

그들이 촬영한 영화가 마무리되고 비로소 백일몽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강패가 수타에게 말한다. 이젠 진짜 배우처럼 보인다고. 아직 인간이 됐다고 말하기엔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조금은 변한 것도 같다. 정말 그럴까? 언젠가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우아한 세계' 비평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본성과 습관이다. 이 때 습관이라는 것은 곧 삶의 방식이며 양과 질에서 삶 그 자체에 가깝다. 결국 하나의 삶을 추동하는 것은 변화의 의지가 아니라 관성의 습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비관적인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남겨둬야겠지? 인간은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때에만, 간신히 변할 수 있다. 이토록 본성을 거스르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캐릭터의 이름을 한번 살펴보자. 강패.. 수타가 그에게 싸인을 해주며 놀렸듯이 왠지 그의 직업인 깡패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수타.. 심심하면 동료(남자)배우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발음도 특이하지만, 작가의 네이밍(naming) 솜씨가 탁월하다. 고창석이 열연한 '봉 감독'도 나름 재치가 느껴지는 네이밍이다. 솔직히 그를 알기 전에 <영화는 영화다>를 봤을 때는, 그가 실제배우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연기가 사실적이고 생활연기라 느껴질만큼, 연기경력 없는 일반인(이를테면, 실제로 영화감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연기했을 거란 추측이 들었었다. 처음엔 약간 부조화를 느꼈던 것 같다. 근데 자꾸 보다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드는 탁월한 연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 독특한 배우다.

 

영화를 보고나서 갑자기 드는 의문 중 하나, 강패에게 수타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마도 예외적인 존재가 맞을 듯하다. 그렇게 자기를 무시하고 욕하고 때리며 심지어 수타로 인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해를 끼치고 궁지에 몰렸음에도 강패는 수타를 해치지 않았다. 무뚝뚝하지만(어차피 이건 그의 본성이니까) 나름 애정을 가지고 수타를 대하는 듯이 보였다. 물론 강패가 수타를 헤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이게 아닐까. 강패는 한때 영화배우가 되기를 지독히 소망했고(오프닝에서 수타가 출연한 영화를 홀로 감상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미 짐작가능한 부분), 그렇기에 수타를 죽인다는 건 자신의 꿈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게 된다. 왜냐면 그에게 있어 수타는 자신의 분신이자 유일한 낭만이고 영원히 꿈꾸는 이상향이니까.   

 

★★★

확실히 다수 대중들에 의해 과대평가된 영화. 연기 한번 배워본적 없는 강패가 직업배우인 수타보다 더 나은 연기를 보인다면, 그건 아마 강패가 날것 그대로의 그 자신을 드러내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진심을 담았기에 기교 부리는 수타의 연기보다 신선하게 느껴졌을 터이다. 소지섭의 연기가 의외로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