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 위 댄스 (1996/일본)
장르 코미디, 드라마, 음악, 로맨스
감독 수오 마사유키
출연 야쿠쇼 코지, 쿠사카리 타미요,
다케나카 나오토, 와타나베 에리코
감상평
나의 평가 ★★★★☆
스기야마는 부인과 딸과 함께 정원 딸린 단독 주택에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평범한 가장이자 성실한 샐러리맨이다. 직장 동료의 부러움을 살 만큼 그는 성공한 인생으로 보인다. 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은 그를 지치게 만드는데.. 이때 댄스 교습소의 '마이'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소심한 소시민의 전형인 그는 늘 멀리서만 바라볼 뿐 댄스 교습소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 사교댄스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교양이 왜 일본으로 건너와서는 퇴폐적 문화로 변질됐을까?
여기서 사랑에 관한 위대한 명제가 발휘된다. 사랑은 밖으로 뛰쳐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그 역에서 그가 내리는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바로 코앞에까지 가서도 그는 망설이지만 도요코 덕분에(?) 얼떨결에 댄스 교습소에 첫발을 들여놓는다. 사실 이 장면은 다소 작위적인 설정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그가 얼마나 소심한 캐릭터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연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심한 소시민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와 같이 그룹 레슨을 받는 샤이 뚱보 당뇨 환자 다나카도 대머리 노총각이자 회사에서 왕따인 직장 동료 아오키도 모두 억눌렸던 자아를 춤으로 폭발시킨다. 남자들이 대개 쭈그러들고 위축된 어수룩한 캐릭터들로 그려지는 반면 이 영화에서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기가 세고 남자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도요코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멋대로 풀어제끼는 그녀는 가히 막말의 달인으로 불릴 만하다. 개인적으로 비호감 캐릭터이지만 영화에서 웃음의 핵을 담당하고 있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여성 캐릭터에 도요코가 있다면 남성 캐릭터에는 아오키가 있다. 과장된 춤사위로 라틴만 고집하는 아오키를 연기한 다케나카 나오토는 페이소스 깃든 코미디로 씬 스틸러급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말하자면 이 둘은 영화의 코미디를 떠받치는 웃음의 양대 산맥이다. 코미디가 이 두 조연의 몫이라면 주인공 스기야마와 마이는 드라마를 책임진다.
스기야마는 마이에 대한 호감으로 댄스 교습소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점점 사교댄스에 진정으로 몰입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얼마 못 가 그만둘 거라던 도요코와 탐정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황당한 대목은 갑자기 응원석에서 들려오는 "아빠!"라는 딸의 외침에 당황한 스기야마의 실수로 도요코의 드레스가 찢어지는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탐정의 등장이었다. 평소와 다르다는 이유로 남편을 의심하여 탐정까지 고용한다는 설정이 설득력이 없었다. 그것도 늦게 퇴근하는 활기찬 남편을 원했던 아내는 어디로 가고. 탐정의 등장으로 스릴러 플롯이 추가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도리어 코미디를 강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마침내 탐정도 이들에게 동화되어 사교댄스를 추는 엔딩은 훈훈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 영화의 미덕은 억지웃음을 유발하지 않고 억지 감동을 쥐어짜 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 낸다.
<쉘 위 댄스>는 단연코 할리우드가 탐낼 만한 이야기를 갖춘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2004년에 리처드 지어, 제니퍼 로페즈, 수즌 서랜든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다. 그러고 보니 리처드 지어가 출연한 '시카고'와 공유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코미디를 베이스로 해서 음악과 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상보다 거대한 것은 없다. 일본 영화는 작은 영화에 강하다. 디테일이 이들의 강점이다. 그런 면에서 디테일보다 스케일에 강한 할리우드가 성공적인 리메이크로 결과물을 내놓았을까? 안타깝게도 기본적으로 리메이크는 대개 실패로 귀결된다. 일단 문화와 정서가 다르고 원작의 아우라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한때 일본의 국민 배우로 불리던 주인공 스기야마를 연기한 야쿠쇼 코지는 이 영화에서 강렬하지는 않지만 캐릭터에 서서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쉘 위 댄스>에서 그의 연기는 영화를 닮았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이 영화의 전개는 그러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가는 방식으로 끝내 폭발시키지 않고 은은한 여운을 흩뿌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스기야마의 변화는 그 자신의 변화로만 그치지 않고 마이의 변화도 이끌어 낸다. 마이는 본래 댄스에 관한 한 귀족주의적 성향이 뚜렷했으나 스기야마를 만나 귀족주의적 성향을 해체하고 초심을 되찾는다. 영화의 피날레가 될 뻔 했던 경연 대회를 망치고 우여곡절 끝에 송별회에서 스기야마가 그토록 선망하던 마이와 댄스를 추는 엔딩은 이 영화의 백미이자 화룡점정이다. 말하자면 전화위복인 셈이다. 스기야마는 지금도 춤을 출까? 사무실 책상 아래 홀로 조용히 스텝을 밟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영화는 당신에게도 묻는다. Shall We Dance?
★★★☆
댄스 무지렁이가 봐도 혹할 영화. 스기야마가 사무실 책상 아래 홀로 조용히 스텝을 밟는 장면은 명장면이다. 경연 대회에서 스기야마의 실수로 도요코의 드레스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클라이맥스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마이가 스기야마를 파트너로 지목하여 함께 춤을 추는 황홀한 엔딩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얼마 못 가 그만둘 거라던 주변의 우려와 그룹 레슨에서 제일 뒤쳐졌던 그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감동은 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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