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Good Will Hunting

찰나21 2010. 8. 20. 21:56
영화 줄거리
MIT 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윌 헌팅. 그는 비록 정규교육 한번 받지 않았지만 천재의 두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과 술 마시며 놀기를 좋아하는 청년이다. 어느 날, MIT 대학의 수학 교수인 '제럴드 람보'는 복도의 칠판에 써놓은 어려운 수학문제를 누군가가 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를 쫓는다. 그가 바로 윌이다. 수학을 전공한 학생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손쉽게 풀어버리는 윌의 재능을 알고 그를 수소문하기 시작하는 람보 교수. 윌은 폭행죄로 법정에 서게 되고 람보 교수는 윌에게 석방되도록 도울테니 대신 두 가지 사항을 이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첫째는 매주 자신과 만나서 수학공식을 푸는 것, 둘째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다. 윌은 람보 교수와 수학공식을 푸는 데는 열성이지만 약속과 달리 정신과 치료는 거부한다. 한편, 윌은 하버드 대학 근처의 술집에서 '스카일라'라는 이름의 여대생을 만나 교제를 시작한다. 람보 교수는 마지막 선택으로 자신의 대학 룸메이트였던 숀 매과이어를 윌의 정신과 치료의 적임자로 꼽고 숀에게 윌을 상담해줄 것을 부탁한다. 윌은 숀도 다른 정신과 의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숀에게도 거침없는 말로 그의 상처를 후벼 파며 물을 먹인다. 그러나 숀은 윌을 포기하지 않고 그와의 상담을 계속 진행하는데...  
영화 감상평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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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다.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본 시점이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그 당시 이 영화를 보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서 '내 인생의 영화'라고 칭할 만큼 소중히 여겼던 작품이다. 그후로도 TV에서 방영해줄 때마다 간간히 보았고 아무튼 여러번 본 영화다.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꺼내서 보았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영화라서 매우 오랜만에 봤는데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장면 장면이 거의 기억이 날 정도였다.

 

우선 <굿 윌 헌팅>은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특히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정말 훌륭하다. 이건 내 개인적인 의견만은 아닌 것이 이 영화로 로빈 윌리엄스는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특히 로빈 윌리엄스는 이렇게 인간적이고 훈훈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빛을 발하는 배우다. 예를 들면, '사랑의 기적'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 그리고 '패치 아담스'에서의 연기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환자나 학생들)을 치유하는 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그는 영화에서 만큼은 우리들의 멘터(mentor)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연기한 카운슬러 역할은 그에게 적역인 셈이다. 인자하면서도 모든 허물을 다 감싸안아주고 품어줄 것 같은 사람. 실제 그의 모습은 어떨지 모르지만 영화 안에서 만큼은 정말 그는 그런 사람이다. 반면, 맷 데이먼의 연기는 칭찬을 받기에는 좀 부족한 연기였다. 연기가 나쁘진 않았지만 상처받고 아픈 기억이 있는 인물치고는 어떤 깊은 아픔과 슬픔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오만하고 건방진 반항기어린 인물로만 느껴진다. 한마디로 그의 연기는 피상적이다. 깊이가 없고 겉도는 느낌이 강하다. 오히려 그의 연인을 연기한 미니 드라이버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나름 깊이가 느껴진다. 일단 이 영화만 놓고 본다면, 맷 데이먼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연기는 능하지만 뭔가 절제되고 깊이 있는 연기는 모자라다고 생각된다.

 

거스 밴 샌트의 연출력은 참 뛰어나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동시대 최고의 감독 중 한 사람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장면이 있다. '윌 헌팅'이 유치원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인데, 이 때 거스 밴 샌트는 슬로우 모션으로 폭행 장면을 보여준다.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슬로우 모션 연출은 윌과 처키의 야구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뜬금없어 보이지만 매우 적절하게 활용한 슬로우 모션으로 기억될 것이다. 거스 밴 샌트가 왜 그 장면에서 슬로우 모션을 택했는지 그의 의도는 알 수 없다. 더 재밌는 사실은, 그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엘리펀트'에서도 슬로우 모션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그는 결코 슬로우 모션을 멋으로 혹은 일종의 과시욕으로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충분히 연출 의도나 장면의 목적에 맞게 사용한다. 거스 밴 샌트의 연출 스타일은 한마디로 정적이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분위기나 정서가 그의 영화엔 녹아들어있다. 고요하면서도 뭔가 음울한... 영상과 음악, 연출에서 그런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뭔가 나른하면서도 감성을 예리하게 자극하는 음악.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서 보여준 렌즈의 거울 이미지는 마치 주인공 윌 헌팅의 분열된 자아를 의미하는 듯하다.

 

사실 <굿 윌 헌팅>은 연출도 좋지만 각본이 좋기로 소문난 영화다. 특히 대사가 훌륭한데, 이 모든 대사와 각본을 바로 극중의 인물들을 연기한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집필했다는 사실. 두 사람은 잘 알려진대로, 죽마고우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서 얘기하지 않겠다. <굿 윌 헌팅>은 매우 잘 짜여진 이야기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부분에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굿 윌 헌팅>은 마치 '동화(fairy tale)'같다. 윌 헌팅은 상담 몇 번 받고 숀 매과이어로부터 완치 통보를 받는다. 인생이 그렇게 쉽던가. 마음의 병이 그렇게 쉽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한마디로 금방 치유가 되던가. 참으로 믿기 힘들다. 윌 헌팅이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은 트라우마(trauma)가 고작 그 한마디로 씻은 듯이 해결되나. 역시 영화는 영화다. 뭐 어차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아니고 배우의 손에 의해 창작으로 쓰여진 이야기니까.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윌 헌팅이 안쓰럽다거나 그에게서 연민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왜냐면 그에게서 아픈 상처와 말할 수 없는 깊은 고뇌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저 내가 보기에 그는 건방지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치기어린 사춘기 소년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참 복이 터진 인간이다. 좋은 여자친구 만나고 친구들은 그에게 차를 선물하고 우연히 복도에서 욕까지 퍼부우며 만난 교수가 그의 재능 때문에 석방시켜주고 그것도 모자라 교수의 친구인 카운슬러 덕분에 치유까지 받았으니. 그는 그저 그냥 앉아서 먹여주는 대로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나? 현실에선? 어림도 없다. 이 영화의 치명적인 독은 바로 현실을 외면한채 판타지를 보여주면서 해피엔딩으로 치닫는데 있다. 그런 점에서 '뷰티풀 마인드'는 <굿 윌 헌팅>보다 더 훌륭한 영화다. '뷰티풀 마인드'의 지극히 현실적인 엔딩은 저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굿 윌 헌팅>은 인물의 상처와 고뇌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훑고 지나가거나 아예 다뤄지지 조차 않는다. 그렇기에 윌에게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굿 윌 헌팅>도 일종의 반전 영화다. 초반에 윌이 보여주는 행동과 제럴드 람보 교수의 등장은 숨어있던 방황하는 수학 천재의 성공담을 예고하는듯 보이지만 영화는 결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수학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의 성장담이자 치유기인 것이다. 그저 방황하는 수학 천재인가 했더니 남모르는 아픔이 있는 삐뚤어진 청년이었던 것이다. 사실 윌도 람보 교수의 두 가지 제안을 받았을 때, 수학에는 흥미를 보이지만 정신과 치료에는 거부감을 나타낸다. 근데 재밌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수학에는 흥미를 안보이고 정신과 치료 상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의 적극적인 행동이 결국 치유를 가져왔다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초반에 나왔던 수학 방정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윌과 스카일라의 연애, 숀과의 상담, 친구들과의 일들로 채워진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플롯은 윌과 스카일라의 연애와 숀과의 상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숀과의 상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제일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개인적인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숀이 말한 것처럼, 윌은 지식과 상식은 풍부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진정어린 감수성이 없다. 그는 비평에는 타고났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선 솔직하지 못하고 피하려고만 한다. 그저 타인에게 상처주고 가슴을 후벼 파는 독설을 내뿜는 게 그의 특기이자 취미다. <굿 윌 헌팅>을 보다보면, 간혹가다 윌의 행동이 참 극단적이고 어리석구나 하는 게 많이 느껴진다. 아무리 상처를 받았어도 설마 저렇게까지 말하고 행동할까 싶을 정도로 과장되고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한 언행들이 많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숀이 윌에 대해서 '20년 동안 외롭게 산 애'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윌의 모습을 보면서 전혀 그에게 외로움이란 건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친구랑 어울려 다니고 여자친구 있고 일 열심히 하고 상담도 받는데 과연 그가 외로울 틈이나 있을까?

 

사실 영화를 보다보면, 제럴드 람보라는 인물은 좀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측면이 있다. 그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람보도 숀만큼이나 윌을 걱정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의 가치관은 숀과 다를 뿐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다보면, 누구의 편을 들기 마련이다. 괜찮다. 그것은 이야기라는 형태를 가진 모든 극의 특성이니까. 사실 개인적으로 숀의 가치관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람보의 가치관이 그르다고 단정 짓고 싶지 않다. 그의 가치관은 틀린게 아니라 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니까. 사실 윌이 치유를 받고 자신의 길을 비로소 찾는데는 숀 보다는 람보 교수의 공이 더 크다. 람보가 아니었다면, 그는 감방에서 계속 썩었을 것이고 숀도 만나지 못했겠고 종국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윌에게 치료가 다됐다고 완치를 선언했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살다보면, 불행을 겪기도 하고 또 다른 아픔을 겪을 수도 있고 비극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생도 그렇듯이 인간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므로. 어쩌면 완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죽기 전까지 삶의 모든 과정이 치유를 위한 과정이 될테니.

 

그는 결국 모든 걸(친구들, 숀, 람보, 고향, 직장) 뒤로 하고 여자친구 스카일라를 잡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이것이 해피엔딩일까? 이것은 단지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 스카일라를 다시 만나면 다시 윌은 또 상처주고 상처받고 살아갈 것이다. 새롭게 인생을 개척한 윌에게 승리를 기원하며~

 
★★★☆
 
좀 더 현실을 반영했다면 좋았을텐데.. 지극히 동화적이다. 주인공의 내면의 슬픔과 아픔, 분노가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버릇없는 녀석의 발악만이 보일뿐. 예전만큼 울림을 주지 못한다. 내가 변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