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iver Runs Through It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고등학교 때였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영화는 제작된 지 20년 가까이 된 한마디로 옛날 영화다. 이미 12년 전에 봤던 영화이기에 결말과 대략적인 이미지만이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다시금 영화를 꺼내보니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구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배경이다. 몬태나를 배경으로 하는 아름다운 자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몸소 느끼게 해준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이미지의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수많은 이미지들이 떠올려진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플라잉 낚시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하게 만든다. 영화에서 한번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등장하는데..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나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낚시가 아니니까. 하긴 뭐 낚시터 근처에도 안 가본 내가 아무렴... 아무튼 플라잉 낚시를 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때론 슬로우 모션으로 낚싯줄을 드리우는 모습을 감성적으로 포착해낸다. 낚싯줄이 공중에서 휘익 하며 드리워질 때 그 찰나의 순간.. 거대한 숲과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한 인간이 낚싯줄을 드리우는 모습을 카메라는 아주 먼발치에서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본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그저 하나의 점처럼 보인다. 자연친화적인 영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은 배우에 있다. 브래드 피트의 비교적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플라잉 낚시 삼매경에 빠진 폴 매클레인은 브래드 피트가 연기했기에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사실 중의 하나는 지금은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긴 '조셉 고든-레빗'이 출연한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크레이그 셰퍼가 연기한 노먼의 어린 시절 모습으로 등장한다. 12년 전엔 몰랐던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땐 조셉 고든-레빗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테니까.
'흐르는 강물처럼'은 시적인 영화다. 그것은 비단 영상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선 유독 시적인 대사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삶에 대한 시.
영화는 전체적으로 단조롭다. 커다란 사건도 거의 없고 제목 그대로 흐르는 강물처럼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매클레인 형제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그렇다. 솔직히 우리네 삶이 그렇게 극적이고 드라마틱하진 않으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알고 있다. 실존 인물인 노먼 매클레인이 원안을 집필하였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이 영화를 통해 삶에 대해 성찰하고 자연의 위대함을 말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플라잉 낚시를 통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보여주는 몸서리쳐지는 깊은 성찰과는 또 다른 성찰을 보여준다. 감독의 시선은 시종일관 차분하고 조용하다. 마치 감독의 성향이 영화에도 묻어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강물처럼 잔잔하고 고요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강물은 때론 무섭게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며 격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노먼과 폴은 형제지만 성격이나 삶의 태도에 있어 서로 차이가 있다. 노먼은 형이지만 소심한 학구파에 가깝고 반면에 폴은 동생이지만 대범하고 거친 면이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폴의 거칠 것 없는 자유분방함은 결국 영화에서는 비극으로 끝난다. 하지만 감독은 폴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놔둘 뿐이다. 삶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그 누구도 폴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건 그의 삶이니까. 폴이 권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노먼의 입으로 전해질 뿐이다. 감독은 폴이 죽는 장면을 구태여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훌륭한 연출이다. 사실 이 영화가 비장미 넘치는 범죄 영화나 액션 장르의 영화가 아니지 않나.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었기에 감독은 당연히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이게 바로 절제된 연출이다. 노먼과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저 힘없는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나거나 묵묵히 그 자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시종일관 지루하리만큼 잔잔하게 다가오던 영화는 마지막 엔딩에 이르러선 나의 마음을 울린다. 노먼과 폴의 아버지 매클레인 목사는 마지막 설교에서 비로소 삶의 회한을 토해낸다.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순 있습니다." 그 대목에서의 노먼이 나에게 보여준 표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어린 시절, 노먼과 폴이 함께 뛰어놀고 그들이 행했던 추억들이 빛바랜 필름처럼 스쳐지나간다. 노먼은 아직 그곳에 있다. 그가 사랑한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다. 그는 홀로 서있다. 그는 여전히 낚싯줄을 드리운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명상에 잠긴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나는 그저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길 뿐이다. 그럼 언젠간 그곳에 도착하겠지...


★★★☆
마치 빛바랜 일기장을 다시 들여다보는 느낌. 어린시절과 젊은 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는 아련한 정서의 영화. 삶을 초월한 한 늙은 신사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잔잔함이 끝에선 깊은 파장을 일으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