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Mile
8 마일 (2002/미국,독일) 장르 드라마, 음악 감독 커티스 핸슨 출연 에미넴, 킴 베이싱어, 브리터니 머피, 메키 파이퍼 |
줄거리
황량하기 그지없는 디트로이트의 '8마일 로드'.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낡은 트레일러에서 사는 청년 '지미 스미스'. 엄마는 '그렉'이라는 덜떨어진 놈과 사실상 동거를 하며 같이 지내고 있다. 지미는 래퍼로서 성공하여 깡촌 같은 동네를 떠나는 꿈을 꾸고 있다. 한편, 지미에겐 같이 뭉쳐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 셸터에서 MC를 보고 있는 '퓨처', 허구한 날 사고만치는 '체다 밥', 지미의 엄마를 몰래 넘보는 재간둥이 뚱보 '솔', 이들 중에선 사회적인 문제에 가장 관심을 가진 나름 지성인 '디제이'. 그런 지미에게 '윙크'라는 친구가 래퍼로서의 성공을 약속하며 접근해오지만 지미는 여전히 공장에서 일하며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어느 날, 공장에 '알렉스'라는 이름의 매력적인 아가씨가 찾아오고 지미와 점점 가까워진다. 한편, 지미의 패거리 '3과 3분의 1'과 '파파 독'의 패거리 '프리월드' 사이의 충돌과 갈등은 점차 격화되어간다. 지미는 과연 이 모든 장애물들을 제치고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나 그토록 원하던 '성공한 래퍼'가 될 수 있을까?
감상평
나의 평가 ★★★★☆
벌써 7년 전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사실 난 극장에서 예고편으로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에미넴도 몰랐고 힙합에 대한 관심도 없었지만 <8 마일>의 예고편은 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건 바로 음악 때문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예고편에 흐르던 음악이 그 유명한 <8 마일>의 주제곡 'lose yourself' 였던 것이다. 왠지 보고 싶은 영화로 느껴졌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고 극장에 개봉이 되었을 때, 드디어 이 영화를 봤다. 좋았다. 그리고 확실히 기억나는 건,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계속 앉아 있었다. 바로 엔딩에 나오는 음악이 이 영화의 주제곡이었으므로. 그 후로도 나는 이 곡을 틈날 때마다 듣곤 했었다. 그리고 나선, VHS가 출시되었을 때, 다시 봤다. 너무 좋았다. 음악만 좋은 게 아니고 영화 내용 자체도 너무 재밌고 훌륭했다. 7년 후, 다시 본 소감을 말하자면, 그 때만큼 영화가 재밌거나 훌륭하진 않다. 오해는 마시라. 영화가 형편없다는 얘기가 아니니까. 여전히 재밌고 훌륭한 영화지만 그때만큼의 감동이나 흥미는 지금와선 느끼기 어렵다. 그 사이 영화가 변했나? 아니다. 영화는 그대론데 내가 변한 것이다. 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생각도 변화시킨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를 말하자면, 에미넴은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뮤지션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꽤 놀라운 사실이다. 연기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고 보는 것만큼 그렇게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에미넴은 기본적으로 연기력이 어느 정도 잠재돼있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화내는 연기는 그의 실제 캐릭터가 반영돼서 그런지 굉장히 자연스럽고 실감난다. 킴 베이싱어는 'LA 컨피덴셜'이란 작품으로(그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인연을 맺은 커티스 핸슨의 작품에 또 다시 출연했는데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은 배역임에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역시 노련한 배우임을 증명해낸다. 브리터니 머피는 사실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깝다. 이렇게 재능 있고 훌륭한 배우가 세상을 떠났으니. 이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의 젊은 여배우들 중에서 가장 장래가 촉망되고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던 배우였는데... 이 영화에서 그녀는 약간의 백치미를 풍기면서 나름 매력적인 여성을 연기한다. 사실 이것은 배역이 가진 매력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매력들 중의 하나로서의 매력을 의미한다. 킴 베이싱어와 브리터니 머피- 이 두 배우는 에미넴 이라는 연기 초짜가 단독주연을 맡은 <8 마일>에서 완벽히 균형을 잡아주며 튼실한 뿌리 역할을 한다. 이 두 배우 덕분에 에미넴이 흔들리지 않고 그의 연기가 더욱더 돋보이고 부각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영화 덕분에 에미넴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음악에 심취했었다. 한마디로 매료된 거지. 더구나 'lose yourself'는 오스카 역사상 처음으로 힙합이라는 장르로서 주제가상을 수상한 노래가 되었고 <8 마일>이 첫 영화가 되었다. 대단한 사건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허슬 앤 플로우'란 영화가 또 다시 힙합음악으로 오스카 주제가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미 그 때는 이러한 결과가 더 이상 놀라운 사건이 될 수 없었다. <8 마일>은 영화 중간 중간에 흐르는 힙합 음악이 가슴을 쿵쾅 때리며 영화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에미넴의 자전적 실화라고 알고 있지만 그건 잘못된 정보다. 에미넴이 실제로 디트로이트에서 어렵게 자란 건 사실이지만, 자전적 실화는 아니다. 극적인 요소를 더하기 위해 영화적으로 허구를 더 많이 집어 넣었다.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실화든 아니든. 재미만 있으면 되지.
영화를 보다보면, 미국의 다양한 얼굴을 인식하게 된다. '섹스 앤 더 시티'는 어쩌면 미국이란 나라의 극히 일부분의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영화에 나오는 디트로이트의 '8마일 로드'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폐허 투성이에다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보는 내가 숨이 막힐 정도다. 저런 환경에서 살면 나라도 저렇게 밖에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실 미시간 주에 있는 디트로이트라는 도시는 본래 자동차산업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공교롭게도 영화에서 지미가 일하는 곳도 자동차 철강을 찍어내는 공장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재밌는 건, 영화를 보다보면, 지미가 자동차 부품을 고치거나 자동차에 친구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거나 엄마에게 자동차를 선물 받거나 하는 등- 끊임없이 자동차와 관련된 장면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디트로이트라는 도시의 특성인 것이다.
이 영화는 재밌게도 오프닝과 엔딩이 묘하게 대구를 이룬다. 랩 배틀로 시작해서 랩 배틀로 끝난다. 오프닝에서 지미는 친구들에게 뒷모습을 보이고 엔딩에서도 여전히 친구들에게 등을 보이며 뒷모습을 남긴다. 지미의 친구 '체다 밥'이 오프닝에서 지미에게 '힘내, 래빗'이라고 외치는 모습은 엔딩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역시 오프닝에서 보여지는 지미의 현실과 처지는 엔딩에서 다시 한번 보여진다. 그는 여전히 공장에서 블루칼라로서 노동을 하고 낡아빠진 트레일러에서 엄마와 귀여운 여동생과 함께 계속 살아갈 뿐이다. 그의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이 영화를 정말 맘에 들어하는 이유는 바로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독은 엔딩을 통해 마치 관객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는 것같다. 지미가 뚱보 친구에게 말한다. "그럴 때 정말 힘들지 않아? 내 꿈은 저 위에 있는데 내 현실은 시궁창에 있을 때." 뚱보 친구가 졸린 눈을 비비며 내뱉는 리액션 대사에 많은 관객들이 아마도 그저 이 장면을 유머러스한 장면으로만 기억하겠지만 나에게는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가왔다.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성공한 사람들이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과연 그럴까? 이 질문에 대한 지미의 대답은 뭘까?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독하리만치 냉혹한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옥 같은 그곳을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현실은 더욱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더욱더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TV드라마에서는 일부 부유층의 가정이나 그들의 삶을 보여주며 마치 나도 언젠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처럼 장밋빛 환상에 젖게 만든다. 그것이 현실과 얼마나 큰 괴리감을 형성하는지 아는가? <8 마일>은 현실의 엄정함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훌륭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지미의 친구들을 보면, 다들 제각각이다. 한명은 어리버리한 사고뭉치고 한명은 지식인처럼 구는 일장 연설가이며 또 다른 한명은 성적농담을 즐기는 재간둥이다. 그리고 지미와 가장 친한 '퓨처'는 지미에게는 아버지 혹은 스승과도 같은 존재다. 옛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세 명의 친구가 걸어가면 그 중엔 반드시 스승이 한 명 있다.' 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미는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나서 래퍼로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정작 천국의 티켓을 거머쥔 사람은 지미를 밟고 일어선 그의 여자친구 '알렉스'다. 거기다가 지미는 천국의 티켓을 주겠다던 '윙크'에게 알렉스마저도 빼앗긴다. 두 사람에게 철저히 배신을 당한 지미. 거기다 윙크의 고자질로 인해 '프리월드'패거리들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고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셸터로 향하는 지미. 그는 더이상 몸으로 싸우지 않는다. 랩으로 싸운다. 그의 랩에는 분노와 절규가 녹아있다. 물론 백인으로서 그의 랩이 흑인의 랩보다 운율이 안 느껴진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랩을 자꾸 듣게 되는 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 만의 폭발력 때문이다. 흑인들에겐 사실 랩이 하나의 음악 이전에 삶의 고통과 울분을 토해내는 일종의 고백과도 같다. 그것이 발전해서 하나의 음악 장르가 된 게 '힙합'이다. 랩을 통해서 감정의 정화를 느끼고 고통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흑인들에겐 랩이 하나의 일상과도 같은 너무나 편안하고 쉬운 읊조림이지만, 우리들에겐 너무나 어려운 하나의 음악장르로서 대하게 된다. 말만 빨리 하면 그게 랩인 줄 착각하는 인간들이 있다. 랩에는 라임과 플로우가 있어야 한다. 나도 사실 힙합에 대해서 많이 아는 건 아니다. 랩배틀은 영화 내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내가 유심히 보면서 느낀 건, 배틀에서의 랩은 거의 상대방을 속된말로, '씹는'거다. 랩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실 가사가 굉장히 중요하다. 가사의 내용을 보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면 원래 랩이란 게 속성 자체가 그런 거니까. 그리고 상대를 이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이것은 싸움이 아니라 일종의 게임이고 스포츠이기 때문에 문제될 건 전혀 없다. 그리고 사람이 살면서 늘 아름답고 예쁜 말만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특히나 <8 마일>의 인물들 같은 경우엔, 그것이(그렇게 거친 말들이) 그들의 삶의 언어인 것이다. 만약 그런 환경에서 아름답고 우아한 언어들이 쏟아진다면 그게 더 부자연스러운 거 아닐까. 어쨌든 나는 가사가 너무 재밌다. 이 영화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 '배틀 장면'이다. 지미의 유일한 탈출구는 랩이었고 그는 결국 랩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울분을 표출한다. 더 이상 뭐가 필요한가? 그는 래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자신의 유일한 장기를 통해 승리를 맛봤고 주먹이 아닌 랩으로 그들을 때려눕힐 수 있었다.
사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영화는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한다. 전체적인 플롯이 있는 가운데 웃기면서도 황당한 에피소드를 통해 잔재미를 선사한다. 커티스 핸슨은 워낙 드라마 연출에 능통한 감독이라 이 영화에서도 그의 연출력은 빛을 발한다. 다만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조금은 급작스럽게 결말이 찾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이 맘에 든다. 지미가 래퍼로서 성공하는 해피엔딩이 아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엔딩이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지미를 연기한 에미넴은 성공한 래퍼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영화는 클로징을 했지만 지미의 삶은 계속된다. 그가 영화에서 데모 곡으로 만들려고 했던 노래가 바로 'lose yourself'다. 지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열린 결말이다. 이 영화에서 내 기억 속에 가장 각인된 채 남아있는 이미지는 지미가 걸어가는 뒷모습이다. 씩씩하게 걷는 듯 하지만 쓸쓸함이 묻어 나온다. 그러나 그에게 전혀 희망이 없어보이진 않는다. 래퍼로서 성공하는 것만이 행복일까? 어쩌면 그에겐 여동생 '릴리'가 희망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는 현실 속에서 행복과 희망을 찾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안에 진정한 행복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비로소 그 때 작은 변화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사족하나, 영화에서 재미난 장면이 하나 나온다. 지미의 친구 '디제이'가 차를 타고 가며 지미에게 하는 말, "백인이 흑인의 음악매체로 음악을 하면 흑인보다 유리하지 않을까?" 사실 이 말은 극중의 지미에게 묻는 대사이지만 동시에 에미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다. 실제로 에미넴은 그런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유리한지 안 한지 그건 가치판단의 문제니 넘어가겠다. 다만 그 모든 걸 떠나서 에미넴이 대단한 아티스트인건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요즘은 예전만 못한 것 같긴 하다.
★★★☆
재밌다. 에미넴의 랩은 격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 바로 그의 자산은 분노다. 에미넴의 친구들이 투팍이 나은지 비기가 나은지 서로 논쟁하는 장면이 특히 재밌었다. 무엇보다 음악 그리고 배틀 시퀀스는 최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