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Memento

찰나21 2010. 8. 24. 15:31
(2000/미국)
장르
범죄,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줄거리

레너드에게 기억이란 없다. 아내를 강간하고 죽이려한 강도에 의해 거울에 머리가 부딪혀 단기기억상실증이란 병명을 얻게 된 레너드. 그가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는 것 그리고 범인이 '존 G'라는 것이다. 기억을 불신하는 레너드는 그에 대한 대안으로 중요한 사실은 항상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며 심지어 몸에 문신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를 항상 따라다니는 '테디'라는 이름의 경찰은 레너드의 편에 서있지만 레너드는 그를 의심한다. 레너드는 그가 입은 정장 주머니에 있는 컵받침대에 적혀있는 바 이름과 글씨를 보고 '나탈리'를 찾아간다. 웨이트리스 나탈리는 레너드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 하지만 실은 그를 이용해먹으려 한다. 존 G를 찾아서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 레너드에게 나탈리는 테디가 존 G라며 증거서류를 내미는데...

영화 감상평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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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다. 연기, 연출, 음악, 각본- 모두 완벽하다.

 

8년 전 내가 느꼈던 충격과 여운이 지금 다시 봐도 그대로다. 이 영화가 정말 대단한건, 보면 볼수록 더 깊은 매력에 빠지도록 만든다는데 있다. 즉, 처음 볼 때와 두 번 볼 때가 다르며 두 번 볼 때와 세 번 볼 때가 다르다. 그것은 각본의 힘이다. 크리스 놀런의 동생인 조너선 놀런이 원안을 집필했다. 크리스 놀런도 대단하지만 조너선 놀런도 그에 못지않게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와 완벽한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는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 영화는 정말 흠이라곤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귀가 딱딱 맞으며 극의 밀도감은 최상급이다. 마치 세공품을 조각하듯이 세밀하고 정밀하게 각본을 구성해 한 치의 오차도 없는듯하다. 간혹 보면서 약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몇군데 있긴 했으나 그것이 영화를 흠집 내지는 못한다. 원안의 각색은 이 영화의 감독인 크리스 놀런이 맡았다. 두 사람은 단언컨대 매우 비범한 천재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런은 21세기 가장 중요한 감독 중의 한사람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의 최고작은 '다크 나이트'가 아니라 <메멘토>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독창성에 있다. '다크 나이트'도 물론 훌륭한 영화고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메멘토>는 완성도에다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독창성과 심오한 철학을 품고 있는 영화다. 비록 적은 예산에 '다크 나이트'가 자랑하는 엄청난 물량공세와 큰 규모는 없는 독립영화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위대해 보인다. <메멘토>는 엄밀히 말하면, 그의 데뷔작은 아니지만 그가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첫 영화이므로 데뷔작이라 해도 사실상 무리가 없다. 화려한 볼거리도 없고 음악도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시종일관 영화는 건조하게 흐른다. 단지 각본과 연출, 연기의 힘만으로 이 영화는 위대한 영화가 되었다. 크리스 놀런의 단점을 굳이 하나 꼽자면, 썰렁한 유머에 있다. 사실은 크리스 놀런의 영화는 유머가 부족하다. 아니 유머가 거의 없다. 그의 영화는 늘 진지하고 무겁다. 때론 냉소적이다. 여기서 크리스 놀런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라는 매체는 작가(감독)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무의식적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니까.

 

사실 <메멘토>는 내러티브적으로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영화다. 인간의 지적유희의 최고단계를 시험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일단 하나 하나 알게 되면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재미는 배가된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메멘토>는 지적유희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인 것이다. 정서적 감동이나 눈요깃거리 혹은 웃음을 선사하는 일반적인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화다. 물론 <메멘토>만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건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중에서도 <메멘토>는 압도적이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이야기 구성이 캐릭터의 특성을 반영해서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영화의 주인공 '레너드'는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희귀한 병명을 앓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 구조는 단락 단락이 끊겨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흑백화면이 끼어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역순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마치 레너드의 기억의 근원을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역순으로 진행되는 바로 그 구성이 이 영화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만약 이 영화가 순차적인 구성을 택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흥미롭진 않을 것이다. 역순 구성은 이 영화를 더욱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흥미를 배가시킨다. 마치 그냥 대충 던져놓은 앞선 상황이 뒤에서는 앞의 이야기가 덧붙여서 앞선 상황의 연유를 설명해주고 계속 그런 식으로 반복이 된다. 그래서 대충 던져놓은 앞선 상황은 관객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뒤에서 앞선 상황에 대한 설명이 이뤄지면 그 때 무릎을 탁 치면서 지적유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두뇌가 쉴 틈이 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마치 내가 레너드가 된 것처럼 추리를 해나가며 퍼즐을 푸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건, 단순히 이 영화는 역순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컬러화면으로 나오는 플롯은 역순이지만 흑백으로 나오는 플롯은 순차적인 구성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흑백화면 플롯은 레너드가 모텔에서 '새미'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주가 된다. 영화 종반부에 이르러선 흑백이 컬러로 바뀐다. 즉, 흑백의 끝이 컬러의 시작점인 셈이다. 그래서 묘하게 둘은 맞물린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플롯이 기다란 원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이것이 <메멘토>의 진정한 매력이다.

 

오프닝 타이틀이 뜨면서 카메라는 사진을 들고 흔드는 레너드의 손을 비춘다. 근데 신기한건, 사진을 흔들수록 선명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희미해진다는 사실이다. 그건 바로 한 장면 안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이다. 곧이어 '테디'의 "안 돼"라는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린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였으며 영화 역사상 절대 잊을 수 없는 오프닝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영화에서 오프닝이 왜 중요한지 증명해주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이렇게 압도적인 오프닝에서 영화가 시작되니 일단 시선 끌기에 성공한 것이다. 곧이어 흑백화면으로 영화는 바뀐다. 이 역시 신선한 장면전환이다. 곧이어 영화에 대한 정보 없이도 컬러화면은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사실 <메멘토>하면 오로지 각본과 연출만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연기도 최상급이다. 주인공을 연기한 가이 피어스의 연기는 최고다.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탁월한 연기에 정말 감정이입이 저절로 되었다. 단기기억상실증을 병명으로 가진 레너드를 너무도 섬세하게 표현한다. 캐리-앤 모스는 '매트릭스'의 '트리니티'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게 아킬레스건이긴 하지만 <메멘토>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레너드를 이용하는 아주 나쁜 여자로 등장한다. 레너드를 돕는 '테디'를 연기한 조 팬톨리아노는 역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정말 대단한 배우들이다.

 

'메멘토'의 어원은 라틴어로 '생각해내다'에서 유래한다. 기억하라~.

 

내가 결론 내린 이 영화의 주제는 결국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한다'이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하는 존재라고 생각된다. 레너드는 말한다. "기억은 색깔이나 모양을 왜곡시킬 수 있어.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니까." 그 주장에 대한 처방으로 레너드는 사진과 메모를 택하지만 그 역시 사실을 왜곡시키는 건 마찬가지다. 그에겐 메모도 사실이 될 수가 없었다. 그가 내키는 것만 메모했고 내키지 않는 건 지워버렸으니까. 그가 모텔에서 계속 전화로 얘기했던 '새미'는 그가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는 인슐린 주사로 본의 아니게 아내를 죽였지만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아내를 살해한 놈을 스스로 만들어 실상 그의 기억만 앗아간 놈을 이미 죽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존 G를 찾아 여정을 떠난다. 퍼즐 맞추기 놀이에 맞들인 것이다. 아니면 그것이 그의 유일한 삶의 의미이자 돌파구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반복학습처럼 그는 살인을 반복한다. 결국 자신의 편이었던 '테디'를 의심한 끝에 죽이고 만다. 반면에 그가 호감을 갖던 '나탈리'는 그의 증상을 이용해 그를 등쳐먹었는데도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이용당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나탈리는 레너드를 킬러로 활용해 '도드'를 한방 먹이고 테디를 죽임으로서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잘 수 있게 됐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다. 삶을 살다보면, 오판을 하기도 하고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다. 다만 그 과정을 통해 실수를 줄이고 좀 더 현명해지는 것이다. 레너드의 병명은 단기기억상실증이 아니다. 그의 진짜 문제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를 서슴지 않음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오류를 반복하는 데에 있다. 그는 현실 속에 살지 않고 그만의 세계에서만 사는 인물 같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결국 아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상으로는 초반부지만 영화상으로는 엔딩에 속하는 마지막 장면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그는 기억할 수가 없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척하고 있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린다. 현실을 인정하기 두려우니까. 그래야 자신이 편하니까. 그는 자신 맘대로 사실을 조작한다. 이게 그의 오류다.

 

사족하나, 레너드가 책을 읽고 있는 아내에게 하는 대사가 있다. "결말을 알고 보면 재미없잖아." 내가 레너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레너드, 당신 말이 틀렸소. 당신이 출연한 <메멘토>는 결말을 알고 보면 더 재밌다고."

 
★★★★★
 
21세기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 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전무결한 영화 탄생. 복잡한 내러티브는 이 영화의 난점이자 최대의 장점이다. 지적유희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질문도 던지는 깊이있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