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ton Fink
영화 줄거리
희곡작가로 막 이름을 얻기 시작한 바튼 핑크. 그는 희곡작가로 성공하길 원하지만 그의 지인은 할리우드로 가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라고 조언한다. 내키지 않지만, 현실에 수긍하며 할리우드로 향하는 바튼. LA의 한 허름한 호텔에 기거한다. 영화사 사장 잭은 바튼에게 레슬링 시나리오를 쓰라고 요구하고 바튼은 그의 요구대로 따른다. 호텔방에서 타자기를 올려 놓고 쓰려고 하는데 벽에 붙어있는 벽지는 더위에 녹아내리고 옆방에서는 소음만 들린다. 호텔 직원에게 전화로 항의하자 바로 바튼의 방문을 두드리는 옆방 사람 찰리. 그 일을 계기로 서로 말동무하고 친해지는 두 사람. 한편, 시나리오 마감일은 점점 다가오고 바튼은 유명 작가 빌 메이휴의 비서 오드리에게 긴급 요청을 한다. 오드리를 호텔방으로 불러들인 바튼은 오드리와 하룻밤을 보내지만 다음 날 아침, 오드리는 시체로 발견되는데...
코엔 형제의 영화는 물론 다 보진 못했지만.. 언제나 뭔가가 부족하다. 영화는 기가 막히게 연출을 잘 하지만 뭔가 감흥을 이끌어내는 데는 부족한 것 같다. '바톤 핑크'는 완성도 있는 영화다. 코엔 형제 특유의 기발한 연출도 보이고 설정이나 상황 묘사도 훌륭한 편이다. 그럼에도 엄지손가락을 들어주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 그래서 아쉽다. 전작인 '아리조나 유괴사건'에 비하면 이 영화는 굉장히 진지하면서도 어둡다. 사실 그 부분에서만큼은 '바톤 핑크'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바톤 핑크'는 영화의 제목인 동시에 주인공 이름이다. 좀 특이하지 않나? 이름이. 영화에 나오는 형사 한명이 '핑크'라는 이름을 듣고 바로 유태인 이름 아니냐고 묻는다. 신기하다. 핑크가 유태인 성(last name)이라니. 하여간 코엔 형제는 주인공 이름을 별나게 짓는 감독으로 유명하니까.
'바톤 핑크'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큰 공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다름 아닌 주인공 바튼 핑크는 시나리오 작가다. 원래 희극작가였는데 그 당시의 흐름에 따라 그에 편승해 할리우드로 거취를 옮긴다. 좀 이해가 안가는게 희극작가로 성공해야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나? 근데 바튼 핑크는 희극작가로 성공을 못해서 오히려 할리우드로 가는 좀 이해가 안가는 경우다. 아무튼 영화속에서는 그런 설정으로 그려진다. 사실 시나리오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창작의 고통이란 건 매우 힘든 작업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니까. 바튼 핑크는 레슬링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유명한 작가 빌 메이휴에게 자문을 구하지만 오히려 그를 보며 실망감만 느낀다. 빌의 비서 오드리에게도 조언을 구하지만 오드리는 다음 날 아침 피로 범벅이 된 시체로 발견될 뿐이다. 결국 마감일을 지나서 바튼의 옆방 친구인 찰리가 맡긴 상자를 타자기 앞에 놓고 나서야 시나리오는 술술 써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영화판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준다. 영화사 사장인 잭은 처음엔 바튼에게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것처럼 대하다가 바튼의 결과물인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야 그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이것이 영화판의 생리가 아닌가. 정말 냉혹하고 살벌한 곳이다. 할리우드는 영화를 하나의 예술이라고 보지 않고 철저하게 산업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즉, 돈이 돼야 투자할 수 있고 영화로서의 가치가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현재의 충무로도 마찬가지다. 다만 할리우드는 훨씬 더 일찍 그 점을 간파한 것이다. 많은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 오로지 그거 하나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는 창작의 자유보다는 제작자의 간섭과 입김에 치일 수밖에 없다. 왜냐? 그들이 돈을 가지고 있으니까. 194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진다.
바튼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타인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다. 이것이 딜레마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은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타인이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나에게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지금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바튼은 고독한 친구다. LA라는 낯설고 황량한 곳에 떨궈진 외톨이다. 아는 사람도 없는 그 곳에서 호텔 방에 처박혀 시나리오를 쓰려고 머리를 쥐어 뜯는다. 다행인 것은 옆방에 찰리라는 친구가 바튼의 방에 와서 말동무라도 되어준다는 점이다. 그에게 LA는 천사들의 도시가 아니라 지옥의 도시다. 찰리는 이미 그 시대의 정신병자다. 이 영화의 반전을 가져다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바튼 핑크라는 인물은 영화에서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시나리오 작가의 모습을 거의 정확히 갖추고 있다. 머리 스타일, 의상, 검은 뿔테 안경에다 고집스러운 얼굴. 이것이 바로 연출이다. 바튼은 지금으로 말하면, 은둔형 외톨이다. 그는 작가적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다.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그룹에서 행해지고 있는 세태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면서 비판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의식은 지금 현실의 영화계에서도 유효하다. 더불어서 나의 개인적인 가치관과도 일치한다. 그는 여자도 못 만나고 사회생활에서는 굉장히 서툰 사람이다. 가족과 친구라는 기본적인 관계에 속한 사람들조차도 믿지 않는다. 근데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마음이 따뜻하다.
존 터투로는 이 영화의 심장이다. 바튼 핑크 란 역할은 그 외에는 상상하기 어렵다. 존 굿먼은 대단한 배우다. 특히 그의 표정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어떻게 이중인격자 역할을 그렇게 탁월하게 연기하는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다. 사실 내러티브는 복잡하지 않다. 막판에 등장하는 반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사건도 없다. 그럼에도 나름 긴장감이 있고 재미도 있는 영화다. 아마도 공간적인 배경이 서스펜스에 한몫을 했다 생각한다. 음침하면서도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느낌. 사소한 장면에서 코엔 형제의 연출 솜씨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림 속의 장면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엔딩을 보았지만 바튼 핑크는 새로운 삶이 시작됨을 보았다. 바로 희망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코엔 형제 작품들처럼 오리지널 스크립트다. 코엔 형제는 이 영화를 통해서 창작의 고통과 영화계의 현실을 풍자한다. 감독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고민이 투영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