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Zodiac

찰나21 2011. 3. 18. 21:38

 

 
 
 조디악 (2007/미국)


장르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감독 데이비드 핀처
출연 제이크 질렌할, 마크 루펄로, 로버트 다우니 Jr., 앤서니 에드워즈,
       브라이언 콕스, 찰즈 플라이셔, 잭 그리니어, 필립 베이커 홀,
       얼라이어스 코티어스, 제임스 르 그로스, 도널 로그, 존 캐럴 린치,
       더못 멀로니, 클로이 세빅니

 

줄거리

1969년 7월 4일, 차안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남녀가 괴한이 쏜 총탄에 맞는다. 연인 중 여자는 죽고 남자만 살아남는다. 약 한 달 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사'에 편지 한통이 날라든다.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은 한 달 전, 차안에서 데이트 중이던 남녀를 총으로 쏜 일명 '조디악'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연쇄살인범이다. 그 후로 조디악의 연쇄살인은 계속되고 편지도 계속 날라든다. 조디악을 잡으려고 추적하는 사람은 세 사람.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사의 기자 '폴 에이버리' 그리고 경찰청 강력계 경위 '데이비드 토쉬'와 '빌 암스트롱'이다. 여기 또 한 사람이 더 있다. 누구보다도 조디악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추적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크로니클 신문사의 삽화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과 집념에도 불구하고 수사는 틀어지고 더욱더 복잡해져만 가는데... 과연 조디악은 그들 손에 잡힐 수 있을까?

 

감상평

나의 평가 ★★★☆☆

 

이 영화는 오프닝부터 관객을 의미심장하게 몰입시킨다. 두 남녀가 차안에서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는 장면으로 포문을 연다. 물론 남자는 죽지 않았다. 그건 곧이어 밝혀진다. 음악이 흐르고 '조디악'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프닝 크레디트가 뜨고 무대는 샌프란시스코의 크로니클 신문사로 옮겨진다.

 

<조디악>은 크게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크로니클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폴 에이버리'와 삽화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경찰청 강력계 형사 '데이비드 토쉬'- 바로 이들이 중심인물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유독 튀어 보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하는 로버트 그레이스미스. 직업이나 위치로 봐선 조디악과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인물 같지만 실상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물이다. 비록 삽화가이지만 조디악에 대한 관심과 지식만큼은 누구보다도 앞서있는 인물이다. 조디악을 잡으려는 그의 집념은 아무도 못 말릴 정도다. 마치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단순무식한 박두만과 달리 그레이스미스는 학구파에 가깝다. 그는 철저히 이론과 단서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그의 집념은 조디악을 잡기 위해 자신의 아이들을 동료로 이용하는데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어느 순간 그에겐 조디악을 잡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되었다. 누구도 부여하지 않았고 굳이 스스로 가지지 않아도 될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그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부인과 멀어지게 만들고 조디악에 점점 집착하게 만든다. 이러한 집착은 밤늦은 시간에 토쉬 형사의 집에 찾아가게 만들고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집에 전화하게 하고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들게 만든다. 조디악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만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관련자들을 모두 만나는 수고를 서슴지 않는다. 제이크 질렌할의 순진무구한 눈망울 때문에 더욱더 그렇게 느껴지는 건진 모르지만 소심하고 겁 많은 그레이스미스가 의외로 용기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사람은 하나의 성격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한 개인은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심함 뒤에는 끈질김과 독기도 있다는 것. 범인을 잡고자하는 그의 욕망은 집착이나 중독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행동은 사회에 대한 정의를 이루고자하는 선의 욕망이라기 보다 일종의 자기만족에 가깝다. 조디악을 잡으려는 욕망 때문에 지치고 힘들고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해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단서가 하나씩 잡힐 때마다 느껴지는 희열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그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현대인들은 모두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누군가는 구두를 모으는데 열을 올리고 누군가는 도박에 빠져있고 누군가는 종교에 심취해있다. 또 누군가는 돈 버는데 짜릿함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디 한군데에 미쳐있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니까. 지나치면 문제지만 적당한 중독(말이 좀 어폐가 있긴 하지만)은 삶의 버팀목이 되기 때문에 꼭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조디악>은 개봉당시 미국 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렸다. 아마도 미제의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다룬다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 '살인의 추억'이 뜨겁고 감정적인 영화라면 <조디악>은 차갑고 이성적인 영화다. <조디악>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정서로 일관한다. 이 때문에 '살인의 추억'에 비하면 재미는 많이 떨어진다. <조디악>에선 감정의 폭발이나 눈물은 볼 수 없다. 폭력적인 장면에서조차 건조함과 냉소가 느껴진다. 그래서 더 공포스럽다. 데이비드 핀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기복 없이 일정한 사이클을 그리며 묵묵히 차분하게 영화를 진행시킨다. 해리스 서바이즈가 창조한 화면은 '엘리펀트'에서와 유사하게도 현기증을 유발시킨다. 밀도 넘치는 화면은 금세라도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다. 자로 잰듯한 카메라 각도와 연출은 빈틈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다. 다른 말로 하면, 여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확실히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는 머리 아프다. 그의 영화는 늘 어둡고 음울한 구석이 있다. 그는 아마도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조디악>도 사실은 그의 어린 시절에 한창 떠들썩했던 조디악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잊지 못할 선명한 기억 때문에 만들어진 나름 야심작이다. '세븐'도 사실 조디악 사건과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데이비드 핀처는 스타일리스트다. 그런 그가 <조디악>에서는 스타일을 최대한 배제하고 정공법으로 극을 밀어붙인다. 런타임이 매우 긴데도 불구하고 몰입도는 강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덩어리를 모두 들어낸 채 시종일관 건조함과 냉소로 일관하는 그의 연출은 지루함과 더불어 질식할 것만 같은 고통을 안겨준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소셜 네트워크'가 이미 공개된 지금의 시점에서는 <조디악>에서의 그의 연출이 낯설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패닉 룸'을 끝으로 5년만의 공백을 깨고 <조디악>을 내놓았을 때의 대중과 비평가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모두들 "데이비드 핀처가 변했다.. 이 작품은 그의 변신을 말해주는 신호탄과 같다"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왜냐면 그전과는 다른 스타일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그의 비주얼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탁월하다는 게 보인다. 그러나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스타일리쉬한 화면보다는 내러티브와 캐릭터에 집중함으로서 그전과는 달라진 연출태도를 보였던 게 사실이다.

 

영화를 보면서 좀 놀랐던 건, '살인의 추억'처럼 발로 뛰는 수사가 아닌 과학적인 수사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에서조차도 범인을 못 잡는 일이 발생한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범인이 잡히지 않을 거란 사실을 이미 감지하거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과 마찬가지로 결과적으로 범인이 잡히지 않는 그러나 희미하게나마 누가 범인일 것임을 추측하게하는 모호한 엔딩이 씁쓸하면서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조디악>을 보는 재미이자 이 영화의 미덕이다. 사실 <조디악>은 '살인의 추억'보다는 친절하다고 볼 수 있다. 범인이 도출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아서 리 앨런'이 범인이다. 그것은 어디에서 알 수 있냐하면, 형사들이 그의 직장에 찾아가 그를 심문할 때, 그가 보인 태도와 그가 범인임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듯한 감독의 연출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영화가 종반부로 달려갈수록 그 증거는 확실해진다. 물론 엔딩 자막에서는 그가 범인이라고 확정짓지 않았다. 그러나 자막이 바로 뜨기 전 엔딩에서 조디악의 얼굴을 유일하게 목격한 생존자 '마이크 마조'가 그를 지목한 건 결정타다. 운명은 참 얄궂다. 좀 더 빨리 마조를 만났더라면... 그럼 조디악도 그전에 벌써 잡혔을 수 있었을 텐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조디악>에서 조디악을 연기한 배우가 한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세 명의 배우가 각각의 조디악을 번갈아가며 연기했다. 물론 영화에선 얼굴이 노출되지 않으니 관객은 구분조차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대사는 그레이스미스의 부인이 남편인 그레이스미스에게 "밥은 먹고 다녀?"라고 묻는 장면에서 나온다.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 아닌가.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박해일에게 했던 대사와 비슷하다. 물론 상황이나 느낌은 전혀 다르지만. 사소한 거지만, 영화를 보면 재밌는 부분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데이브와 빌이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누는 대화들... 이를 테면, 일식(japanese food)에 관한 빌과 데이브의 대화나.. 심심하면 동물크래커를 주섬주섬 입에다 넣는 데이브의 모습이나...

 

희한하게도 이러한 범죄 사건은 안개가 걷히듯이 술술 진행되지 않고 항상 보면 잘 나가다가 미궁 속으로 빠지고 헛 다리를 짚기도 하며 뭔가가 풀린다 싶으면 다시 사방이 막혀서 결국 범인을 놓치게 되는 형국이 벌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주인공을 맡은 제이크 질렌할이 아니라 로버트 다우니 Jr.과 마크 루펄로다. 로버트 다우니 Jr.은 역시 매력적인 배우다. 그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자신의 색깔로 녹여낼 줄 아는 탁월한 연기자다. 이 영화에서도 비중이 그리 크지 않지만 존재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마크 루펄로는 성대가 좀 약한 것 같다. 나지막이 말하는 그의 말투는 성격파 배우의 으르렁과는 거리가 멀지만 차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평범한 캐릭터의 연기는 그의 강점이자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그는 몇몇 인상적인 장면을 남긴다.

 

영화를 보면, 당시의 시대상이 어렴풋이 보인다. 음악이 좋다. 결코 걸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영화.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적인 정서의 <조디악>보다는 한국적인 정서의 '살인의 추억'에 손을 높이 들어주고 싶다.       

 

 

★★★

한 남자를 추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자로 잰듯한 카메라각도와 밀도 넘치는 연출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로 정확하다. 감정을 배제한채 시종일관 건조함과 냉소로 일관하는 핀처의 연출은 '살인의 추억'의 뜨거움과는 많이 비교된다. 개인적으로 난 '살인의 추억'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